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슈퍼마켓
박용기(KRISS 명예연구원, 맛있다 과학 때문에 저자)
계산대에서 계산을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나와 쇼핑 카트를 밀고 주차장으로 가는 방법은 무빙 워크와 엘리베이터의 두 가지가 있다. 지금은 어느 대형 슈퍼마켓에 가도 무빙 워크가 층간 이동에 있어 주 이동 수단이 되었지만, 199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 대형할인매장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일부 대형할인매장에는 무빙 워크가 없고 경사진 비탈을 따라 쇼핑 카트를 밀고 힘들게 이동했던 기억이 있다.
슈퍼마켓의 무빙 워크
땅이 넓은 미국이라면 단층 매장의 슈퍼마켓에서 야외의 주차장으로 이동하는데 무빙 워크가 필요 없겠지만, 땅이 좁은 대도시나 우리나라에서는 복층의 매장과 주차장 사이의 이동에 있어 무빙 워크는 필수적인 이동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뉴저지의 발명가이자 와인 상인이었던 앨버트 스피어(Albert Speer)는 1871년에 그의 ‘끝없는 이동 보도(endless travelling sidewalk)’ 아이디어를 특허로 등록했다. 비록 그의 발명은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무빙 워크의 최초 특허라 할 수 있다. 그 후 1880년, 프랑스 엔지니어 달리폴(Monsieur Dalifol)도 무빙 워크에 관한 특허를 출원했지만,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프로젝트는 중단되었다. 또한 1889년 파리 박람회를 위해 건축가이자 도시 계획가인 유진 에나르(Eugène Hénard)가 이동 플랫폼 시스템 설계안을 제출했지만, 그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무빙 워크 아이디어가 최초로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4년 뒤인 1893년 미국 시카고 세계 박람회에서였다. 이 장치는 건축가 조셉 L. 실스비(Joseph L. Silsbee)와 엔지니어 맥스 E. 슈미트(Max E. Schmidt)의 작품으로, 총길이 1,310 m의 다중 속도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두 개의 인접한 플랫폼이 각각 시속 4.8 km(3마일)과 9.6 km(6마일)로 작동하며, 느린 플랫폼은 더 빠른 플랫폼에 접근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후 20세기 중반 이후에 무빙 워크는 공항 등에 설치되어 본격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1958년, 미국 댈러스 러브 필드 공항(Dallas Love Field Terminal)에 최초의 공항용 무빙 워크가 설치되었다. 이후 1960년, 아메리칸 항공이 ‘아스트로웨이(Astroways)’라는 이름으로 무빙 워크를 도입하며 공항에서도 점차 보편화되었다.
슈퍼마켓은 20세기 중반에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대형화되면서 여러 층으로 확장되자 고객들이 무거운 쇼핑 카트를 이동시키는데 어려움이 발생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경사형의 무빙 워크가 슈퍼마켓에 도입되었다. 특히 ‘쇼핑 카트 친화형 무빙 워크’가 개발되면서 무빙 워크는 슈퍼마켓 시설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대형 마트에서 사용하는 쇼핑카트는 무빙 워크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특별히 고안된 바퀴를 사용한다. 바퀴에는 기본적으로 평지에서 구를 수 있는 디스크와 그 사이에 파인 홈이 있어 쇼핑 카트가 무빙 워크에 진입하면 구동 디스크가 무빙 워크의 길게 파인 홈인 그루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평지를 구를 때에는 바닥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바퀴의 양쪽 옆에 있는 브레이크 슈가 무빙 워크 바닥면에 접촉되면서 브레이크 슈의 끝 부분에 있는 고무나 플라스틱 재질의 패드가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어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하게 된다. 모델에 따라서는 브레이크 슈 대신 구동 디스크 사이가 조금 넓게 벌어져 있고 그 사이의 홈에 브레이크 패드가 있는 경우도 있다.
과거엔 무빙 워크가 공상과학 소설에나 등장하는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공공장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기술이 되었다. 오늘날, 자기 부상 기술을 사용하는 고속·대용량 무빙 워크는 시속 12 km까지 가속이 가능하며, 도시 계획가들은 친환경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시간당 7,000명의 승객을 운송할 수 있는 무빙 워크를 상상하고 있다.
상상은 늘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켰고 그 기술은 우리 삶에 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슈퍼마켓이 어떤 모습으로 변하게 될까?
