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의 세계

3월 첫 만남

by 콩나물시루 선생님

3월 첫날이 되었습니다. 매일 걷던 그 길에 한 걸음을 내딛어 봅니다. 주말 내 따뜻했던 봄기운은 금세 자취를 감췄습니다. 아직은 떠나기 아쉬운 듯 찬기운을 잔뜩 품은 바람에 코끝이 알싸합니다.


저는 2학년 14반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오늘 명단에서만 보았던 그 이름들이 이제 얼굴을 찾아가겠지요. 무릎 위를 간신히 넘어선 키 작은 책상 위로 아이들 이름이 적힌 삼각 이름표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10년 이상을 함께한 물건들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저를 기다립니다.


아직은, 조금은 낯선 그 자리에 서서 한참 교실을 둘러봅니다. 분명 내 교실인데, 아직은 내 교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빈 구멍을 채워 줄 한 조각을 찾아보듯 그렇게 저는 제 자리를 지킵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2학년 담임으로 만들어 주는 작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립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제 허리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여자아이가 교실 앞 문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은 잠이 묻어 있는 얼굴에 긴장도 가득 담겨 있습니다.


"안녕, 어서 와."


아이를 교실로 들여보냅니다. 작년 첫 초등학교의 시작을 마친 아이는 2학년이라는 새로운 공간에 또 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제법 학교생활에 익숙해진 것일까요. 스스로 이름을 찾아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갑니다. 그 작은 손으로 가방을 책상 옆 고리에 걸고, 가져온 준비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정리합니다. 그 모습을 저는 말없이 지켜봅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여기가 2학년 14반 맞아요?"


아이들이 하나둘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때 아이 하나가 자기 몸통만 한 가방을 복도에 질질 끌며 저를 기다립니다.


"가방을 메야지."


늘 그랬듯 행동에 대한 말이 먼저 튀어나갑니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요."

아이는 행동 대신 이 말만 남기고 그대로 제 옆을 지나갑니다. 교실 바닥이 가방을 들어주는 양, 가방을 끌고 자기 자리로 돌아갑니다. 저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첫날이었으니까요.


교실 밖 복도에서 다른 아이들을 맞이합니다.

아이 하나가 신발장에 실내화 주머니를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습니다. 손잡이가 복도를 향해 덩그러니 매달려 있습니다. 저는 정리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신발주머니 손잡이는 안쪽 끝으로 보이지 않게 다시 넣으세요."


아이는 제 얼굴을 보지 않은 채 정리를 합니다. 조그마한 손으로 선생님 말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깁니다. 신발주머니를 돌리지 않고 손잡이를 가방 안으로 억지로 집어넣고 있습니다. 손잡이가 아이 말을 무시하듯 넣으면 곧장 튀어나와 자기 자리를 지킵니다. 아이는 뜻대로 되지 않는 신발주머니에 자꾸만 손을 대 봅니다. 뒤에 있는 선생님을 한 번 돌아보고, 손잡이만 계속 만지작거립니다.


저는 '정리'를 말했고 아이는 '숨기기'를 이해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가 그냥 신발주머니 방향을 바꿔 줍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돌려놓은 신발주머니를 바라보고 아무 말 없이 교실로 들어갑니다.


아이의 뒷모습이 제가 서 있는 이곳이 어딘지 알려줍니다.

오늘 비로소 저는 2학년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가르치러 왔다고 생각했는데,

먼저 배우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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