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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고래 Oct 22. 2023

가을 대운동회

우리 같이 노올자 #8

 “아 아. 마이크테스트.”

 마이크테스트만 5분 째였다. 선생님들은 분주했다. 교장선생님은 마이크테스트가 끝나자 학교 자랑 5분, 운동회 역사에 대해 5분, 운동회 규칙에 대해 5분, 학부모님들에게 당부하는 말을 5분씩 골고루 나눠서 했다. 우리에게는 각각 50분씩 느껴졌다. 

“교장 선생님 말씀 왜 이렇게 길어?”

미선이의 곧은 자세도 곧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교장선생님은 우리의 마음을 모른채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외쳤다.

“에-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하여 우리 춘하국민학교 친구들은 대운동회에 임할 것을…”

 학교운동장에 모인 전교생은 발을 동동 구르고, 고개를 들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보고자 노력했다. 높고 푸른 하늘 아래 만국기는 춤을 추고 있었고, 참새 열 댓 마리가 만국기 위에 앉았다가 날아갔다. 

“에- 그래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우리 어린이들의. 에-”

“…… 으윽.”

“70년 역사와 전통이 살아 숨 쉬는 우리 춘하국민학교 가을 대운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와아아아아!”

 아이들은 일제히 모두 함성을 질렀다. 구경 나온 동네 어르신들과 학부모들도 모두 힘껏 박수를 쳤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우리는 오자미 한 개씩 들고 모였다. 청군은 백군의 박을, 백군은 청군의 박을 향해 무자비하게 던졌다. 혁구와의 싸움 후유증인지 아직 어깨가 아팠지만 최대한 금간 곳을 조준하여 오자미를 던졌다. 

“우아-”

백군 아이들은 먼저 승리의 함성이 들려왔다. 

“힘모아 세계로!”

라고 쓰인 현수막이 청색 박에서 터져 나왔다. 나와 미선이는 아쉬웠지만 계속 오자미를 던졌고, 혁구는 양손으로 두 개씩 던져댔다. 드디어 백색 박도 터졌다.

“뜻 모아 하나로!”

그제야 청군 아이들도 웃으며 다음엔 모두 이겨버리자고 다독였다. 졌다고 슬퍼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운동회는 호루라기 소리, 함성소리, 응원소리, 우는 아이, 자는 아이, 아이스크림 파는 아저씨, 아이찾는 할머니 등등.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선생님들은 진땀을 흘리며 아이들을 통솔했다. 많은 순서가 있었기 때문에 빨리 빨리 진행해야 했다. 나는 혁구와 또 짝이 되어 소고춤을 추어야 했다. 멀리서 엄마가 일회용 필름 카메라로 찍고 있었다. 

“야, 저리 비켜!”

“너나 비켜 여기 좁아.”

“선생님 얘 때문에 못 하겠어요!”

“너희 그만 싸우고 줄 똑바로 서라.”

 혁구는 혀를 내밀고 보란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거의 개다리춤이었다. 나는 혁구 땜에 열이 점점 오르기도 했고, 한복 안에 체육복까지 입어서 가을인데도 땀을 흘렸다. 가을볕은 제법 뜨거웠다.

 1학년들의 귀여운 부채춤 공연까지 끝이 났다. 그을린 아이들의 얼굴은 점심시간이 되자 밝아졌다. 각자 운동장 구석구석 나무 그늘로 뛰어 들었다. 

 우리 가족도 큰 나무 아래 돗자리를 피고 둘러앉았다. 엄마는 정말 오랜만에 학교에 왔다, 미용실 가게를 ‘미스 리’ 이모에게 맡겨서 안심하고 온 것이다. 긴 생머리에 둥글게 만 앞머리가 하늘에 닿을 만큼 세우고 다니는 미스 리 이모는 아침에 이렇게 말했다.

“언니, 걱정하지마. 내가 알아서 다 할게. 나도 이 바닥만 몇 년인데.”

