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요리

녹두 빈대떡

by 마리아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 속에 녹아 있는 음식 한 두 가지는 있다. 그 맛은 잠시 잊고 있던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게 하고 손 맛 익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한다. 녹두빈대떡은 나에게는 어머니의 품 속과 같은 음식이다.

어린 시절 그리고 철이 들고 성인이 되었을 때도 변하지 않은 그 맛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어머니가 보고 싶다. 세상 누구도 나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는 단 하나뿐이다.

나를 나아 주시고 길러 주신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어릴 적부터 먹어 온 어머니의 정성 가득한 음식이 함께 그리워진다.

누구나 어머니의 음식이 가장 맛있다. 그 맛에 사랑이 녹아 있다. 빈대떡 한 점이 뭐 그리 대단한 음식이 아니어도 나에게는 너무 맛있고 소중한 추억이 메어 있는 그 맛을 던져 준다.



유별나게 빈대떡을 좋아하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고 음식을 만드셨다.

녹두빈대떡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단연 녹두다. 녹두는 심고 키우는데 그다지 힘든 작물이 아니다. 심고 시간이 되면 거들 수 있는 작물이다.

녹두 껍질이 초록색이다. 그 녹두를 물에 불리는 일이 제일 먼저 할 일이다. 하루 밤을 재워 두면 초록 껍질은 흐물흐물해져 대부분 껍질이 물어 떠오르지만 그래도 손으로 껍질을 정리해야 한다. 손에 넣고 쌀 씻듯이 하기도 하고 휘휘 저어 껍질이 떨어지기도 한다.

초록빛 옷을 벗고 노란색 옷으로 갈아입은 녹두를 갈아야 한다.

밀서기에 갈기도 하고 맷돌에 갈기도 한다. 정성이 들어가면 맛도 달라지는 것일까?

믹서기에 갈 때의 녹두와 맷돌에 갈았을 때의 녹두의 맛이 다르다면 믿을까? 장담하는데 확실히 차이가 있다. 감칠맛의 풍미가 다르다. 곱게 갈리는 믹서기의 맛보다는 약간 투박한 맷돌의 맛이 깊은 풍미를 자아낸다.

그 맛을 위한 수고로움은 감수해야 한다. 커다란 대야에 두꺼운 각목을 바치고 그 위에 맷돌을 얻기도 하고 아니면 대야에 넣고 돌리는 경우도 있다. 맷돌 돌리는 일은 내가 한다. 어머니에게 말을 듣고 맷돌을 살살 돌리면서 숟가락으로 물에 불린 노란 녹두를 넣으면 갈린 녹두가 맷돌 옆으로 삐져나온다.

처음 맷돌 돌릴 때야 신나게 돌아가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팔도 아프고 속도도 느려진다. 일정한 속도로 돌려야 한다. 힘을 내어 그 맛있는 한 점 녹두 빈대떡을 생각하며 열심히 돌린다. 어느새 바닥을 드러낸다.

이제 걸쭉해진 녹두에 재료를 넣어야 한다. 녹두 빈대떡도 평양식이 있고 서울식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어떤 게 정답인지는 모른다. 대체로 평양식은 돼지고기를 갈아서 넣는다. 서울식은 돼지고기를 얇게 썰어 작은 조각을 구울 때 표면에 살짝 박아 굽는다고 한다. 두 가지 다 먹어 봤지만 둘 다 맛있다.

숙주나물과 양파 고사리와 간 돼지고기와 함께 접착력을 높이게 위해 찰쌀이나 밀가루를 조금 넣는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재료가 있다. 바로 김치다. 녹두빈대떡에 맛있는 김치를 조금 섞어 주면 씹히는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 단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 그렇게 재료들을 석어 주면 이제 굽는 일만이 남는다. 이제 조금 있으면 그 맛있는 녹두 빈대떡을 먹을 수 있다.

어머니는 돼지고기를 사면서 정육점에서는 거의 버리는 비계를 한 덩어리 함께 얻어 오신다.

녹두 빈대떡은 돼지비계 기름으로 구워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돼지비계로 굽는 빈대떡!


불에 달군 팬에 돼지비계 한 덩어리를 넣고 서서히 녹인다. 녹으면서 나는 돼지기름 냄새는 마치 삼겹살을 굽고 있는 착각을 일으킬 정로 흡사한 냄새를 낸다.

돼지비계가 녹아 팬에 약간 고일 정도로 기름이 생긴다. 커다란 국자로 한국자 푹 떠서 기름이 끓고 있는 팬 위에 착 펼치신다.

기름 끓는 소리가 자글자글 소리를 낸다. 톡톡톡 사방으로 기름이 튄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미리 깔아 놓는다. 아니면 기름을 닦아 내는 수고로운 절차가 하나 더 생기기 때문이다.

기름 막과 빈대떡 사이에 지글지글 끓고 있는 노랜 반죽이 갈색으로 변하고 있다. 익어가고 있다.

입에 침을 넘어간다. 꿇어앉아 빈대떡을 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나에게 어머니는 살짝 웃음을 던지신다.

어머니는 장독대에 가서 매실주를 떠 오라고 하신다.

