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같은 휴대폰을 꺼낼 때

by 진영규

프리즈 서울 아트페어에 다녀왔을때 일입니다. "이 작품은 2억5천이에요"라고 상담하는 소리가 들렸고, "이 작품이 60억에 팔렸대"라는 이야기도 들렸습니다.

관람객들은 저처럼 초대권을 받아 구경 온 사람들도 있었고, 실제로 작품을 구매하러 온 컬렉터들도 있었죠. 명품 가방을 든 분들과 에코백을 든 학생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은 작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당연하지만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모두가 같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구매하는 그림, 차고있는 시계, 집은 수백 배 차이가 날 수 있지만, 손에 쥔 디지털 기기는 거의 동일했습니다.

넷플릭스, 스포티파이, 챗GPT. 구독하는 서비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부와 신분이 더 이상 구분선을 긋지 못합니다.

네그로폰테가 『Being Digital』에서 말했듯, 디지털은 본질적으로 복제 비용이 0에 수렴합니다. 제러미 리프킨의 '한계비용 제로 사회'도 같은 맥락이죠. 무언가가 디지털로 전환되는 순간, 희소성은 줄어들고 누구나 거의 같은 조건에서 접근할 수 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에르메스 버킨백과 내 가방의 가격 차이는 1000배가 넘지만, 최신 아이폰과 보급형 스마트폰의 차이는 기껏해야 3-4배 정도입니다. 더 중요한 건, 두 폰으로 인스타그램을 쓰는 경험은 거의 동일하다는 점입니다.

프리즈 서울에서 본 풍경은 그래서 조금 역설적이었습니다. 예술은 여전히 극단적인 가격 차이를 드러내지만, 디지털은 그 현장에서 오히려 평등을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UX 관점에서 보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원칙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같은 앱을 쓰고, 같은 인터페이스를 경험하며, 같은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결국 UX 디자인은 디지털이 가진 평등의 힘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실현하는 일입니다. 사용자가 누구든 상관없이, 모두가 좋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아트페어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그 순간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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