“그래, 그래 너만 믿는다.”

엄마는 못 미더웠지만 도시락을 싸느라 바빴고, 미스 리 이모는 첫 손님부터 고데기로 머리를 살짝 태워 먹고 말았다. 미스 리 이모는 능청스럽게 껌을 씹으며 탄 머리를 손님 몰래 잘라냈다. 엄마는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그냥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엄마의 김밥은 예쁘게 말아졌다. 

 미스리 이모는 같은 미용학원에서 만난 사이인데, 실력이 좋지 못해서 미용실을 그만두고 작은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가끔 엄마가 도움을 요청할 때 나타나는 미스 리 이모는 그래도 마음씨만은 좋았다. 항상 우리가 좋아할 만한 간식들을 사오기 때문이었다. 

 나는 엄마가 학교에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엄마가 미용실 문을 닫는 날은 1년에 한 두 번뿐이기 때문이다. 책임감이 강한 엄마는 절대 미용실 가게 문을 닫는 법이 없었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빼고는 거의 열려 있었다. 

“와 이게 다 뭐야?”

나는 돗자리 위에 앉자마자 보자기를 풀었다. 엄마가 싸온 도시락은 화려했다. 통닭, 김밥, 과일이 층층이 예쁘게 담겨 있었다. 진이도 신이 나서 콧노래를 절로 불렀다. 홍이는 만국기를 흔들며 돗자리 위에 앉아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순금아. 너도 이리로 와.”

엄마는 잊지 않고 순금이까지 불렀다. 아까부터 운동장 옆 느티나무에 기대 음료수 하나를 들고 쭈뼛거리던 순금이었다.  

“오늘도 순금이랑 먹어야 해?”

“얘는 당연하지. 학급회장이란 녀석이 친구를 잘 챙겨야지. 선생님이 말씀 안 하시든?”

“몰라 나도. 야 최순금! 빨랑 와서 도시락 먹어.”

순금이는 선뜻 자리에 앉지 못했다. 나는 순금이에게 닭다리 하나를 내밀었다. 

“야 먹어. 많이 먹어. 닭다리는 지금 4개밖에 없는데 너 주는 거야.”

“고, 고마워. 경이야.”

“잘 먹겠습니다!”

나와 진이는 신나게 고기를 뜯었고

“얘들아 천천히 먹어라. 체한다. 물도 좀 마시고.”

“진짜 맛있어요. 엄마 우리 맨날 운동회였으면 좋겠다.”

진이는 입안 가득 김밥을 채우고 말하느라 밥풀이 사방으로 다 튀었다.

“웩. 더러워. 야 다 먹고 말해!”

나는 진이를 밀쳤다. 

“아이고, 싸우지들 말고 천천히 먹어. 그래야 소화도 잘 되고, 이따 달리기도 하지.”

“괜찮아요. 어차피 나는 달리기도 못해서 천천히 걸을 거야.”

나는 진짜 달릴 생각이 없었다. 달리기는 진이가 잘했다.

“이따가 1등해서 공책 10권 꼭 타! 알았지?”

“당연하지. 우리 반에서 내가 제일 빨라.”

“그래 달려라 진이야. 아니, 달려라 하니야!”

“와하하하.”

 순금이와 진이는 깔깔 거리며 웃었다. 

 엄마는 잘 먹는 우리들을 바라보면서 먹이고 치우고, 또 닦아주느라 분주했다. 

“아줌마도 김밥 드세요요.”

순금이가 말했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숨금이 얼굴에 밥풀이 가득 묻어있었기 때문이다. 

 운동회 도시락은 그렇게 모두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다. 혁구네 아빠, 미선이네 엄마, 귀연 언니네 엄마도 음료수와 떡을 나누고 서로 과일도 주고받았다. 만국기만큼이나 알록달록한 돗자리위에서 모두 행복했다. 참새들은 사람들이 떨어뜨린 음식 부스러기를 먹느라 배가 빵빵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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