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사고뭉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by 이윤경

죽어야겠구나, 끝난 게 아니었어. 또다시 시작할 기운이 없다. 그냥 조용히 사라지고 싶었다. 차에서 내리지 말까...

예기치 않게 찾아오는 사건 사고들은 내게 통제권이 없다. 물론 선택은 더더구나 아니다. 그날도 그랬다. 퇴근하고 치과 야간진료를 다녀온 참이었다. 양쪽 이를 3개씩 무려 6개나 빼고 잇몸뼈 이식을 하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취가 풀리지 않은 상태로 집 근처에 다다르자 아주 큰 소방차 한 대가 눈에 띈다. 그리고 저기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우리 집은 사람들이 사는 곳과 뚝 떨어져 산 밑에 있다. 편의시설도 없이 29 가구만 모여 산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는 좁은 데다 경사가 있어 눈만 오면 비상이 걸린다. 거기다 S자 코스보다 어려운 구불구불한 길을 보면 처음 오는 사람들은 기절초풍을 한다. 암묵적으로 동네 사람들은 차가 마주쳤을 때 총길이의 3분의 1 지점에 있는 사람이 후진을 해준다. 그 길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커지는 사이렌 소리와 멀리 보이는 환한 빛이 대낮처럼 우리 동네를 밝히고 있었다. 무슨 일이 났구나, 불이 났나? 연신 눈길로 지점이 어디쯤인지 확인하면서도 확인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내 심장 소리가 들린다.

예전엔 살던 집 옆집에 불이 난 적이 있었다. 검은 연기가 꽉 차 2층에 있던 새댁은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었다. 우리 집과 마주 보는 창문에서 갓난아기를 안은 새댁은 나에게 애원을 했다. 아기를 받아달라는 거다. 아무리 가깝게 느껴져도 아기를 던져서 받기엔 먼 거리다. 나는 무서웠고 자신이 없었다. 우리는 둘 다 울면서 애걸복걸했다. 그 사이 젊은 남자가 어디서 찾았는지 사다리를 대고 올라와 아기를 무사히 구했고 119도 도착을 했다. 불이 나면 빨갛게 불길이 치솟기까지 시간이 꽤 걸린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언덕길 중간쯤에서 잠시 나는 차를 멈췄다. 사람들이 북적북적 모여있는 곳 위치가 우리 집이란 걸 확인하는 순간 되돌아 나가고 싶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현실과 내가 분리되는 느낌이다. 이 좁은 길을 어떻게 들어왔나 싶게 커다란 소방차가 2대나 있었고 경찰차도 와 있었다. 평소 얼굴 마주칠 시간도 없던 동네 사람들은 모두 다 나온 것 같다. 내가 내리지 않으면 모르지 않을까. 보아하니 남편과 아들은 아직 귀가 전이 분명하다. 왜 나는 힘들 때마다, 두려울 때마다 혼자일까. 천천히 군중들 가까이 다가가자 모든 시선이 몰리며 홍해의 기적이 벌어진다. 심장은 터질 것 같고 손이 떨린다. 차 문을 잡고 당기기 전 괜찮아, 괜찮을 거야, 정신 차려, 뭐든 너는 다 할 수 있어, 말도 안 되는 주문을 왼다. 사람은 궁지에 몰리면 참 유치하고 원초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심호흡 한 번 크게 하고 힘차게 차 문을 열고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까지 슬로모션이다. 누군가 저기 오셨다는 소리와 동시에 차 문을 닫는다. 언제 왔는지 경찰이 곁에 섰다. 집주인임을 확인하고 나를 안내하며 설명을 시작하지만 물속에서 들리는 소리처럼 윙윙거린다. 마당으로 들어가 불이 난 곳을 살펴보고 119와 경찰들이 몇 번씩 반복하며 질문하는 물음에 대답하는 동안 나는 서서히 안심이 되기 시작했다. 개집만 탔다. 개집 바로 옆에는 100년쯤은 됐을 법한 목련 나무가 있는데 온통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 나무에 불이 붙었으면 끝장날 뻔했다. 옆집과 담을 두고 있는 우리 집 담벼락도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나무와 담벼락이 생사를 가르는 경계가 되었다. 119 대원이 다가와 개들이 주변을 맴돈다고 알려준다. 사람들이 많아 다가오질 못하는 것 같다며 조용해지면 돌아오지 않겠냐고 말한다. 똑똑한 것들 같으니라고. 불이 나자 마당 맞은편으로 피해있던 개들은 119가 대문을 염과 동시에 빠져나갔단다. 다 돌아가고 인기척 없이 조용해지자 그제야 집으로 알아서 들어왔다.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 같다. 불을 끄느라 물을 얼마나 쏟아부었는지 마당은 질퍽했다. 집 안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느라 대원들은 방문과 화장실, 다용도실 등 온통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흔적이 선명했다. 진흙 발자국이 어디를 돌아다녔는지 말해주었다. 진흙쯤이야 얼마든지 청소할 수 있지. 집안을 치우는 동안 내 흥분은 가라앉았고 울 집 남자들도 그제야 알아서 들어왔다. 차분하게 한 마디 한다.

“ 어이구, 이 원수들아, 도움이 안 돼요 진짜!”

살면서 겪는 모든 경험들이 트라우마가 아니라 거름이 되었으면 좋겠다. 떨어지는 모든 생명들이 마지막을 안다고 해서 의미 없는 시간들이 아니었음을 나는 확실히 깨달았다. 불이 났다는 것을 안 순간 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또 그 순간들을 이겨내고 영원처럼 살아간다. 불길이 잡히기도 하고 번지기도 하는 나뭇잎들은 제 몸에서 떨어졌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생했다, 뜨거운 불길을 잡고 있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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