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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직업, WFP 현장 직원

by 이타카

아프리카에서 일할 일입니다.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은 적갈색 황토면 위에 먼지를 뭉게구름 처럼 일으키며 등장한 무장한 오토바이 군단을 조우한 적이 있었습니다. 정부청사를 도넛 마냥 둥글게 빙둘러 쌓고는 그 근처를 지나려는 저에게 붉은 기운의 흰자위를 번뜩이던 쿠데타 병사의 짧은 눈길은 쉽게 잊을 수 있는 기억은 아닙니다. '팔아 이리로 움직여야지'. '다리야 힘차게 걸어가야지'. 펄펄 끓는 머리가 아무리 조리있게 명령을 내리려 해도 제 멋대로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사지가 절망스러웠던 말리리아는 끔찍했었습니다. 이런 경험에서도 '나는 WFP 요원이 아니니 그나마 다행이지'하는 안도가 있었습니다.


'WFP(World Food Programme)' 우리나라엔 생소할 수 있는, 하지만 생소하면 안되는 국제기구입니다. WFP의 직원들은 험하고 위험해 아무도 가려하지 않는 곳에 식량을 배달합니다. 전쟁의 폐허, 절망스러운 재해의 여파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려고 합니다. 참 훌륭한 일을 하는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다보면 종종 생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게 됩니다.


'배고프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면 많이 고마워할 것이다?' 하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현장은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3일 굶으면 눈이 돌아간다는 말이있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역, 자연재해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쓸려간 지역 주민들과 군인들 중 3일은 아니더라도 하루 이틀 굶는 건 드문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달합니다.


당신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상상 해봅시다. 당신은 이틀을 굶었습니다. WFP 마크를 단 식량 트럭이 마을로 들어선다는 연락을 받고, 식량배급을 위해 줄을 서라는 통지를 받습니다. 문명인답게 노약자한테 양보를 하면서 차례를 기다리며 식량 배급을 받겠습니까? 아니면 물리력이나 인맥동원이 가능하다면 암울한 미래를 대비한 더 많은 식량을 확보하는 것도 고려해 보겠습니까? 되돌리고 싶은 사실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WFP직원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면 그 행동은 평온한 시절에 생각했던 행동과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올해 7월 부터 아프리카에서 일할 때, 동경했던 WFP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유감스러운 부분은 당장은 현장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몹쓸 병으로 나약해진 몸을 살펴주시는 건지, 현장을 지원 하는 자리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쏘이며 자판을 타닥타닥하는 일이 주업무인지라 다소의 불만은 있습니다만, 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마을을, 재해로 인하여 접근이 용이치 않은 지역에 도움을 주러가는 그들을 지원하는 일도 중요하달 수 있겠습니다.


WFP 건물 정문을 들어서면, 노벨평화상을 쉬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기관이 왜 이런 상을 받았을까? 하는 의문은 맞은편 벽을 보는 순간 대번에 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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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은편 벽에는 임무 중 순직한 WFP 직원들을 애도하는 패가 붙어있습니다. 전쟁, 자연재해, 지독한 가난과 기아. 이런 절박한 상황에 처한 분들을 돕는 일은, 자신의 안전도 그와 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 하겠지요.



WFP는 우리나라가 가난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게 도와준 국제기구 중, 두번째로 많은 지원을 한 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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