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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타카 Dec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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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동산 -


2017년 5월. 나이지리아 정부의 요청으로 정미소가 모여있는 아바칼리키시를 향했다. 정미소가 몰려 있는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창고 건물로 안내를 받았다. 창고는 블록 벽과 함석판을 덧댄 지붕으로 되어 있었다.


한낮인데도 창고 안은 어두웠고, 태양에 달궈진 함석지붕은 성능 좋은 온풍기가 되어 실내로 더운 바람을 쏟아내고 있었다. 대략 30평쯤 되는 창고 건물 한쪽에는 나무 탁자가 놓였고, 탁자를 빙 둘러서 정미소 주인, 전문가, 지역 관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그 뒤에는 커다란 날개를 가진 선풍기가 바람을 뿌렸다.


그들에 대한 첫인상은 ‘호의’였다. 그다음은 ‘열의’였다. 그들은 겸손하지만 신중한 표정과 태도로 자신들의 상황을 차분하게 설명해 나갔다.


에본지주 아바칼리키시는 나이지리아에서 쌀 생산이 가장 많은 지역이며, 이곳서 생산되는 쌀의 수확량에 따라 나이지리아 쌀 가격이 달라진다고 했다. 문제는 기후변화와 뒤떨어진 기술로 인해 쌀의 수확량이 들쭉날쭉하고 그나마 생산된 쌀도 도정하는 과정에서 조각이나 버리는 양이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 조각나서 버리는 쌀만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하면서 한국의 기술로 자신들을 도와 달라고 했다. 한국의 발전된 정미기계를 지원해 주고,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지식을 가르쳐 달라고 했다.


누구든지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정미소 주인, 전문가, 지역 관료의 열의가 담긴 설명과 친절함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떻게 하면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할 것이다. 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기 위하여 한국정부(농림축산식품부)에 연락을 할 작정까지 했었다.

벼를 찌는 모습

회의가 끝나고 마을을 돌아보게 되었다. 골목 모퉁이를 돌아서니  너른 광장이 나오며 앞이 탁 트였다. 거기에서는 벼를 찌고, 찐 벼를 넓게 펴서 말리는 인부가 있었다. 도정과정에서 쌀이 워낙 잘 쪼개지다 보니, 벼를 도정하기 전 한번 쪄서 말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쌀알이 단단해져서 덜 쪼개지고, 쌀의 맛도 좋아진다고 한다.


주위 돌아보다가 신한 광경을 발견했다. 벼를 찌는 곳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 얕트막한 동산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건 뭐지?’

인고의 동산

장엄하고, 아름답고, 이국적인 광경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동산 위에서 무엇인가를 하고 있었다. 노란색 흙 같은 것을 쟁반에 담아 흩뿌렸다. 건조한 바람이 휙 불자, 먼가 비산 하면서 태양광을 산란시켰다. 황금빛이 동산을 감싸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이국적인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시간이 얼마만큼 지났을까. 이마에서 솟은 땀방울이 눈을 아리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 안내인에게 물었다. “저건 무엇이지요?” 안내인은 잠시 언덕을 응시하더니, 느릿한 목소리로 설명을 시작했다.


그 황금 동산은 인고(忍苦)의 동산이었다. 남편을 잃고 홀로 아이들은 키워야 하는 미망인들의 생명줄이었다. 남자도 변변한 일거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남편을 잃고 아이들만 남은 여인네가 할 수 있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과 같이 굶어 죽을 상황이었다.  


엄마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일거리를 찾다가, 정미소에서 버린 쌀겨에 눈을 돌렸다. 쌀겨 속에 숨어있는 조각난 쌀알이 동아줄처럼 보였다. 엄마들은 이에 매달렸다. 배고픈 아이를 먹여 살리겠다는 그녀들의 간절함에 정미소 주인도 어쩔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조각난 쌀알갱이를 찾기 위해 시작된 행렬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쌀겨로 이루어진 거대한 동산 탄생이었다. 오늘도 미망인들은 동산에 올라가서, 쌀겨가 가득 찬 부대를 풀어헤치고 있었다. 쌀겨를 바람에 후후 불어 날리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조각난 쌀’, 아이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양식을 찾아내어 주워 담았다.


