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 눈의 의사 선생님이 어설픈 영어로 설명을 시작했다. 짧은 문장 명확한 단어. 이국땅에서 내 몸 안에 직경 20센티가 넘는 종양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다. 물어보았다. ‘암인가요’ 그녀는 ‘아닐 수도 있다.’라고 대꾸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표정을 지으면서 배속을 열고 종양 덩어리를 훅 끄집어 낸 다음에 끝이라는 동작을 취했다. 나를 안심시키려 한 행동이었지만 나는 그게 공포스러웠다.
겪어 보지 못했던 심리적 변화가 시작되었다. 혼란스러웠다. 서둘러 귀국해서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시원하게 말이 통하니 도움되는 말을 듣겠지, 싶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의사선생님은 너무나도 바빴다. 10여분 동안 할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수술을 마치고, 항암 치료를 하면서 간간이 인터넷 정보를 찾았다. 마음의 혼란을 잠재우려면 제대로 정리된 자료를 봐야했기에. 그때 찾은 게 미국암연구소(NCI : National Cancer Institute) 자료다.
NCI에 따르면 암은 신체 건강에 영향을 미치고, 익숙하지 않은 다양한 감정을 유발할 수 있다. 이 감정은 매일, 매시간 심지어 분단위로도 바뀔 수 있다. 현재 치료 중이거나 치료를 끝낸 환자,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런 감정의 변화는 지극히 정상이다.
이 짧은 글에 위안을 받았다. ‘아내도 내가 이상해졌다고 하는 데, 난 정상이구나.’ 암에 대한 정보는 피하는 게 아니라 알아야 되는 거였다. NIC의 내용의 주요 부분을 간추려 소개하겠다. 나와 같은 혼란을 격을 수 있는 이들을 위해.
이런 감정적, 심리적 변화는 가치관에 따라 대처방식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더 강해져야 하고 가족과 친구를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도움을 청하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려 든다. 믿음에 의지하기는 사람도 있다. 어떤 결정을 하든지 자신에게 바른 일을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암에 걸렸을 때, 다음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
*압도 :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면 삶이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생존에 대한 걱정, 알 수 없는 의학용어, 삶에서 즐거움이 없어진다는 생각, 무력감 등의 이유 때문이다. 암에 대해 자세히 알고 많이 배우는 것과 빠쁘게 생활하는 것이 이런 상황을 벗어나는 데 도움된다.
*부정 :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심각한 부정 상태가 오래가면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
*분노 : ‘왜 나야?’라고 묻는 것은 매우 일반적이다. 주변인 또는 신에게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분노는 무서움, 공황, 좌절, 걱정, 무력감 등이 원인으로 자신의 분노에 대해 가족과 이야기하고, 의사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것이 좋다.
*두려움과 걱정 : 암 치료에 대한 통증, 가족, 직업, 사망 등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있다.
*희망 : 암에 걸렸다는 것을 받아들이면 희망을 느낄 수 있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 상당수가 살아남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불안 : 치료 중, 치료 후 겪는 삶의 변화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스트레스를 몸이 치유되는 것을 방해할 수 있으니, 스트레스가 걱정되면 의사에게 상담해야 한다.
*슬픔과 우울 : 삶에 대한 상실감을 느끼게 되면서 슬픔과 우울증이 오게 된다. 슬프게 되면 힘이 없고, 피곤해지고, 먹는 것이 귀찮아질 수 있다. 대부분은 이런 감정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라지거나 줄어들지만, 반대로 더 심해지는 경우가 있다.
*우울증 : 2주 이상 슬픔, 무감각, 긴장, 죄책감, 변덕스러운 느낌, 무력함, 절망감, 집중이 어려움, 걱정, 무관심, 자살 등의 감정이 지속되면 의사에게 상담해야 한다.
이외에도 암 환자는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고, 외로움을 느끼며 친구들에게 멀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정상적인 것이다. 일부 사람은 암이 일종의 ‘호출’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작은 것들을 즐기는 방법과 중요성을 깨닫는다. 새로운 곳을 방문하거나 가족과의 삶에 더 집중을 하거나 평소 하지 않았던 특별한 일을 시작하기도 한다.
미국암연구소에서는 암 환자가 암에 적응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첫 번째, 의사나 간호사에게 당신의 상태를 말하고, 암의 진행단계를 알아보며,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을 문의하는 게 좋다. 당신의 질문이 바보 같다고 느끼지 말아야 하며, 필요시 도와줄 사람과 같이 의사와 상담해라.
