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산행기 제42화 점봉산 3
"꽃 멍 때리기 좋은 곳"
아내가 한 말이다.
곰배령을 두고 요즘 유행한다는 말이란다.
그 곰배령을 찾아가는 여정은 생각보다 녹녹지 않았다.
워낙 깊은 산속에 있기 때문이다.
굽이굽이 대관령 옛길을 넘듯 꼬부랑길을 올라서자 다시 분지 같은 산길이 나왔다.
다시 굽이굽이 돌고도는 그 분지 같은 산길을 4km쯤 들어가고 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네비의 안내가 끝을 맺었다.
우리가 예약한 곰배 누리 펜션에 도착한 것이다.
펜션단지에 들어섬과 동시에 그러려니 하기는 했지만 깨끗한 펜션에 대한 갈망은 허무하게 무너졌다.
하긴 어쩌면 이 깊은 산골에서 하루 유숙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한데 호텔 같은 분위기를 꿈꾼 나의 생각이 잘 못 된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튼 차에서 내려서자 약간 한기가 느껴지는 상쾌한 공기가 너무 좋았다.
예약한 방에 여장을 풀고 펜션 주변을 산책한다.
펜션 한쪽에 수백 종류의 이쁜 다육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수십 년은 되었을 듯싶은 다육이도 있다.
이렇게 큰 다육이는 처음 본다.
뿐만 아니라 알록달록한 다육이 모둠이 예술이다.
여주인께서 다육이를 취미로 기른다고 하신다.
이 깊은 산골에서 다육이 삼매경에 빠질 줄이야...
곰배누리 펜션은 지은 지가 좀 오래되어서 그렇지 나름 친환경 공법으로 지은 흙집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널판자를 양쪽으로 고정시키고 그 사이에 흙을 다져서 담을 쌓은 집.
요즘 용어로 '흙다짐 공법'으로 지은 집이다.
물론 내가 어렸을 때 짚을 썰어 넣고 투박하게 지었던 것과 똑같지는 않지만 나름 방식과 형식은 같은 듯했다.
주변 산책을 하고 나서도 시간이 많아서 방태산 이단폭포 구경을 하고 돌아와 저녁을 먹는다.
역시 펜션에서의 멋은 바비큐 타임이다.
곰배누리 펜션에는 돌구이와 숯불구이 두 가지 시설이 되어 있었다.
숯불 연기 맡아가면서 구워 먹는 숯불구이도 좋지만 우리는 깔끔한 돌구이를 택했다.
돌구이 만찬을 끝내고 나자 어둠과 고요가 동시에 찾아왔다.
편리하고 깔끔한 호텔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산중의 특별한 느낌이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날이 흐려서 별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빼꼼한 하늘 가득한 별을 볼 수 있었다면 금상첨화였을텐데.
왜 우리나라 숙소에서는 일본이나 북유럽의 숙소들처럼 사각사각 거리는 이불 맛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무튼 이불이 약간 찜찜하기는 했지만 산골의 아침은 상쾌했다.
아내도 만족은 아니지만 불만은 없었던 잠자리였다고 한다.
서둘러서 김치찜과 라면으로 아침을 간단히 해결하고 드디어 예약시간에 맞춰서 곰배령으로 향한다.
곰배령 탐방은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한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약은 9시, 10시, 11시에 하루 450명 한정해서 가능하다.
우리 일행은 첫회인 9시에 예약이 되어 있어서 다른 산행객들 틈에 끼어 줄을 섰다.
그런데 함께한 지인 부부가 예약이 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난감한 일이었지만 다행히 현장 관계자께서 조치를 취해주셔서 입장은 가능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반대편 귀둔리에서 출발하는 국립공원 예약 사이트에 예약을 한 것이다.
곰배령 예약은 진동리에서 출발하는 산림청 예약사이트와 귀둔리에서 출발하는 국립공원 예약사이트가 있었던 것이다.
예약이 두 명으로 한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두 가족이 따로따로 예약을 하다 보니 빚어진 결과이다.
황당한 것은 근처에서 민박을 한 경우에는 예약 인원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민박을 예약하면 별도의 예약이 필요 없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우여곡절 끝에 본격적으로 곰배령 산행을 시작한다.
초입의 등산로는 촬촬거리는 계곡과 함께 나란히 나 있었다.
그래서 거의 산길이라고 할 수 없는 평지길이다.
덕분에 산객들은 소풍이라도 가는 듯 느긋하게 상쾌한 산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등산로와 나란히 하는 계곡엔 엊그제 비가 온 뒤라서 제법 많은 수량의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바위에 부딪히고 떨어지는 그 청량한 물소리가 산객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뿐만 아니라 계곡과 등산로를 사이에 두고 양 옆으로는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숲 그늘을 이루고 있다.
덕분에 여름 산행이란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산행을 한다.