미망인들의 얼굴에는 삶을 지속시킬 수 있다는 안도감이 서려 있는 듯 보였다. 쌀겨로 이루어진 이 동산은 그녀들에게는 생명을 이어주는 황금 동산과 다름이 없었다.


문득 내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미망인들에게 허락된 유일한 일터를 빼앗아 버리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숟가락에 담길 식량을 빼앗아 버리는 짓이었다.


'나는 도대체 여기에 무엇을 하러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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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에서 가난한 개발도상국이 선진국의 반열에 합류한 건 우리나라가 처음이고, 현재까지 우리나라 이외엔 없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걸어간 길은, 현재까지 알려지고 증명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다.  물론 중국이나 인도 같이 어마어마한 인구가 벌어들이는 노동의 대가로 부를 축적한 나라는 제외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이런 이유로 ‘우리의 경험을 전수해 주면 가난에서 벗어날 것이다.’라는 착각을 하는 것 같다.     


자원도 자본도 없었던 대한민국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사람’을 중심으로 운영된 정책 중 눈여겨 볼만한 게 새마을 운동이었다. 새마을 운동은 가난에서 벗어나자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으며, 가성비 높은 지역개발을 위한 여러 수단들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러니 가난한 나라가 반듯이 눈여겨볼 정책이 새마을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유감스러운 점이 있다면, 가난한 대한민국에서 운영했던 새마을 운동은 지금의 새마을 운동과는 크게 다르다. 새마을 운동이 국가정책에서 멀어진 이후로 앙꼬가 빠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새마을 운동을 근거로 판단할 때  가난한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다음과 같다.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가난을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 그런 수고스러운 노력을 근면하게 밀어붙인 사람, 혼자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과 같이 가난을 이겨내는 사람들을 전 국토 여기저기에 탄생시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정부 주도로 전 국민이 이를 따르게 하여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본다면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표어로 만들었고 이를 충실히 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전 국민을 세뇌시켰다. 그리고 마을별로 성과가 나타나면 근면, 자조, 협동한 사람의 몫으로 돌리는 정책을 더했다. 여기에 대대적인 선전은 덤이다.


이렇게 보니 가난한 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간단해 보인다. 가난한 나라 스스로 국민들이 근면, 자조, 협동하는 기류를 만들어 내면 된다. 그리고 그 성과를 제대로 분배하면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다른 국가는 절대로 해 줄 수 없는 일이다.   


이 부분이 대한민국이 수십 년간 해외원조를 받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다른 점이다. 이 것이 동일한 민족이면서도 아직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북한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해외원조를 추진하고 정책 책임자와 현장 담당자는 어떤 역할을 하면 될 것인가. 밥그릇을 가져다가 숟가락으로 밥을 퍼서 떠먹어줘야 할까? 아니면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고기 잡는 도구를 쥐어줘야 할까? 그간 유럽과 미국 같은 원조 선진국들은 개발도상국에 가서 밥도 먹여주고, 물고기 잡는 법도 가르쳐 주고 도구도 줬던 것 마냥?


동남아시아 3개국인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21세기 들어 베트남의 발전양상은 라오스와 캄보디아와는 사뭇 다른 상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 3개국에 차등적인 해외원조를 했을까?  아프리카의 가나, 코트디부아르, 부르키나파소, 나이지리아의 발전상은 어떤가?    

  

해외원조의 성공이라는 것은 수혜국의 사정과 태도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해외원조는 가난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나라에게 그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지, 그렇지 못한 나라에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해외원조는 크게 세 가지로 가야 될 거라고 본다. 가장 중요한 첫 번째는 인류애 차원에서 굶지 않게 하고, 아플 때 병을 치료해 주고 재난이 발생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협력을 위한 접근이다. 가난을 극복하자는 열의가 차오르는 나라를 도와줌으로 해서 미래의 협력관계를 공고히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우리 국익을 고려한 접근이다.     

 

우리가 가장 많은 지원을 해주고,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위해 가장 많이 노력한 개발도상국은 북한이다. 그 과정과 결과는 우리 국민 대부분이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의외로 가난한 나라를 도와준 경험이 있다. 이쯤이면 해외원조 정책입안자나 담당자가 무엇을 해야 할지, 힌트가 될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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