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끊어 본 적이 있었다. 담배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암 유발 물질이라는 공익광고 내용을 겁냈기보단, 건강하게 술을 오래 마시고 싶어서였다. 한달 남짓담배를 끊은 후 차를 타고 여행을 하던 중, 하늘 위에 둥둥 떠다니는 구름을 보고 읊조린 말은 '구름이 뻐금 뻐금 대네'였다. 얼마 후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다.
항암을 끝내고 회사에 다시 다니기 시작한 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담배와 술 때문에 망했다.'라고 하면서 담배는 꼭 끊어야 하고 술도 멀리하는 게 좋다고 말했었다. 나와 같이 암에 걸릴 수도 있다는 경고를 덧붙이기도 하면서 그랬다. 시간이 좀 지나 깨달은 바, 이는 '내로남불'을 실천한 것이었다.
사실 암 예방을 위해 이것저것 하라는 말은, 너 죽을 수도 있으니 네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라고 겁주는 바와 다름이 없다. 나는 이런 식의 경고를 좋아하지 않아 귀에 담지 않고 살았었다. 담배는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경고와 폐암 사진을 덕지덕지 붙인 담뱃갑에서 담배를 빼어내 입에 물고는 맛들어지게 피워댔던 게 나의 과거 모습이었다. 그런 주제에 남들에게 암 예방을 하라면서 떠들고 다니다니...
'암 예방'하라는 말은남에게 하기 보단 나 스스로에게 할 말이다. 암이 재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너무나도 잘 알기에 더욱 그렇다. 암에 걸렸던 사람은 일반인보다 암에 걸리기 더 쉽다는 게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이다. 똑같은 곳에서 암이 다시 자라날 수도, 의외의 곳에서 암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의외의 곳에서 암이 발생하는 것을 2 차암이라고 하는 데, 가장 잘 알려진 2 차암이 백혈병이라고 하니 머리에 떠올리기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코로나 19는 면역이 되지만, 암은 면역은커녕 한번 암에 걸리면 암에 다시 걸리는 확률이 높아지는 병이니 암으로 고생한 사람 입장에선 억울할 다름이다. 암이란 놈의 세상이 그리 돌아가니 달리 하소연할 데도 없다. 그러니 암이 다시 걸리지 않도록 하는 최선은 방편은 '암 예방'을 실천하는 길이다.
요즘 나를 고민케 하는 것은 비만이다. '살찌면 뭐 어때서?' '살찌는 게 암이랑 얼마나 관계있길래?' 할 수도 있겠지만. 비만은 입, 인두 및 후두암, 식도암, 위암, 췌장암, 담낭암, 간 암, 대장암, 유방암, 난소암, 자궁내막암, 전립선암, 신장암과 관련된다. 이쯤이면 비만은 암의 세계로 들어서는 문을 열게 하는 만능열쇠와도 같은게 아닐까.
나는 암이 걸리기 전 발암 물질로 이름을 드 높이고 있던 담배를 피우고, 담배보단 명성은 좀 낮지만 만만하게 볼 수 없는 술을 마시고, 비만까지 했었다. 암에 걸릴 짓만 골라한 셈이었다.
암 판정을 받은 후 가장 해악스럽다고 알려진 담배와 술을 끊고 한시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체중이 꾸준히 늘어났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 입이 심심하니 뭐라도 입에 넣고 싶고, 밤늦게 술 마시던 버릇이 남았는지 저녁 식사 후 주전부리를 찾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먹는 횟수가 늘어나는 것도 부담인데, 음식이 너무 나도 달달한 것도 걱정거리다.
14년 전 미국에 처음 갔을 때, 처음 맛본 혀를 얼얼하게 할 만큼 달았던 아이스크림은 왜 미국에 뚱뚱한 사람들이 많은 지를 단박에 이해시켰었다. 그런 아이스크림과 비등한 수준의 단맛이 요즘 우리나라에 만연해 있다. 왜 이렇게까지 우리 음식이 변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부담스런 현실이 되었다.
이 달달한 먹거리를 집어 먹고 그 맛에 즐거워하는 나를 발견할 땐, 익숙했던 반성을 하게 된다. 속이 뒤집힐 때까지 술을 마신 다음날 했던 '담부터 절대 이렇게 술을 퍼 마시지 말아야지.'와 비슷한 반성이었다. '담부턴 이런 달달한 건 멀리해야지.'
이런 상황에 처한 건 원래 의지가 약한 탓도 있지만, 회사 생활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한 몫했다고 변명하고 싶다. 사실 암에 걸리기 전처럼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체력부터 예전만 못하고, 장점이었던 과단성 있게 일을 몰아붙이기도 멈칫멈칫해졌다. '이러다 무리하면 안 되지.' 하는 생각이 브레이크를 걸었다. 이럴 때마다 스트레스가 배어 나오고. 하지만 이를 무마시켜줄 수 있는 담배는 못 피고 술도 못 마시니, 달달한 음식을 찾게 될 수밖에.
여하튼, 잠시 늦추었던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할 계획이다. 동시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달달한 음식을 찾기보단, 나에게 필요한 암 예방 글을 적기로 했다. 흐릿해진 암 예방에 대한 지식을 명료하게 하는 효과도 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비만, 과체중, 설탕.... 암 예방에 가장 힘들고, 어렵고, 실패 확률이 높은 놈들. 나를 위한 암 예방을 적어가면서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어제저녁, 한 덩어리의 떡을 집어먹었다. 가뜩이나 탄수화물 덩어리인 떡에 설탕을 범벅시킨 놈이었다. 겁나는 단 맛. 먹거리 X-파일 같은 프로그램이 부활해서, 먹음직한 모양이지만 설탕을 넣지 않은 떡 가게를 소개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담배곽에만 암 경고를 하지말고, 설탕이 담뿍든 음식에도 암 경고문을 붙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것 먹고 살찌면 입, 인두 및 후두암, 식도암, 위암, 췌장암, 담낭암, 간 암, 대장암, 유방암, 난소암, 자궁내막암, 전립선암, 신장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적어도 암의 맛을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암 환자 주변서 고통을 나눈 사람이라면 달달한 음식을 멀리하고 살 찌지 않게 노력할 거라고 본다. 이런거 공약하는 후보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