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춘천을 다녀왔습니다. 춘천은 남편과 함께 종종 찾는 여행지입니다.
너무 멀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깝지도 않은 도시.
크지도, 그렇다고 작지도 않은 도시.
익숙해진 삶에 낯섦을 던져주는 차분함이 좋아 춘천을 좋아합니다.
서점과 사찰, 박물관은 제가 여행지에서 늘 찾는 곳들입니다. 오늘은 국립춘천박물관입니다. 누군가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곳에서 나의 시간도 함께 쌓아 올립니다.
창렬사 터 오백나한
나에게로 가는 길
상설 전시관에 오백나한을 전시 중이었습니다.
전시장 입구에서 저 멀리, 조그마한 나한상이 보입니다. 웅장한 느낌의 부처상과 달리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상은 조그마한 아이 같았습니다. 눈높이에 맞춰 우뚝 솟은 전시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사를 두른 나한상부터 바위 뒤로 몸을 반쯤 숨긴 채 미소 짓고 있는 나한상까지, 저마다의 모습으로 2026년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나한상을 만든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나한상을 만든 석공도 분명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겠지요. 그 마음은 어디에도 남지 않고, 이제 나한상만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박물관에 있는 모든 물건이 그랬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손에 머물렀다가, 그 사람보다 오래 남아 이곳까지 흘러왔을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백자 연적을 보았습니다. 유리 너머 연적 세 개가 조명 아래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섬세함에 나도 모르게 발을 멈추었습니다.
"너무 예쁘다. 나도 갖고 싶다."
손바닥만 한 도자기 연적이 금강산을 그대로 품고 있었습니다. 금강산의 기암괴석이 저마다의 기세로 위풍당당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솟아오른 기암괴석 위로 조그마한 암자가 놓여 있습니다. 암자 안에는 표정 없는 사람이 앉아 금강산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연적은 언제 쓰는 거지?"
"먹을 갈 때 물을 담아 두는 물통 같은 거야."
"그럼 그냥 그릇을 쓰면 되는 거 아냐?"
섬세함과 화려함에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남편은 당연한 듯 말합니다. 아마 이 연적을 쓰던 사람도 저와 같은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가지고 싶다.
그 누군가도 먹을 갈 때면 이 연적이 책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한동안 누군가의 책상 위에 머물다, 그 사람보다 오래 남아 이곳에 왔겠지요.
저도 아마 이 박물관 속 누군가처럼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으로.
"나도 갖고 싶다."
한참을 들여다보다 자리를 떠났습니다.
유리장 너머에 그대로 둔 채로.
돌아오는 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지만 이상하게도 비어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