숲은 인공적으로 가꾸지 않은 숲답게 나무들이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의 조화도 아름답고 서로 기대고 부대끼며 살아낸 아름드리나무들의 모습도 정겹다.
그렇게 쉬엄쉬엄 20분쯤 오르자 유명하지는 않지만 강선 폭포라고도 불리는 폭포가 나왔다.
숲 속을 달리는 강선 계곡은 작은 폭포의 연속이다.
물이 많지 않은 여느 산에서라면 이름 하나쯤 얻었을 폭포들이다.
또 얼마쯤 걸었을까?
산속에 외딴집이 한 채 있다.
그 산속 집의 텃밭은 야생화 천국이었다.
마침 인기척이 있어서 펜션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한다.
마치 북유럽 분위기의 집이 그냥 살림집이라고 한다.
어떻게 여기에 터를 잡게 되었는지, 무엇을 하며 사는지, 여러 가지로 궁금증을 자아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강선마을 삼거리가 나왔다.
강선마을은 생태보전지역 안에 있는 유일한 마을이다.
뭐 자연 마을이기는 하지만 여기도 예외 없이 상업화가 되어있는 마을이다.
삼거리에서는 마을 쪽이 아닌 오른쪽 길로 올라야 한다.
이어서 나오는 잣나무 숲길이다.
곰배령 숲길에서 유일한 인공조림 지역이기도 하다.
운치 있는 쉼터가 조성되어 있지만 아직 쉴만한 타임이 아니라서 모두들 그냥 진행한다.
그리고 이어서 나오는 강선마을 식당 지역이다.
양쪽에 식당이 있는데 호객행위가 대단하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이 호젓한 산길에서 눈살을 찌푸려야 하는 꼴을 봐야 하다니...
나물전과 곰취 막걸리 한 잔 하기에 딱 좋은 곳인데.
아무튼 내려올 때 들러 기로하고 일단 그냥 지나친다.
강선 계곡이다.
강선(降仙) 마을, 강선 계곡.
풀이하면 신선이 내려오는 마을, 신선이 내려오는 계곡쯤 된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름이 참 좋다는 생각 든다.
강선마을을 지나면서 이제 길은 넓은 등산로가 끝이 나고 호젓한 산길로 바뀐다.
그러나 거의 반쯤 올랐는데 아직도 길은 평지나 다름없다.
곰배령의 높이는 1,164m에 이르지만 산행 시작점인 진동리의 고도가 700m이기 때문이다.
5.1km에 이르는 거리를 통해서 400여 m 높이만 오르면 되기 때문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계곡은 이제 저 아래에 있다.
강선 계곡은 점봉산 정상에서 발원해서 곰배령을 지나 진동리로 내려오는 물길이다.
그 중간에 강선마을이 있는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쉼터에서 첫 휴식을 취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 20분이 지난 시간이다.
때로는 유유히 흐르고 때로는 굽이쳐 흐르고, 가끔씩 쏟아져 내리던 강선 계곡.
이제 이 쉼터를 지나면서 계곡은 등산로와 멀어진다.
그와 동시에 등산로도 조금씩 가팔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도가 높아지면서 활엽수림의 수종도 바뀌어간다.
듬성듬성 나무의 귀공자라는 자작나무도 보인다.
이곳 곰배령이 있는 점봉산에는 우리나라 한반도에 자생하는 식물의 20%에 해당하는 식물이 분포되어 있다고 한다.
그 종류가 무려 854종에 이른단다.
그래서 1993년에 유네스코 생물보전지역으로 지정이 된 곳이기도 하다.
여러 종류의 나무가 어울렁 더울렁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이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가?
탐욕스러운 우리 인간들이 배워야 할 모습이다.
전쟁광 푸틴이 배워야 할 모습이고, 시진핑이 배워야 할 모습이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배워야 할 모습이다.
산길은 이제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하긴 이 정도는 되어야 등산이기는 하다.
그리고 다시 이름 없는 폭포 하나를 만난다.
역시 산에서는 물소리 새소리가 최고다.
오를수록 숲은 원시림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었다.
숲 아래를 장식하고 있는 양치식물인 고사리과 식물들은 그 원시림의 증표다.
우거진 활엽수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피톤치드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역시 여름 산행은 숲길 산행이 최고다.
아무튼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안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산행이다.
여기서 잠시 꾸밈없는 원시의 숲 삼매경에 빠져보자.
아름드리 거목의 모습을 통해서 엄숙하고 유구한 세월을 본다.
세월이 만든 원시림에서는 모든 것이 엄숙하다.
죽어서도 의연한 나무 둥치도 엄숙하고, 이제 막 쓰러져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나무도 엄숙하다.
정상 아래 마지막 쉼터가 나오면서 드디어 야생화가 보이기 시작한다.
