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혜린이입니다.
작년 겨울, 저를 바라보며 눈물을 참아내던 열세 살 아이들 중 한 명입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지금 1층인데 학교 지킴이 아저씨께서 통화하고 싶어 하세요."
어젯밤, 혜린이에게 문자 한 통을 받았습니다. 내일 중학교 행사가 있어 수업이 일찍 끝나는데, 학교에 들러도 되겠느냐는 문자였습니다.
지난겨울, 졸업식을 끝으로 마음에 찬 바람이 가득했습니다. 그저 스쳐 가는 바람이라 생각했는데, 그 바람이 오래 머물렀습니다. 21년 동안 이런 적은 없었습니다. 한 해의 아이들이 이렇게 오래 마음에 남은 적도 없었습니다.
시간을 붙잡고 싶었습니다. 아이들과의 한 해를 책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두 달을 글을 쓰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너무 예뻤고,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 오래 그리웠습니다.
6학년 선생님으로 머물러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제 마음을 채운 아이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오늘 그 아이들이 학교에 온다고 합니다. 보고 싶다고 먼저 말하면 아이들에게 부담이 될까 조심스러웠습니다. 그저 너희가 원하면 오라고 이야기할 뿐이었습니다.
1층 학교 안전지킴이와 통화를 마쳤습니다.
저희 반 아이들이 맞으니 올려 보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몸은 컴퓨터 앞을 지키고 있지만, 제 마음은 벌써 복도를 서성입니다.
"선생님!"
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교실로 성큼성큼 들어옵니다. 17명입니다. 작년 저희 반을 가득 채웠던 그 얼굴들이 다시 교실을 채웁니다. 생각보다 너무 많았습니다. 제 주위에 둘러앉아 이야기하려던 계획은 잠시 접어 둡니다. 아이들을 2학년 자리에 앉혔습니다.
커다란 덩치에 몸을 쪼그려 의자에 다리를 밀어 넣습니다. 들어가지 않는 다리는 통로로 쭉 뻗어 있습니다. 그렇게 앉은 17명의 아이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저를 다시 바라봅니다.
"선생님! 보고 싶었어요."
"우와, 칠판 글씨도 그대로다."
"선생님, 지과필개는 어디 있어요?"
"설마 2학년도 쪽지시험 치는 건 아니죠?"
"저희 선생님 덕분에 기초학력시험 진짜 잘 쳤어요. 특히 사회요!"
중학교 교복을 입었지만 내 아이들은 여전히 열세 살이었습니다. 투정을 부리고, 시험 문제 줄여 달라 흥정을 하고, 예상치 못한 농담으로 저를 웃게 만들던 그 아이들이었습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나면 저는 모든 사진과 영상을 삭제합니다. 작년에는 단 하나의 예외를 두었습니다. 아이들이 보고 싶을까 봐, 4월 처음 촬영한 동영상을 아직 지우지 못했습니다. '모두 다 꽃이야' 노래에 맞춰 6학년 답지 않게 어색하게 웃으며 1학년처럼 율동을 하던 아이들 모습이었습니다.
조용히 다시 그 영상을 틀었습니다. 2026년 3월의 오늘이 2025년 4월의 어느 날과 겹집니다.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율동을 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화면에 다시 흐릅니다. 조금은 민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눈을 떼지 않습니다. 저도 그런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봅니다.
아이들에게 부탁을 하고 싶었습니다.
"얘들아, 우리 이거 똑같이 다시 촬영해 볼까?"
거절할 줄 알았습니다. "에이, 싫어요" 하는 소리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보다 더 반색하며 좋아합니다. 함께 찍자고, 같이 남겨두자고 먼저 말합니다.
작년보다 한 뼘은 더 커진 아이들이 여덟 살이나 할 법한 율동을 진지하게 따라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뻐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사실 아직도 2025년의 너희들이 제일 좋아."
수줍은 고백으로 마음을 대신합니다. 아이들은 웃으며 아무 말 없이 제 마음을 받아줍니다.
짧은 만남이 끝났습니다. 이제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2학기 회장 태린이가 인사를 합니다.
"공수"
"선생님께 인사"
"차조심, 길조심, 선생님 사랑합니다."
태린이의 목소리로 시작된 인사가 교실을 가득 채웁니다. 저는 그런 태린이를 바라보다 말합니다.
"너무 좋다. 선생님한테 너는 내가 예순 살이 되고, 네가 서른 살이 되어도 영원한 회장이야."
태린이는 언제나처럼 대답 대신 반달 같은 눈을 접으며 씨익 웃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졸업식 때 그랬듯 한 명씩 안아봅니다. 불편하면 악수해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들은 모두 아무 말 없이 제 품으로 들어옵니다. 이제는 저보다 큰 아이가 대부분입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여전히 제 품을 가득 채우던 그 열세 살입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 아이 하나가 말합니다.
"어, 선생님 냄새난다."
"맞아, 그 냄새다."
아마 늘 쓰던 향일 겁니다.
그게 아이들에게는 선생님 냄새로 남았나 봅니다.
저의 봄이었던 아이들에게
저는 이런 향으로 남아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