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제주-9

by 박용기

쉼, 제주-9
Pause at Jeju Island-9

*
애월에 있는 단독 주택형의 아담한 펜션에서
좀 분에 넘치는 특별한 쉼을 끝내고
제주도에 가면 주로 가는
남쪽의 리조트형 숙소로 옮겨 이틀을 더 머물기로 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도 바다와 하늘이 보이는 곳
조금만 걸으면 해변가 올레길을 만날 수 있는 곳.

아내가 자는 사이
혼자서 조심조심 밖으로 나와
아침 산책에 나섰습니다.

산책길 가 연못에
막 피어난 흰 수련이
환한 미소로 나를 반깁니다.

막 세수를 마쳤는지
꽃잎 위에 아직 물방울이 남아있네요.

한참을 이 아이 곁에 머물렀습니다.
저만치에서 부르는
바닷가 올레길의 유혹도 잊은 채.

순백의 수련은 어떤 마음으로
그 하루를 시작하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이 아이를 담아오고 싶었습니다.

*
수 련/ 채 호 기

*
안개 낀 새벽에 수련의 저 흰 빛은
수련이 아니다. 누가 공기의 흰 빛과
수련의 흰 빛을 구분할 수 있겠는가?
부풀어오르며 대기를 가득 채우는 수련,
공기처럼 형태도 없이 구석구석
끝도 없이 희게 빛나는 수련이여!

안개 낀 새벽에 공기는 수련처럼
희게 빛나다가 물처럼 푸른 두께로
출렁인다. 수련은 창틀 없는 유리처럼
푸른 깊이의 메아리. 물이 저 밑바닥의
내면으로부터 물풀을 흔드는 물고기
헤엄치는 혀로 푸드덕 말을 할 때
솟아오르는 커다란 공기 구릉―수면을 깨뜨리는

흰 포말 흰 파편은 수련,
물-말이 깨어져 날카롭게 빛나는 흰 수련!

수련 주위의 보이지 않는 저 공기는
수련의 생각들이다.
우리가 글자를 읽어나갈 때
우리 주위에서 태어나는 생각의 파동들처럼.


*
#쉼 #제주도 #수련 #소노캄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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