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향 꽃에서 죽음과 소녀를 듣다
여름은 풀꽃과 나무들이 왕성한
생명력으로 활기 찬 계절입니다.
하지만 삶이란 늘 죽음을 품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풀꽃들에도 계절이 바뀌면서 죽음이 서서히 찾아오지만
때로는 갑작스럽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꽃이 핀 채 가지가 꺾여 시들어가는 회향 꽃을 만났습니다.
스러져가는 꽃이지만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죽음은 삶의 아름다운 연장처럼....
그리고
젊은 날 즐겨 듣던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죽음과 소녀'가 떠올랐습니다.
이 곡의 정식 명칭은
'현악 4중주 14번 D단조, D. 810’이지만,
"죽음과 소녀"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이 작품의 2악장에 슈베르트의 가곡
"죽음과 소녀"의 멜로디가
변주곡 형식으로 쓰였기 때문입니다.
마티아스 클라우디우스의 서정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인
가곡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소녀 :
저리로, 아 저리로. 지나가다오,
사나운 죽음이여 나는 아직 젊다. 가거라.
그리고 나를 다치게 하지 말아 다오
나를 다치게 하지 말아 다오.
죽음 :
그대, 손을 다오. 아름답고 상냥한 소녀여.
친절한 나는 그대를 해치지 않는단다.
편안한 기분으로! 나는 두려운 존재가 아니란다.
나의 품 안에 고이 잠들거라.
시들어 가는 회향의 가지에서
아름다운 여름의 변주곡이
조용히 흐르는 여름날입니다.
삶과 죽음의 소나타/권영하
삶은 죽음을 위한 유죄인가
죽음이란, 삶의 장난인가
이때껏 생존했고
앞으로 사멸(死滅)할 숙명에
영혼 속의 영원을 찾는 신앙으로
우리 죽음 앞에
과연 초연해 질 수 있을까
죽음이란, 원래 원죄의 산물인가
삶으로부터 영원한 유배인가
단순한 삶의 종말인가
고요히 지는 잡초에게 영원은 존재하고
죽어버린 사슴의 영혼은 연속될 수 있을까
우리 삶 속에서 이성으로 영혼을 보듯
믿음으로 죽은 속에 영원을 볼 수 있을까
영원은, 영원하지 않은 것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물도 영원을 갈구하며 정지를 싫어한다
인간은 언제까지 죽음의 수수께낄 모른 채
삶과 죽음의 순간 교차점에서
끝없이 유랑을 계속할까
그렇듯 인간은 인간 이상일수 없고
삶 또한 삶 이상의 것은 아닐까
그리고 우리, 미래의 죽음에
좀 여유를 가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죽음을 죽음 이상으로 생각치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오늘도
이 가난한 존재는
생의 한줄기 바람 앞에 서성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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