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차, 여전히 초보입니다

올해로 저는 22년 차 교사가 되었습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서 인디밴드의 베이시스트를 보았습니다. 작년에 30년 차가 되었다고 합니다.

95년에 데뷔해 같은 이름으로,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었습니다. 숫자가 주는 무게감에 남편이 툭 말을 던집니다.

"저 사람 진짜 대단하다. 30년간 한 가지 직업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가."


지나가듯 흘린 남편의 말에 문득 제 숫자가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앞자리 숫자가 또 한 번 바뀌었습니다. 매해 하나씩 쌓여온 숫자가 벌써 20을 넘어 중반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30이라는 숫자에 저와 남편이 그랬듯, 22라는 숫자도 다른 이에게는 무게감을 던져주겠지요. 남이 보기에 어쩌면 저도 이제 큰 숫자를 지닌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여전히 아이들을 모르겠고,

때로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고,

매해 교실에서 생겨나는 문제에 괴로워 잠을 설칩니다.


22년 차라는 이름으로 저를 소개하지만, 실상 제 마음은 2년 차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2월 말이 되면 여전히 걱정이 앞섭니다. 올해는 또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지, 내가 잘할 수 있을지, 한 해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을지.


22년간 교실에 서며 제가 분명히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직업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


아귀가 딱 들어맞는 물건을 찍어내듯 누구에게나 통하는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매해 아이들이 바뀌고, 같은 해에도 아이들은 자랍니다. 그래서 선생님도 함께 자라야 합니다.

22년의 세월이 저에게 남긴 가르침은 이것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 상황을 그냥 받아들입니다. 상황에 따라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따라갑니다. 물론 그 결정이 항상 옳지는 않습니다. 22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저는 흔들리고 갈등합니다. 아이들 앞에서는 여전히 초보 선생님입니다.


올해 저는 아홉 살 아이들을 만납니다. 이제 곧 선생님을 바라보는 아홉 살 아이들의 눈망울을 마주하게 되겠지요. 최선을 다하겠지만, 아마 올해도 저는 아이들을 쉽게 이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또 멈추겠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는 답을 내리기보다 묻는 시간에 가까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은 묻고, 저는 쉽게 답하지 못하겠지요. 대신 올해에도 그 작은 선택의 순간을 함께 건너가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