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by 진영규

“디자인의 ROI는 얼마인가요?”. 종종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외부 프로젝트 비용을 산정할 때, “몇 개의 화면을 디자인하느냐”로 예산을 잡기도 합니다. 이건 마치 베토벤 현악 4중주를 “말총으로 나일론줄을 약 3천 번 문지르는 일”로 정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기술적으로는 맞지만, 본질은 전혀 설명되지 않습니다.

디자인 성과의 정량적 측정을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이번 UX 변경으로 전환율이 4% 올랐습니다.”라고 하면 모두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하지만 일부 수치만을 근거로 판단하면, 심미성, 신뢰, 감동과 같은 핵심 가치들은 “측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됩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만 측정해서 전체인 것처럼 말할 바엔, 차라리 측정하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이럴 때 흔히 아인슈타인의 말로 알려진 문장이 떠오릅니다. “Not everything that counts can be counted, and not everything that can be counted counts.” 중요한 모든 것이 측정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측정되는 모든 것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UX 디자인에도 이 말이 너무 잘 들어맞습니다.

사실 정량화에 대한 갈증이 가장 큰 사람들은 바로 디자이너들입니다. 프레젠테이션 50장을 선 하나 올라가는 그래프로 대체할 수 있다면, 누가 가장 편할까요. “보세요, 수치가 상승했어요. 디자인 덕분이죠.”라고 말하고 보고를 끝낼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 “디자인의 ROI를 보여주세요”라는 말은 사실 이런 질문입니다. “디자인팀은 일을 잘하고 있나요?” 우리는 은행 창구직원의 친절함이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수치로 따지지 않습니다. 그건 그냥,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마음 한쪽이 조금 아픕니다. 아직 충분한 신뢰를 얻지 못했구나. 그럴 때 필요한 건 또 다른 숫자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위해서는 설명하고, 설득하고, 공감이 필요합니다. 숫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가치에 대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