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 카뮈(1913-1960)의 철학 에세이다.
책은 부조리의 추론, 부조리한 인간, 부조리한 창조, 시지프 신화로 되어있다. 1942년 출판된 이 책은 카뮈의 '부조리 사이클' 단계의 소설, 희곡, 에세이인 <이방인>, <칼리굴라>, <시지프 신화> 중 하나이다.
첫 장 '부조리의 추론'에서는 부조리와 자살, 부조리의 벽, 철학적 자살, 부조리의 자유에 관한 카뮈의 생각이 담겨있다. 배경 설명 없이 혼자 이해하기에는 좀 벅차다. 이 장을 다 읽고도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부조리와 자살, 희망과 자유, 반항이라는 어휘가 반복되지만 이들 관계를 꿰기 어렵다. 나아가 카뮈의 문학적 은유와 비유는 더욱 이해를 어렵게 한다. 번역자의 해설을 보아야 한다. 번역자 김화영 님은 카뮈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알베르 카뮈 전집(20권)을 번역한 불문학자다. 카뮈가 이 책을 썼을 때의 상황과 샤르트르의 <구토> 서평을 쓰면서 부조리에 대한 정리가 되었다는 배경 설명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키워드를 쉽게 풀어 연결한다.
습관처럼 살아가는 어느 날 문득 '왜 사는가'라는 의문에서 부조리가 시작된다. 부조리를 회피하는 것은 희망과 자살이다. 희망은 내세의 삶에 대한 희망이고, 자살은 인간과 세계를 끝내버리기 때문에 둘 다 부조리의 귀결이 될 수 없다. 부조리의 귀결은 그 속에서 버티는 것이다. 반항과 통찰력을 간직한 채 습관의 삶을 사는 것이다. 희망을 갖지 않고 구원을 호소하지 않고 사는 것이다.
시지프가 돌을 올리지만 매번 굴러 떨어지는 현실은 부조리다. 욕망하는 정신과 실망을 안겨주는 세계는 서로 이어질 수 없는 단절이고 부조리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다시 돌을 굴리는 시지프의 반항과 열정은 운명에 대한 도전이다. 죽음에 이르기 전까지 자유롭게 많이 경험하고 사는 것이 인생이다.
다시 돌아와 2장 이후는 좀 수월하다. 부조리한 사람으로 돈 후안, 연극배우, 정복자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돈 후안은 자신의 한계를 알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다. 여러 여인을 만나는 것은 한 여인을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여인을 원하기 때문이다. 여자를 수집하지 않고 시간과 함께 거쳐간다. 배우는 동일한 사람이 다양한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양의 도덕에 부합한다. 정복자는 오직 육체로 사는 부조리한 인간이다. 패배하게 되어있는 투쟁을 선택한 사람이다. 그러나 가장 부조리한 인물은 창조자다. 소설가는 자신의 우주를 창조한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부조리 문제를 제기하는데, <악령>의 주인공 키릴로프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신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신이 존재한다면 모든 것은 그에게 달려 있으니 우리는 그의 의지에 반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따라서 신이 되기 위해서 자살한다. 카뮈에게 자살이 부조리를 해결하는 방법이 아니다.
"자살은 삶의 진가를 모라서 저지르는 행위다. 부조리의 인간은 오직 남김없이 소진하고 자기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할 뿐이다." 85-86
카뮈는 부조리를 이성으로 이해하기보다 개인의 감성으로 다룬다. 그의 인생 경험이 부조리에 대한 생각을 끊임없이 하게 한다. 17세에 폐렴에 걸려 죽을 뻔했던 카뮈는 젊은이와 죽음이라는 부조리를 깨닫는다. 건강악화로 하고 싶었던 교수가 되지 못하였지만 오히려 정치활동이나 연극과 같은 여러 일을 하면서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인이 된 것도 부조리하다.
카뮈의 부조리 사이클 단계에 해당하는 3부작 책을 읽고 나서 반항의 사이클인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 <반항적 인간>을 읽으면 그의 부조리에 대한 생각과 부조리 내에서 잘 살아가는 방법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