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는 이미 답을 밟고 있다

by 진영규

UX업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1900년대 초 미시건 주립대 에서 겨울을 기다렸다가 학생들이 눈 위에 만든 이동 패턴을 관찰해 보도를 설계했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이 이야기가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사용자는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길을 만든다는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형성된 길을 ‘Desire Path’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2011년 미시건 주립대는 리노베이션하면서 보도를 깔지 않았습니다. 1년간 학생들이 잔디를 밟고 다니게 놔뒀고, 형성된 길들을 그대로 포장했습니다. 결과는 직선이 아닌 유기적인 곡선의 길들이었습니다. 설계자의 논리가 아니라 사용자의 발이 만든 논리였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이 현상은 그대로 나타납니다. YouTube에서는 메뉴 탐색보다 홈 피드 추천을 클릭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Amazon에서는 정교한 카테고리 구조보다 검색창과 '함께 구매한 상품' 추천이 더 많이 사용됩니다. 설계자가 그려놓은 이상적인 경로보다, 수백만 명의 실제 행동 데이터가 만든 경로가 더 정교하고 더 현실적입니다.

이와 관련된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사용자가 만들어낸 길을 인정하고 포장하거나, 혹은 울타리를 치고 원래 설계한 길로 돌아오라고 강요하거나요.

우리는 종종 사무실에서 사용자 여정을 예측하며 완벽한 경로를 설계합니다. 하지만 제품이 출시되고 나면 알게 됩니다. 사용자는 우리가 만든 길이 아니라 자기에게 가장 효율적인 길을 걷는다는 사실을요.

검색 로그, 클릭 패턴, 이탈 지점. 이 모든 것이 디지털에서의 Desire Path입니다. 그 길이 우리의 의도와 다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그 길을 무시하고 막으려는 태도입니다.

사용자는 이미 답을 밟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길을 포장하는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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