슈퍼마켓의 미래 트렌드
2024년 초에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3년 연간 유통업체 매출 동향’에 따르면 2023년도 온라인 매출의 비중은 50.5 %로 49.5 % 인 오프라인 유통 매출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더욱이 전년 대비 온라인 매출의 성장률은 9 % 인 반면, 오프라인 성장률은 3.7 %로 앞으로 온라인 매출의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Nielsen과 식품 마케팅 연구소(Food Marketing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50 % 이상의 소비자들이 온라인 식료품 쇼핑을 선호하며, 이 수치는 2025년까지 70%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러한 온라인 유통 매출의 신장세는 기존의 대형 할인마트와 같은 오프라인 유통시장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오프라인 매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과 기술 혁신 등을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해 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10여 년 전 미국의 IBM 회사는 RFID 기술의 광고를 위해 ‘미래의 슈퍼마켓’이라는 광고 동영상을 제작한 적이 있다. 이 광고를 보면 한 청년이 헐렁한 외투를 입고 슈퍼마켓 매장을 돌아다니면서 주섬주섬 상품들을 옷 속에 감추고 유유히 매장을 빠져나간다. 이 청년을 지켜보는 감시 카메라와 감시원이 경계하는 모습 등이 등장하고 마지막으로 이 청년이 게이트를 빠져나가려 할 때 한 경비원이 청년을 향해 말을 건넨다. “영수증을 챙기세요.” 이미 옷 속에 넣은 모든 상품에는 RFID 태그가 부착되어 있어 자동으로 체크아웃이 되고 이 청년의 스마트폰을 통해 결재가 이루어졌다는 스토리다.
이와 비슷한 개념의 무인 매장이 실제로 미국에 있다. 2016년 미국 온라인 유통의 강자인 아마존은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시험을 거쳐 2018년 대중에게 ‘아마존 고(Amazon Go)’라는 새로운 형태의 무인 매장을 오픈했다. 이 당시 공개된 아마존 고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원하는 상품을 담아 계산대 앞에 길게 서서 차례를 기다릴 필요 없이 그냥 걸어 나오기만 하면 자동으로 계산이 이루어지는 혁신적인 '저스트 워크 아웃 (Just Walk Out)’ 기술 때문이었다.
이 매장은 카메라 센서와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을 활용해 매장 내 고객들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감지한다. 천장의 카메라가 고객의 얼굴과 그들이 집어 드는 상품을 인식하고, 알고리즘으로 분석하고 분류해 아마존 고 앱 장바구니에 담은 뒤 스마트 폰을 통해 자동으로 결제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미래 슈퍼마켓은 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기존의 오프라인 매장에 비해 약 40 %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매장의 디지털화에 따르는 투자 비용을 인건비의 감소로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하였다.
하지만 2021년까지 미국 내에서 매장을 3,000 개로 확장하겠다는 아마존 고의 계획은 무산되고 2023년 3월 뉴욕,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등에 위치한 8개의 매장을 폐쇄하였다. 투자와 첨단시설 운영 경비가 매출 신장을 유도하지 못했기 때문인데, 사람들이 식료품 매장을 찾는 이유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신기술에만 의존함으로써 그저 신기한 슈퍼마켓일 뿐 정감이 가는 다시 가고 싶은 매장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까지 이 실험은 성공적이라기보다는 실패 쪽으로 판단되지만 조만간 이러한 혁신은 오프라인 매장에 점차 도입되면서 진화하게 될 것이다.
미래 슈퍼마켓의 방향
미국의 경영컨설팅 회사인 올리버 와이만 (Oliver Wyman)은 오프라인 매장이 온라인 유통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필요한데, 쇼핑을 거래가 아닌 즐거운 라이프스타일 활동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온라인의 편리함과는 차별화된 ‘매장을 방문할 새로운 이유’를 제공해야만 한다고 강조한다.
