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울렛에 가면 늘 걸음을 멈추는 곳이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꼭 그곳을 지나야 합니다.
레고 매장입니다.
매번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걸음을 멈춥니다.
그 앞에 서면 늘 발걸음이 느려집니다.
어린 시절, 레고 조각은 저의 긴 오후를 채워 주던 작은 친구였습니다. 예쁜 옷을 입고 제 옆을 지켜주던 미미 인형도 있었지만, 혼자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이 더 좋았습니다.
오후가 되면 안방 바닥에 레고를 잔뜩 늘어놓았습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작은 블록 위로 떨어졌습니다. 제 주위를 떠다니던 작은 먼지들도 블록과 함께 놀고 있었습니다.
블록을 하나씩 이어 붙여 집을 만들고, 담장을 만들고, 문을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 갔습니다.
그 시절의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레고가 사라졌습니다.
몇 학년이었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제 그런 건 그만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부모님 말씀만 어렴풋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 이후 마음 한쪽에 작은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그 자리는 오래 남아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은 늘 그런 식입니다. 그 순간의 공기와 빛,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만 남아 있습니다.
레고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아주 작은 순간이었습니다.
미니피규어 하나였습니다. 심슨 캐릭터였지요.
특별히 좋아했던 만화는 아니었는데, 그 조그만 모형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괜히 하나 갖고 싶어졌습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같이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한창 품절이라 레고 매장을 몇 군데나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찾은 작은 봉지 하나를 손에 들고 돌아오던 날,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영국에서 지내던 때였습니다. 제가 살던 마을 근처에는 디즈니샵이 있었습니다.
당시 레고로 만든 커다란 디즈니성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앞을 지나갈 때면 늘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살 수 없는 물건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비쌌고,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래도 한 번씩 서서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먼저 한국으로 돌아왔고, 남편은 졸업을 마치고 조금 늦게 돌아왔습니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온 그날, 여행 가방을 열었습니다.
그 안에 디즈니성이 들어 있었습니다.
박스는 접혀 있었고, 디즈니성을 완성해 줄 작은 블록을 담은 봉투들이 여행 가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린 시절에 남겨 두었던 무언가를 뒤늦게 돌려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요즘 또 하나 갖고 싶은 게 생겼습니다.
나홀로 집에 시리즈였습니다. 몇 년 전에 나온 제품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매번 매장 앞에서만 서성이다가 돌아섰습니다.
오늘 아울렛에서 그걸 다시 만났습니다. 3월 할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가격이 조금 내려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앞에서 한참 서 있었습니다.
"갖고 싶어?"
남편이 물었습니다.
저는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그 큰 상자를 들어 안았습니다. 계산대로 걸어가며 가슴에 꼭 끌어안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상자를 옆에 두고 앉았습니다. 자꾸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지금 사도 되는 건지, 왜 이렇게 기쁜 건지, 잘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방 안의 공기가 잠깐 돌아온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그 안방 바닥에 앉아 레고를 만들고 있던 아이를
조금도 다 보내지 못한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