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칼럼] 침묵하는 시장, 소란스러운 증여... 그 겨울의 ‘부의 이동’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제법 황량합니다. 비단 영하로 떨어진 기온 탓만은 아닐 겁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이 자산 시장, 특히 부동산 시장에 불어닥친 한파가 그 어느 때보다 매섭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매매 거래가 끊겨 공인중개사 사무소에는 적막만 흐르는데, 등기소는 때아닌 호황을 맞았습니다. 바로 ‘증여’ 때문입니다.
얼어붙은 거래 절벽 앞에서, 자산가들은 매도가 아닌 상속을 택했습니다.
최근 들려온 소식은 꽤나 충격적입니다. 올 10월까지 서울의 집합건물 증여가 7,700건을 넘어서며 3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대출 규제라는 거대한 댐이 물길을 막자, 자산가들은 그 물을 아래로, 즉 자녀들에게 흘려보내는 쪽을 택한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그 흐름의 ‘방향’입니다. 이 거대한 부의 이동은 서울 전역이 아닌, 우리가 흔히 ‘강남 4구’라 부르는 곳과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미성년자 증여가 역대급으로 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단순한 주거 안정을 넘어선, **‘가문의 자산 지키기’**가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하지만, 이 조용한 이동을 지켜보는 눈이 있습니다. 바로 국세청입니다.
“사랑인가, 탈세인가”... 국세청이 던진 질문
국세청은 이번 현상을 단순한 시장의 흐름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 급박한 증여의 행렬 속에 숨겨진 **‘불공정의 씨앗’**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강남과 마용성 등 주요 지역의 아파트 증여 전체에 대해 **‘전수 검증’**이라는 초강수를 두었습니다.
현장에서 수많은 CEO와 VIP들을 만나며 느끼는 거지만,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본능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사랑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탈세’라는 이름의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국세청이 이번에 현미경을 들이대겠다고 예고한 지점들을 살펴보면, 그동안 시장에서 암암리에 행해지던 ‘불편한 관행’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첫째, ‘무늬만 독립’인 자녀들입니다.
부모에게 받은 아파트의 대출 이자는 갚고 있지만, 정작 그날 저녁 식사비와 주유비는 부모의 카드로 결제하는 모습. 국세청은 이제 자녀의 ‘숨 쉬는 비용’까지 계산합니다. 소득 대비 지출이 맞지 않는다면, 그 갭(Gap)은 누군가 채워준 것이고, 국세청은 그것을 증여로 봅니다.
둘째, 자산 가치를 왜곡하는 ‘저가 감정’의 유혹입니다.
시세대로 세금을 내자니 너무 아까워, 감정평가액을 인위적으로 낮추어 신고하는 행위. 이는 절세가 아니라 시장 교란에 가깝습니다. 같은 단지 내 매매 사례가 버젓이 존재하는 한, 이런 꼼수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셋째, ‘세금까지 내주는’ 과잉 친절입니다.
집을 주는 것도 모자라, 수억 원에 달하는 증여세와 취득세까지 부모가 몰래 대납해 주는 경우입니다. 현금 매출을 누락시켜 만든 ‘검은돈’이 자녀의 세금 납부로 이어지는 고리, 국세청은 바로 이 연결고리를 끊으려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부의 대물림’은 정직함에서 시작됩니다
자산을 불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 국세청의 전수 조사 예고는 단순한 엄포가 아닙니다. 고도화된 전산 시스템과 빅데이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남들도 다 하니까”, “설마 나까지 보겠어”라는 안일함으로 대응하기엔, 치러야 할 대가가 너무 큽니다. 가산세 폭탄은 차치하더라도, 자녀에게 ‘세무조사 대상자’라는 꼬리표를 안겨주는 것은 부모로서 못 할 짓 아닐까요.
지금 필요한 것은 어설픈 편법이 아닙니다. 자녀의 자금 출처를 투명하게 만들고, 정당한 세금을 납부하면서,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법적인 절세 플랜을 짜는 **‘정공법’**입니다.
진정한 부자는 돈만 물려주지 않습니다. 돈을 다루는 태도와 법을 지키는 당당함까지 물려줍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옷깃을 여미듯 우리의 자산 관리도 다시 한번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