봄이면 어머니는 매실주를 담그신다. 술도 한 모금 입에 데지 못하시는 어머니는 좋은 매실이 시장에 있을 때마다 술을 담그셨다. 매실주가 숙성되면 붉은빛이 섞여 있는 갈색을 띤 색갈이 아주 곱다. 특히 투명한 유리병에 넣어 두면 그 자체로 참 예쁜 빛이 난다. 그래서 어머니 드시지도 못하는 술을 담그시는지도 모른다.

그 매실주는 당연히 나의 차지가 된다. 오늘 같은 날 아들이 좋아하는 빈대떡에 매실주를 마시라는 허락이 떨어진다.

대학생이 된다는 게 이럴 때는 참 좋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입에도 대지 못한다. 크크크!


넓은 전기 프라이 펜에서 구워지고 있던 최초의 빈대떡 몇 장이 나의 입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접시에 옮겨진다.

겉은 옅은 갈색 빛을 내고 있고 둥근 테두리는 바삭하게 익은 모습이 그대로 눈에 보인다.

이야 긴장된 순간 젓가락을 찌른다. 바삭한 느낌인가 싶더니 어느새 폭신하고 촉촉한 느낌이 든다.

빈대떡 뜯어 한입 와삭 베어 문다.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들리는 착가에 빠진다.

알싸한 맛고 고소한 맛 감칠맛이 온 입 안을 휘졌고 다닌다. 정말 맛있다. 그리고 작은 와인 잔에 폼 잡는다고 매실주를 따르고 잔을 입에 가까이 댄다. 매실의 향이 코 안으로 확 품어 들어온다. 입술에 닿는 순간 신 과일의 맛과 달콤함이 느끼해진 입을 헹궈준다.

세상에 그 어떤 맛도 이보다 좋을 수는 없다. 어머니도 굽다 마시고 한점 뜯어 드신다. 만족한 얼굴이시다.

특히 자식 놈이 그렇게 맛있게 먹는 모습이 더 흡족하셨는지도 모른다.

몇 장을 접시에 담아 주시고 거실 탁자에 가서 먹으라고 하신다. 부엌은 식탁부터 바닥까지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집 안에 고기 냄새와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베란다 문을 열어젖히니 시원한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온다.

베란다 밖에서 보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정말 맑고 푸르다. 이런 것이 먹는 즐거움인가 보다.

빈대떡은 어머니가 살았던 고향 평양에서 드셨던 음식이고 피난 뒤에 서울에서 사셨을 때 드시던 음식이다.

먹는 음식도 어머니를 따라가는 듯하다. 어머니는 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말씀하신다. (그 때나 지금이나 먹성은 좋다.)


세월이 흐르고 세상 삶에 힘들고 지친 날이면 본가의 어머니를 찾아뵙곤 한다.

이제 팔순을 넘어 구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이지만 작은 체구에 아직도 걸음걸이 하나 흐트러 지지 않은 모습에 안심이 된다.

어느 날 문득 어머니는 빈대떡을 해 줄까 하는 말씀을 하신다. 어머니도 드시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게 못난 자식 입에 넣어 주려고 하신 말씀처럼 들린다.

이제 연세도 있는데 괜찮다고 말씀드려 보지만 기어코 준비를 하신다.

간다는 전화를 미리 드렸던 탓일까 재료 손질을 모두 다 해 놓으셨다. 다만 녹두를 전처럼 맷돌이 아닌 믹서기로 돌리신 모양이다.

그때처럼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지만 라면을 넣어 먹는 그릇 정도의 그릇에 하나 가득 준비하셨다.

언제 다 준비했냐고 너스레를 떨어 본다. 그 곱고 작은 손도 나이를 빗겨 나지는 못한다.

기름을 두르고 빈대떡을 굽는다. 나는 옆에 서서 그때처럼 어머니를 돕는다. 몇 장이 구워지고 어머니와 식탁에 마주 앉았다. 함께 사는 여동생도 식탁에 앉았다. 그때처럼 매실주는 없지만 동생이 어머니 저혈당 증상에 대처하려고 사놓은 콜라를 한 잔 들고 온다.

역시나 바싹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속은 폭신하고 촉촉하다.

연세가 있으셔서 인지 그때처럼 진하고 감칠맛이 확 도는 정도는 아니라도 아직 그 맛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신다. 맛이 어떠냐고 물으시는 어머니 앞에 엄지를 척 올렸다. 어머니는 고개를 가로 졌는다. 그때 그 맛 같지는 않을 것이라 말씀하신다.

그래도 나는 맛있다는 소리를 연발한다. 어머니는

"네 입이 입이냐 입에 들어가는 것은 다 맛있다는 놈이 "

하시며 웃으신다. 예전처럼만은 못해도 그래도 맛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는 늘 예전 맛이라고 이야기해 드리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나를 배웅하며 남은 빈대떡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 본다. 이제는 많이 늙으셨다.

나의 든든한 고향 같은 어머니가 오래오래 계셨으면 하는 소원을 빌어 본다. 비록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일지라도.


어릴 적 먹은 음식은 고향과 같다. 어릴 적 먹은 음식에서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늘 기억할 것이다.

녹두 빈대떡!

가장 그리운 나의 고향!

언제나 그리운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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