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어 하나가 바꾸는 결정

by 진영규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는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옥의 고참 악마 스크루테이프가 신참 악마인 조카 웜우드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인간을 어떻게 타락시킬 것인가를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내용이죠. 악마의 전략이 정교하고, 무엇보다 익숙합니다. 그중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불변하다'라는 기술적 형용사를 '정체되다'라는 좀더 감정적인 형용사로 바꾸어 버렸거든."

같은 상태를 가리키는 두 단어입니다. 하지만 불변은 신뢰를, 정체는 실패를 떠올리게 합니다. 단어 하나만 바꾸면 인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이처럼 여러 가지 편향 중에서 가장 강력하고 때로는 유용한 게 바로 프레이밍입니다.

고객경험은 중요하지만 우선은 실적이 먼저라는 말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 한마디로 고객경험은 나중에 할 일이 되고, 실적은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됩니다. 디자인 가이드라인도 중요하지만 일정이 급하다는 말에서는,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이미 신속함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치환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스크루테이프는 조카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큰 죄를 저지르게 하려 하지 말고, 작은 타협들을 반복하게 하라고요.

이번만 팝업 하나 더 추가해도 괜찮지 않겠냐는 제안이 나옵니다. 처음엔 모두가 찜찜합니다. 그런데 두 번째부터는 저번에도 했다는 말로 정당화됩니다. 취소 선택지를 조금만 작게 만들자는 의견이 나오고,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원래 이렇게 해왔다는 말이 됩니다. 한 번에 나쁜 UX가 되는 법은 없습니다. 작은 타협들이 쌓여갑니다.

또 다른 조언도 있습니다. 현재가 아닌 미래에 집중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지금 여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라고 합니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게 만들면, 현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게 되니까요.

일단 출시하고 나중에 고치자는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타이밍이 중요하니까 이 정도로 하고 다음 버전에서 개선하면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출시 후에는 더 바빠집니다. 새 기능 추가 스케줄이 생깁니다. 나중에 개선할 시간은 오지 않습니다. 결국 그 임시방편이 영구적으로 남습니다.

우리가 선택하는 언어가 우리의 결정을 만들고, 그 결정이 사용자의 경험을 만듭니다. 고객경험을 나중에 할 일로 부르는 순간,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장애물로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이미 게임에서 지고 있는 겁니다.

단어는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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