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다행이다! 첫 번째가 아니라서"
by Dothink
마케팅이나 세일즈를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어떻게 내 제품을 시장에서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게 할 것인가.’
우리는 흔히 그 답이 ‘최초’가 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남들이 가기 전 그 땅에 먼저 깃발을 꽂고, 세상에 없던 기술을 짠 하고 선보이면
시장의 왕좌는 당연히 내 것이 될 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경쟁사가 먼저 신제품을 내놓으면 세상이 무너진 듯 좌절하곤 한다.
"아, 한 발 늦었어. 이제 끝났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경영학자 제러드 탤리스(Gerard J. Tellis)는 그의 저서 <마켓리더의 조건>을 통해
우리의 탄식을 위로 한다.
오히려 그는 우리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자, 무릎을 탁 치며 안도하세요. 첫 번째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입니다!"
미국이 최초의 국가가 아니었듯이 시장을 지배하는 왕좌는 먼저 도착한 자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혁신의 상징이라 믿는 구글, 애플, 아마존은 사실
누군가 닦아놓은 길 위에 뒤늦게 나타난 ‘얄미운(?) 후발 주자’들이다.
세계 최초의 검색엔진은 구글이 아닌 ‘아치(Archie)’였고,
최초의 스마트폰은 아이폰보다 15년이나 앞서 나온 IBM의 ‘사이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제러드 탤리스의 연구에 따르면, 시장 개척자의 실패율은 무려 47%에 달한다.
비유하자면 개척자는 안개 자욱한 정글을 맨몸으로 헤쳐 나가는 사람이다.
독거미에 물리고 늪에 빠지며 겨우 길을 닦아 놓으면,
마켓리더는 그들이 흘린 피와 땀을 이정표 삼아 풀 옵션 SUV를 타고 유유히 나타난다.
그러니 경쟁자가 먼저 시장에 나갔다고 슬퍼할 필요 없다.
그들은 지금 당신을 대신해 시장이라는 늪의 깊이를 몸소 측정해주고 있는 중이니까.
그렇다면 개척자가 닦아놓은 길에서 어떻게 열매만 쏙 골라 먹는 '영리한 1위'가 될 수 있을까?
탤리스는 그 차이를 비전(Vision)과 의지(Will)라는 두 기둥으로 설명한다.
첫째, 기술을 '생활의 변화'로 번역하는 비전이다.
개척자들이 "우리 기술은 0.001mm까지 정밀합니다"라고 공학적인 자랑을 할 때,
마켓리더는 "이 제품이 당신의 아침을 바꿀 것입니다"라고 유혹한다.
기술 그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을 읽어내는 눈, 그것이 비전이다.
아이폰이 전화기가 아닌 '내 손안의 즐거움'이라는 비전으로 세상을 홀린 것처럼 말이다.
둘째, 적자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의지다.
여기서 말하는 의지는 "하면 된다!" 같은 구호가 아니다.
시장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압도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고객의 신뢰를 얻을 때까지 자본과 인력을 쏟아붓는 '자본주의적 맷집'을 의미한다.
탤리스는 마켓리더들이 개척자보다 은근과 끈기로
훨씬 더 공격적이고 장기적인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버티는 놈이 이긴다"는 격언은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마케팅에서도 진리다.
마케팅과 세일즈 현장에서 "이미 레드오션이에요", "우리는 너무 늦었어요"라는 한탄을 자주 듣는다.
하지만 <마켓리더의 조건>이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고 통쾌하다.
시장에 먼저 진입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시장의 아쉬움을 누가 가장 섹시하게 충족시켜 줄 것인가'이다.
진정으로 최고의 제품으로 인정받고 싶다면,
'최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라.
대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우리 제품은 기술적 우위를 넘어 대중의 일상에 스며들 '비전'이 있는가?
시장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꿀 만큼 끈질긴 '의지'를 행동(Do)으로 보여주고 있는가?
결국 마켓리더는 깃발을 먼저 꽂는 자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광장에 남아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는 자의 몫이다.
이제 경쟁사가 먼저 나갔다고 한숨 쉬는 대신, 환하게 웃으며 말해보자.
"아, 다행이다! 쟤네가 먼저 매 맞으러 나가줘서!"
그들이 매를 맞는 동안, 우리는 'Think'하고 'Do'하면 된다.
진짜 승부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