미래 오프라인 슈퍼마켓은 고객에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경험을 통한 즐거움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보다 더 신선한 식품 제공, 푸드 코트 운영, 미식 공간 제공, 요리 수업 등 고객이 즐겁게 참여할 수 있는 활동 등이 필요하다. 이러한 활동은 전문적인 조언이나 가이드와 결합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급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므로 혁신적인 자동화 기술을 도입하여 일상적인 일에 투입되는 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충고한다. 새롭게 도입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예로는 고객이 매장에 도착하기 전에, 인공지능이 소비 패턴을 분석하여 추천하는 온라인 앱을 통해 장바구니를 미리 준비하고 매장에서 제품을 체험하는 동안 태블릿이나 스마트폰으로 레시피를 검색하고 온라인으로 주문해 집으로 배달되게 하거나 매장을 떠날 때 픽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이다. 또한 아마존 고(Amazon Go)에서 사용되는 '저스트 워크 아웃 (Just Walk Out)’이나 ‘스캔 앤 고(scan and go)’ 같은 간편 결제 방식 등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될 것이다.
미래 슈퍼마켓 기술
미래 슈퍼마켓에서 활용될 기술은 다양하지만 그중 중요한 기술은 다음과 같다.
1. 인공지능(AI)과 개인 맞춤형 추천
AI 알고리즘이 소비자 행동, 구매 이력, 인구통계 데이터를 분석하여 고객이 구매할 가능성이 높은 상품을 예측하여 개인화된 추천을 제공함으로써 고객 만족도와 매출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최대 슈퍼마켓 체인업체로 부상한 크로거(Kroger)가 마이크로소프트와 협력해 개발한 EDGE(Enhanced Display for Grocery Environment)라는 스마트 기술이 있다. 이 기술은 AI를 활용해 고객이 매장 통로를 걸을 때 개인 맞춤형 광고와 프로모션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쇼핑 경험을 강화하고 고객이 더 많은 상품을 구매하게 촉진한다.
2. 모바일 앱의 활용
모바일 앱을 통해 단순히 디지털 쇼핑 목록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가격 비교, 디지털 쿠폰, 실시간 재고 업데이트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월마트(Walmart)의 식료품 앱은 가장 많이 다운로드된 앱 중 하나로, 사용자 친화적인 디자인과 기능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앱을 이용하면 개인 맞춤형 추천을 제공받을 수 있고, 앱으로 구매한 상품의 드라이브 스루 픽업도 가능해진다.
3. 증강현실(AR)
증강현실(AR)은 가상 이미지를 실제 세계 위에 겹쳐 보여주는 기술로, 슈퍼마켓에서의 쇼핑 경험을 향상하는 강력한 도구로 자리 잡을 것이다.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하면 고객이 제품을 시각화하도록 도와주어 상세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하며 이를 통해 구매 결정을 보다 현명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다. 미국의 크로거(Kroger)는 AR 앱을 도입해서 고객이 스마트폰을 제품에 대기만 하면 영양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4. 보다 진화된 셀프 체크아웃 시스템
국내 슈퍼마켓에서도 이미 도입되고 있는 셀프 체크아웃은 아직 완전하게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이며 궁극적으로는 모든 계산대가 셀프 체크아웃 방식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지금보다 더 혁신적인 컴퓨터 비전 시스템과 센서 네트워크 기술이 결합되면서 인간이 운영하는 계산대와의 격차가 점점 더 좁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디지털 결제가 슈퍼마켓의 표준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5. 자율 배달 로봇
현재 자율 배달 로봇 기술은 초기 단계로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한 기술이지만 향후 5년 안에 드론이나 로봇이 배달 서비스에 광범위하게 도입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존은 본사가 있는 시애틀에서 배달 로봇을 시험 운영하고 있으며 중국 등에서도 소형 자율 로봇이 도시 내 배달에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 슈퍼마켓에서도 배달이 보다 활성화되면서 자율 배달 로봇을 이용한 빠르고 편리한 기술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슈퍼마켓은 각종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미래의 슈퍼마켓으로 진화해 갈 것이다. 이 경우 젊은 디지털 세대에게는 더 친근하고 편리한 매장이 되겠지만, 디지털 기기나 환경에 익숙하지 못한 디지털 소외계층에게는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한 매장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선호하는 슈퍼마켓이 되기 위해서는 교통 약자들을 위한 배려의 자리가 있듯이 디지털 약자를 위한 도우미나 별도의 차별화된 결제라인을 운영하는 등 디지털 소외계층을 배려하는 기술이나 시스템 또한 함께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미래의 슈퍼마켓이 인공지능과 로봇과 같은 차가운 기술만으로 채워지지 않고 따뜻한 인간적 냄새가 나는 쇼핑의 장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