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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고 Aug 28. 2021

가을 문턱, 추월산에서

산림청선정 100대명산 산행기 제60화 추월산

산이 높아 가을이면 산이 달에 닿는다는 추월산.

하지만 사실은 731.2m로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럼에도 그렇게 보이고 또 그렇게 느꼈던데는 아마도 주변에 높은 산이 많지 않아서 그리 보였으리라.

또한 그 덕분에 산정에서 보는 조망이 온 천하를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뭏튼 가을에 올라야 제멋이라는 추월산을 가을 문턱에 오른다.



식구들과 저녁 외식 약속이 예정되어있어서 일찍 갔다가 일찍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4시30분에 집을 나선다.

여름을 지나 가을 문턱을 막 넘어선 새벽공기는 약간의 한기가 느껴질 만큼 시원했다.

차에서도 에어컨을 켜지않고 간간히 문을 열어 환기만 하면 되는 기온이다.

이런 최적의 드라이브 기온이 연중 몇 일 쯤 될까?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이른 시간인데도 예상외로 차량이 많다.



7시 20분 추월산 주차장 도착.

서둘러서 바로 산행에 나선다.



등산로 초입은 소나무 숲이 잘 조성되어 있었다.

그 넓은 소나무 숲길을 따라 200여m쯤 걷자 케이블카 삭도가 나오고 갑자기 길이 협소해 졌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사람이 의외로 많이 다지지 않는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그냥 진행한다.



그런데 갈수록 길은 더 희미해지고 군데군데에서는 쓰러진 나무에 아예 길이 끊기다시피 했다.

하지만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상황.

돌아가기엔 너무 많이 진행 해버렸다.

그래서 그냥 진행 한다.



그리고 30여분만에 산소가 있고 약간의 조망이 가능한 조망점에 도착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산소에 벌초하러 온 사람들이 길을 닦아놓아서 그런지 길이 제법 다닐만 했다.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길은 더 희미해졌고 오르막은 더 심해졌다.

더큰 문제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않아서 거미줄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 거미줄을 헤치며 나아가는 길은 고독하고 고단한 개척의 길이었다.

그나마 중간중간 조망점이 있다는 것이 위안이었다.



그렇게 2시간 여를 가파른 비탈과 크고 작은 바위를 기어오르다시피 해서 오른다.

그래도 나처럼 잘 못 들어온 사람들이 간간히 있는지 희미하게나마 길이 있다는것이 신기했다.



하긴 그마저도 없었다면 되돌아 갔을 테지만...

아무튼 거의 2시간의 우여곡절 끝에 능선길 정규 등산로에 올라섰다.

그런데 이쪽에선 등산로가 아니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아랫쪽에는 이런 푯말이 없었던 것인지, 아니면 있는데도 내가 못 본것인지, 어쨌거나 고생 끝,행복의 시작이다.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능선길로 약간의 오르내림은 있지만 걷기는 좋은 길이다.

뿐만아니라 조망까지 좋아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가야할 정상부가 보인다.

정규 등산로에 들어섰는데도 아직 산객을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햇다.



가을의 문턱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여름에 가까운 날씨, 그래서 후덥지근 하지만 한 점 바람만 불어오면 상쾌하기 그지없다.

그런 상쾌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쉬엄쉬엄 걷다가 특이한 이름의 이정표 하나를 만났다.

물통골 삼거리.

능선에 왠 물통골?...

나중에 안 일이지만 요아래 물통골이라는 약수터가 있단다.

전설에 의하면 그 약수는 추월산의 모든 물이 말라도 마르지 않는단다.



아무튼 이정표 없는길을 2시간 동안이나 걸었더니 새삼 이정표가 반가웠다.

친절한 이정표.

산길에서 만나는 이정표는 언제나 희망이다.

지친 몸을 이끌고 가는 산객에게 가야할 방향과 거리를 정확히 짚어준다.



이윽고 3시간 반 만에 정상에 섰다.

인적 없는 정상은 단촐했다.

거기에다 정상 표지석마저 단촐해서 정상기분보다는 초라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래도 한쪽 조망이 있어서 정상기분을 내며 잠시 쉼을 한다.



정상 자체는 평범했지만 산세에 비해서 내려다보이는 조망은 특별했다.

