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농약 잔류보고서를 읽다 보면, 냉정하리 만큼 상세한 내용에 놀란다. 이 보고서를 읽은 유럽 소비자들 중, 어느 누가 국뽕에 취해 자기 농산물이 최고라 외칠까? 유럽사람들은 '신토불이'라는 말을 사용하기 어려울 듯 보인다. 누구라도 앞뒤 다 재가며 냉정한 시각으로 식탁안전을 셈할 듯 싶으니 말이다. 유럽 내 생산된 농산물과 수입 농산물과의 비교도 바주는 게 없다. 그러니, 유럽에서 농사 짓기는 무척이나 어렵겠다.
유럽은 농산물을 위협하는 농약의 잔류정도를 유럽 회원국가별로 구분하여 공개한다. 처음 이 도표를 보았을 땐 놀랐다. 이쯤이면 숨기거나 봐줄 여지가 없을 듯 하다.
파란색은 농약의 함유 여부다. 조사한 농산물에 어떤 종류의 농약이라도 검출되면 일단 농약 있음이라는 파란색을 표시한다. 그리고 오렌지색 막대(MRL)는 농산물에 잔류된 농산물이 허용치를 넘는 정도를 가리킨다. 가장 좋은 것은 파란색 막대도 적고, 오렌지색 막대도 작은 것이다.
이를테면 몰타는 참으로 농약을 많이도 뿌려대는 국가다. 조사한 대부분의 농산물에서 농약이 검출되었고, 그 중 절반은 잔류허용치(MRL:섭취시 인체에 해가 없다고 생각하여 정한 기준)를 넘고 있다. 이쯤이면 지나치지 않을까. 반면에 아이슬란드와 핀란드는 농약 자체의 검출도 낮을뿐더러, 허용치를 넘는 농산물은 없다. 물론 샘플으로 조사 하였기에 모두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곳을 여행할 때는.. 시장에서 자국산 농산물을 구입해.. 호텔서 대충 딱아 먹으면 될 듯 싶다. 물가가 비싸다는 데.. 이런 여행팁을 얻는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태리는 어떤가. 농산물에 농약을 적지 않게 뿌리는 듯 싶고(파란 막대가 길다) 적색막대(허용되지 않은 농약이 검출된 %)도 1.2를 가리키고 있다. 이는 100개의 농산물 중, 1개는 적어도 허용되지 않은 농약을 사용하여 기른 것을 의미한다. 먹는 거에 진심이라는 이탈리아도 별수 없네 싶지만 그래도 다른 EU 국가에 비해서는 농약 잔류정도가 심각하지 않다. 여하튼 시장에서 사 온 농산물은 물에 적어도 10분 정도 담가 농약을 빼낸 후 먹는 게 안전하다.
그런데, 시장에 보이는 다양한 수입산 농산물은 어떨 것인가. 수입산은 모두 농약이 많다고 생각하면서 구입해야 하나? 이런 궁금증도 속 시원하게 풀어줄 데이터가 있다.
수입농산물의 경우 허용되지 않은 농약을 사용하면 수입금지기에 농약잔류허용기준(MRL)이 넘는가를 살펴보면 된다.
딱 봐도, 뉴질랜드와 호주산은 안전하다. 농약을 적게 뿌리기도 하고, 잔류정도도 극히 낮다. 하지만 라오스나 말레이시아, 가나산 농산물은 피해야 할 것이다. 농약도 많이 뿌리고, 기준치를 넘는 농약잔류도 심하다. 중국산도 허용치를 넘는 샘플이 12%가 넘는다. 그러니 중국산 농산물을 사면 10개 중 하나는 농약 잔류허용치를 넘는 농산물을 고르는 셈이다.
이쯤 되면, 이탈리아에 사는 소비자 입장에서 무엇을 골라 사야 가족건강에 좋은지 알 수 있다. 일단, 수입은 뉴질랜드, 호주산이면 땡큐다. 그리고 EU 내에서는 가능한 북반부에 위치한 나라 것을 사 먹는 게 좋겠다. 물론 이탈리안 산도 양호는 하지만 물에 담갔다 먹어는 게 안전하겠다.
이와 같이 민감한 정보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유럽 식품처는 참으로 지독하다 싶다. 수입농산물의 식품안전성이 EU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안전성보다 좋다는 것조차 모두 밝힌다. EU 소비자가 외면하면 어쩔 텐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대한민국산 농산물에 대한 자료는 없다는 것이다. 샘플이 200개 미만은 기록하지 않았다고 하니.. 아마도 우리나라 산 농산물은 극히 적게 수출되거나 수출되지 않는 모양이다. 다만 일본산 농산물이 4.5% 정도 농약잔류기준치를 넘겼다니 EU 회원국 중, 농약 불량 top5 안에 들 정도로 농약관리를 잘 못 하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