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들해들

행복

by 이윤경

노란 꽃이 생각난다. 흙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곳에 숨통을 틔운 꽃. 화분에 탐스럽게 담겨 대리석 계단을 장식하던 화려한 노란 국화보다 그 하찮은 꽃이 나는 더 선명하다.



열린 대문 사이로 빼꼼 누군가 얼굴을 내밀며 인사했다. 마당 청소를 하던 엄마는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호수를 수돗가로 끌고 가 수돗물을 잠갔다. 내려놓은 호수에서는 물이 새 나왔다. 저 꽃 이름이 무엇이냐 묻는 아주머니 손가락은 대문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아주머니를 따라 엄마도 나도 대문을 나섰다. 석재 담장과 아스팔트 길이 만나는 우리 집 담벼락에 바짝 붙어 아주 작은 꽃이 피어 있었다. 우리 집 담에 붙어 있으니 우리가 주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엄마는 꽃 이름을 모른다 하셨고 그분은 정말 조심스럽게 캐가도 되겠냐고 물으셨다. 엄마가 친절한 웃음으로 대답했던 표정이 생각난다.



달궈진 열기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던 아스팔트, 웅장한 대리석이 크게만 보이던 담장 그 사이에서 어떻게 숨을 쉴 수 있는 건지, 어떻게 흙을 찾아 뿌리를 내린 건지 그때는 관심이 없었다. 요즘에서야 그 장면이 영화의 한 컷처럼 보인다. 마치 단단한 벽으로 둘러싸인 커다란 성 안에 살던 사람들이 어떤 일을 겪게 될 지 비밀을 다 아는 존재처럼 그 꽃이 느껴진다. 우리 집 담벼락을 떠나던 그날부터 어쩌면 우리에게는 슬픔의 기운이 서서히 퍼졌던 게 아니었을까. 그 꽃은 살았을까.


우리는 자꾸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손으로 입을 가렸다. 언니는 열심히 바보 개그를 하는 중이다. 그런데 우리는 역으로 언니를 바보로 만들어 놀리느라 해들해들 눈짓을 주고받는다. 동물들이 소풍 가는 얘기를 실감 나게 하다가



"그 줄무늬가 있는 동물이 뭐지? "



하고 물으면 대답하는 사람을



" 아휴, 잘 했어요 바보 학생~"



이라며 놀려먹는 개그다. 그런데 처음 시작부터 우리는 단합이 되어 계속 언니를 바보 학생 잘했어요~라며 말꼬리를 잡고 연신 돌고 도는데 언니는 그런 우리가 이해를 못 했다고 생각하고 답답해하며 계속 설명을 했다. 그럼 우리는 또 그런 언니의 모습이 우스워 깔깔거렸다.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어도 끝까지 언니는 우리가 자신을 거꾸로 속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까르르 웃어대는 우리를 흐뭇하게 쳐다보셨다. 성 안의 우리들은 그렇게 재밌게 살았고 성 밖에서는 우리가 모르는 기운이 넘실거렸다. 그때는 성 안의 세상이 다인 줄만 알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부쩍 늙으셨다. 마치 받쳐놓은 돌이 빠진 것처럼 언덕에서 가속도가 붙어 굴러가는 바퀴 같다. 하루하루가 다르다. 그런 엄마가 아버지의 노년과는 또 다른 감정으로 나를 뒤흔든다. 같은 여자라 그럴까. 엄마로, 누군가의 부인으로 산 같은 여자의 운명이라 속절없이 늙어가는 무력함이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다.


집 밖을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엄마를 겨우 설득해 외출을 했다. 기저귀를 차고 나가시는 것도 불편하지만 그렇게 나가서도 실수가 잦아지자 모든 외출을 거부하셨다. 내 차로 나하고만 다니니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도 차에서 진짜 실수를 한 뒤 부쩍 더 위축이 되신 참이다. 그래도 가끔 콧바람도 쐬야지 집에만 있으면 더 우울해진다는 성화에 휘청휘청 나서는 걸음걸이에 울컥한다. 평생 가족들을 위해 헌신만 하다가 끝나는 인생이다. 조금만 건강하셨어도 참 즐거울 일이 많았을 텐데 슬프다. 어설픈 위로를 한답시고 가까운 산책길에서 끊임없이 나는 떠들었다. 엄마가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은 다 엉망진창이 됐을 거다. 지금 이렇게 사는 거 다 엄마 덕이다. 진짜 고생 많았다. 엄마는 이 세상을 바꾼 사람이다. 우리를 이렇게 잘 살게 만들었으니 정말 훌륭하다 등등 주저리주저리 온갖 미사여구를 곁들여 엄마가 듣기 좋은 말만 고르다 고개를 든 순간.



"와, 엄마 저게 무슨 꽃이지? 너무 예쁘다."



저기 멀리 눈앞에 노란색이 가득했다. 무슨 꽃이지? 가꾸는 꽃은 아닌 것 같은데 온통 노란색만 보이니 마음까지 화사해진다. 엄마도 기분이 좋았는지 느린 걸음이지만 나와 함께 부지런히 그 꽃을 향해 걷는다.



" 엄마! 이거 민들레 꽃이네. 생각나? 그 아줌마? 우리 집 담장에 붙어있던 꽃! 여기서는 쳐다도 안 보는 이 잡초 같은 꽃을 그렇게 소중하게 그랬잖아? "


그 꽃이 아주 흔하디흔한 민들레 꽃이라는 사실을 나는 서울을 떠나고서야 알았다. 지천으로 깔린 노란 민들레 꽃이 여기는 가득했다. 꽃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꽃. 그때 그 생명이 얼마나 기특했던 건지는 내가 잡초처럼 살아보고서야 알았다. 회색 도시 어디에도 자기 몸 하나 뿌리내릴 흙이 없다는 것을 둥실둥실 가볍게 떠다닐 땐 몰랐을 그 꽃. 그래서였을까. 그 집을 생각하면, 안에서 깔깔깔 웃던 가족들 모습과 함께 집 안을 장식했던 화려한 국화와 집 밖 담장 바닥 구석에 피어 있던 작고 작은 노란 꽃이 그림처럼 보인다. 걔도 사력을 다해 살았던 귀한 꽃이었는데.



엄마와 나는 노란 민들레 꽃밭에서 깔깔 웃으며 오랜만에 옛날이야기를 실컷 했다. 저 꽃들은 어쩌면 우리 집 담벼락에서 목숨을 부지한 꽃의 후손들일지도 모른다며 해들해들 그렇게 하찮은 하루를 행복으로 채웠다.


매번 죽이면서 매번 노란 국화를 사다가 장식하던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국화만 보면 행복했던 집과 그 하찮던 민들레 꽃이 생각난다. 국화는 정식으로 인정받은 꽃이라면 민들레는 꽃이라고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꽃이다. 나는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이 싫었다. 그런데 이제 그 하찮던 민들레 꽃이, 아무것도 아닌 꽃이 어여쁘다. 작고 연약하지만 끈질긴 생명력. 우리 가족들의 잡초 같은 인생이 잘 가꿔 심은 국화보다 생명력을 가득 안고 사는 민들레 꽃만 같다. 드디어 진심으로 삶을 사랑하기 시작한 나는 진짜 하찮은 일상에서 행복을 찾는다. 저 국화 옆에 나란히 할 민들레 꽃을 이젠 그릴 마음이 생겼다. 국화와 민들레 꽃의 꽃말이 둘 다 행복이란 사실도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를 부여한다. 지천에 깔린 잡초 같은 민들레 꽃을 몰랐던 것처럼 나도 항상 곁에 있던 행복을 다른 곳에서만 찾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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