그중에서도 영글어가는 벼논의 푸른 들녘 풍경이 일품이다.

하산은 다시 왔던 길로 원점회귀를 한다.



가야할 능선길이다.

그중에 맨끝이 보리암 정상이다.

원래 거쳐서 왔어야 할 봉우리인데 길을 잘 못 들어서 샛길로 오르는 바람에 지나쳤던 봉우리이기도 하다.



갓 핀 억새가 가을의 문턱을 넘었음을 알리고 있다.

바람 한 점 없어서 아직은 무더운 산행이지만 그래도 가던 발걸음 잠시만 멈춰서면 바로 서늘한 기운을 느낄수 있고 그늘에만 들어서면 시원했다.



왼쪽부터 고들빼기꽃, 며느리밥풀꽃, 닭의장풀꽃(달개비꽃).



추월산의 특이점은 정상에서의 조망보다 능선길에서 보는 조망이 훨씬 멋지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오늘은 여름날 특유의 변화무쌍한 구름풍경때문에 더욱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 변화무쌍한 구름풍경을 즐기며 걷는 재미가 솔솔했다.



그렇게 걷는 사이 어느새 정상이 저 멀리 있다.

어쩌면 인생이란 걷는 것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괴테도 걸었고, 헤밍웨이도 걸었고, 고대인도 걸었고, 현대인도 걷는다.



또하나의 정상인 보리암 정상에 섰다. 

추월산 정상과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조망은 더 좋다.

담양호까지 조망할 수 있기때문이다.

원래 여기를 거처서 정상에 가야 했는데 등산로를 잘 못 드는 바람에 하산길에 오른 것이다. 



담양호 풍경이다.

담양호는 영산강() 유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1972년 착공하여 만 4년 만에 장성호() ·광주호() ·나주호() 등과 함께 준공한 인공호수다.



이렇게 큰 호수 하나를 불과 4년만에 완공했다는 사실에 그 빠름에 감탄하기 보다는 얼마나 강제적이었을지가 더 마음을 아프게 했다.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는 공기다.

반 강제로 쫓겨갔을 골짜기 골짜기마다 삶의 터전을 잡고 살던 사람들은 어떤 보상을 받아서 어디에서 살고 있을련지...



멋진 담양호 풍경을 뒤로하고 이제 보리암을 향해서 간다.



의병장 김덕령장군의 부인 흥양 이씨 순절비.

보리암 가는 길에 있는 이 비는 임진왜란때 왜구에 쫓기자 이 절벽에서 투신해 목숨을 끊었다는 부인의 순절비다.



보리암.

보리암은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천길 절벽위에 지은 천년고찰인 보리암은 콘크리트로 마당을 만들어서 자연미나 오래된 맛이 반감된 아쉬움이 있지만 담양호가 내려다보이는 분위기는 엄숙했다.



전설에 의하면 지눌스님이 지리산에 머물 때, 전국의 좋은 절터를  찾기 위해 나무로 세 마리의 매를 만들어 날려 보냈다.

그중에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터에, 또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터에, 나머지 한 마리는 추월산 보리암터에 앉았단다.

그래서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보리암에서 본 담양호.



하산길에 본 보리암이 있는 절벽.



보리암정상에서 내려오는 중간에 담양호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그리고 일명 호랑이굴 쉼터를 지나면 가파른 하산길은 끝이나고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올라갈때 이 멋진 길을 놓친 것이다.

이정표도 잘 되어 있는데 순간 눈이 삐었나 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실패도 축복이라는 말이 있다.

실패 했기때문에 가보지 않은 길을 경험 해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아무튼 덕분에 희귀한 길을 가 본 셈이다.



5시간 반 만에 하산을 완료했다.

요즘 산 풍경은 가을의 초입이라고 하지만 사실 좀 어정쩡한 시기이다.

여름 폭염에 시달렸던 나뭇잎의 윤기없는 빛깔, 아직은 후덥지근한 기온.

그래도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만은 완연한 가을 바람이었다.


*산행코스: 추월산 주차장 ㅡ케이블카 삭도 ㅡ비활성 등산로 ㅡ능선  분기점 ㅡ월계삼거리 ㅡ정상 ㅡ월계삼거리 ㅡ보리암 정상 ㅡ전망대 ㅡ보리암 ㅡ 주차장(천천히 5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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