둘째, 암은 가족과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우선 가족은 각자의 역할이 달리해야 한다. 치료비와 생활비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며 암 환자를 돌보기 위해 거주를 옮겨야 하는 경우가 있다. 암환자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실행에 옮기는 것이 좋다. 간병을 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야 한다.
셋째, 배우자는 암환자와 같은 두려움과 걱정, 공포를 느끼게 된다. 일부는 암으로 인해 유대가 더 강해지고, 일부는 유대가 약화된다. 서로 간의 소통방법을 개선하고, 치료에 대한 결정을 공유하고, 당장에 해결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라도 이야기하면서 풀어내려 노력하고, 함께 할 수 있는 특별한 날(외식, 행사, 영화, 취미)을 정하는 것이 도움 될 수 있다.
넷째, 자녀가 암에 대해 알게 되면 혼란스러울 수 있지만, 모든 것이 괜찮은 척하는 것은 좋지 않다. 어린이도 잘못을 감지할 수 있기에, 암에 걸린 당신이 기분이 나쁘거나 집을 떠나 있어야 한다거나 아이들과 같이 시간이 보낼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18개월 정도의 어린아이도 알아차리는 일인지라 솔직해지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을 말하는 것이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게 하는 것보다 좋다.
암 환자는 겪어야 하는 신체변화에 대해도 알아두어야 한다.
암 치료 중, 치료 후의 신체변화는 단기적인 것도 있지만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탈모 또는 피부 변화, 수술 흉터, 체중, 팔다리 손실, 장루, 생식 능력 상실 등의 신체 변화는 분노와 슬픔을 불러온다. 이런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필요하다면 외모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규칙적인 운동(걷기, 달리기, 수영, 요가 등 스포츠)은 신체 변화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고 스트레스와 긴장을 줄여준다. 취미와 자원봉사 활동도 자존감을 높이는 데 유리하다.
연구에 따르면 수영, 걷기, 요가 , 자전거 타기와 같은 운동으로 에너지를 얻을 수 있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근육이 강화되고 치유 속도가 높아지며, 피로 감소 및 스트레스 조절에 유리하다. 식욕 증가, 변기 감소 등의 효과도 있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향해 나아가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암 치료 후 성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흔히 있는 일로, 암 치료의 다른 부작용보다 오래 지속될 수 있다. 이는 항암 중 화학요법, 방사선 치료, 특정 약품 또는 수술로 발생한다. 불안, 우울증, 스트레스와 같은 정서적 문제가 원인일 수 있다. 일부 생식기 관련 암의 경우는 성생활에 치명적일 수도 있다. 전문가의 상담과 도움이 필요하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 삶의 의미를 더 깊게 찾으려는 사람이 있다. 삶의 목적이나 암에 걸린 이유를 이해하고 싶어 한다든지. 신앙 또는 종교, 신념, 가치관 등 ‘존재의 이유’와 관련있는 무엇을 추구하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암이 자신의 가치관을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재산이나 일이 덜 중요해 보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기도 한다. 신앙을 기반으로 하여 영적인 평화를 찾는 다면 암환자를 돕는 종교인 또는 단체가 있으니 도움을 청할 수 있다.
NCI자료에는 직장인이 꼭 참고해야 할 내용도 담겨 있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종종 직장에 복귀하기를 원한다. 직업은 돈도 벌 수 있을 뿐 아니라 일상으로의 복귀에 도움이 된다. 직장으로 복귀하기 전 의사와 상담을 해야 하는데, 화학 요법이나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 직장생활을 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암 치료 동안 동료의 반응이 달라질 수 있다. 도와주는 사람도 있지만, 분노나 좌절을 일으키게도 할 수 있다. 당신이 예전처럼 열심히 일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에 걸린 사람들 중, 다른 사람들 앞에서 쾌활하게 행동하는 것에 지쳤다는 증언도 있었다. 암에 걸리기 전보다, 의미 있는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도 한다.
직장으로 돌아가면 도움을 받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치료에 대해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더하여 직장에서의 법적 권리도 알아두어야 한다. 암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공정하게 대우받지 못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조처다.
글을 정리하기 위해 오랜만에 NCI 자료를 다시 보았다.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내용이 지금에 와서는 마음에 와 닿는다. 나의 가치관이 크게 변했고, 직장에서 동료들의 반응으로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운동이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