나무 둥치 위에 가득 올려진 돌무더기가 정겨운 쉼터.
정상을 향한 마지막 계단을 오르기 위해서 숨을 고르기 딱 좋은 쉼터에서 우리 일행도 잠시 쉬어간다.
3살쯤 되었을까?
오늘 최연소 산행객이다.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한 컷 담았다.
그사이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찬사를 받는다.
귀엽다, 이쁘다, 대단하다, 깜찍하다...
세상 모든 찬사를 다 받쳐도 부족할 듯하다.
이제 이 계단만 오르면 정상이다.
이 코스의 유일한 계단이다.
최고의 난코스인 셈이지만 여기만 오르면 정상이라는 희망 때문에 그리 힘든 줄 모르고 오를 수 있는 계단이다.
그런데 어느새 그 대단한 최연소 산악인이 앞서 간다.
순간 저 아이보다는 몇 살 더 먹은 우리 손녀를 생각해 본다.
산에 가자고 하면 손사래를 치는 손녀.
그렇게 계단을 올라서자 야생화 군락지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때가 때인지라 많은 종류의 야생화가 아니라 주로 둥근이질풀 꽃이 만발해 있다.
이질풀 꽃은 내가 좋아하는 야생화 중에 하나다.
주로 우리나라 고산지역에 자생하는 야생화다.
산행 시작 후 2시간 30분.
드디어 동화 같은 풍경 앞에 섰다.
오늘의 목적지 곰배령 정상부에 올라선 것이다.
사실 오르는 코스의 총거리는 5.1km로 2시간쯤이면 넉넉히 오를 수 있는 난이도이지만 사진 촬영과 쉬엄쉬엄 오른 때문이다.
5만여 평의 야생화 단지다.
철 따라 다양한 야생화들이 피어나는 자연의 꽃밭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천상의 화원이라고 한다.
곰배령은 시기에 따라서는 기대가 큰 만큼 때로는 실망도 크다.
오늘도 좀 그런 날이다.
그러나 꽃보다 더 아름다운 하늘 덕분에 실망할 겨를이 없다.
마치 한 편의 동화를 보는 것 같다.
알프스의 하늘인들 이보다 더 아름다울까?
이것이 바로 오리지널 한국의 하늘이다.
그래서 옛날 서양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왔을 때 한국의 파아란 하늘을 사 가지고 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바로 이 하늘을 보고 그러지 않았을까?
아무튼 사람들은 그 하늘을 배경 삼아 구름 놀이를 하느라고 여념이 없다.
천상의 화원 곰배령.
밀려드는 인증숏 인파를 피해서 간신히 정상석을 담았다.
곰배령은 지금이야 천상의 화원이니 동화 같은 풍경이니 하며 즐기는 고개이지만 사실은 진동리와 귀둔리 사람들의 애환이 서린 고개다.
먹을 것 입을 것을 이고 지고 넘던 고개다.
이별의 고개이기도 했고, 만남의 고개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마다 고개에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을 것이다.
저 멀리 설악산의 서북능선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대청봉에서 귀때기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산 서북능선은 여름날에 걸으면 좋은 능선이다.
그 압도적 풍경 앞에서 수도 없이 다녔던 지난날의 설악산에 대한 추억을 회상해본다.
이제 곰배령의 전경을 보기 위해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서의 풍경은 또 다른 가슴 벅찬 동화를 선사한다.
보다 넓고 먼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곰배령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늘이 없는 야생화 단지를 대신해서 쉬고 식사를 할 수 있는 넓은 데크가 마련되어있다.
전망대에서 본 야생화단지 전경이다.
마치 곰배령이라 불리게 된 곰이 벌렁 드러누운 모습을 연상시키는 모습 같기도 하다.
그리고 전망대에서는 설악산의 서북능선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다.
곰배령 뒤로 작은 점봉산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다.
그리고 그 너머 빼꼼히 보이는 점봉산 정상이 보인다.
곰배령이 속해있는 점봉산은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정상은 휴식년제 중이라서 통제되고 있는 중이다.
전망대에서는 진동리로 내려가는 2코스 길과 귀둔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반대쪽 등산로가 있다.
그러나 2코스는 난도가 높다고 해서 우리는 다시 1코스로 내려간다.
1코스로의 하산은 생각보다 쉽다.
계단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싱겁다고 생각이 들 정도다.
하산의 유일한 낙은 내려오는 길에 강선마을에서 산나물 전에 곰취 막걸리 한 잔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행도 잠깐 쉬어간다.
산나물 전은 시중에서는 맛보기 힘든 독특한 모양, 독특한 맛을 선사하는 전이었다.
그리고 2시간여 만에 하산을 완료했다.
오늘 곰배령 산행은 산행이라기보다는 둘레길 걷기 같은 하루였다.
소풍이라도 다녀온듯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