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요리

김밥

by 마리아

검은 바탕에 군데군데 초록 바다의 빛깔이 숨어 있는 김에 황금물결 출렁이는 대지의 흰쌀밥을 덮고 길게 썬 단무지와 '칼세도니' 빛이 도는 볶은 당근과 어묵 그리고 간장과 다진 마늘에 볶은 소고기를 넣고 방금 태어난 노란 병아리 같은 색의 계란지단까지 돌돌 말아 놓는다. 김 위에 참기름을 살짝 바르고 한 입 크기고 썰어 종이 도시락에 가지런히 넣으면 김밥 도시락 완성!

소풍 갈 도시락이 완성되는 순간이다. 전날 상상만이라도 행복한 맛에 취해 그대로 잠이 들었던 그 맛있는 김밥이 아침 식사로 나온다. 아침에 먹어도 점심에 먹어도 물리지 않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김밥!


지금처럼 김밥 체인점에서 파는 특색 없는 비슷한 맛의 김밥과는 결이 달랐던 사십 년 전에 김밥은 집집마다 김밥 속재료도 다양했다. 다양한 재료가 들어갔으니 맛도 다르고 특색 있어 풍미를 더 했다. 초등학교가 소풍은 가까운 주변 산을 두 시간 정도 걷는 것으로 충분했다. 시원한 산 공기를 맡으며 지금은 흔하디 흔한 콜라나 사이다를 꺼내어 마신다. 비록 시원하지 않지만 탄산의 톡톡 터지는 맛이 입 안을 시원하게 해 준다.

단 맛이 강하여 잠시 뒤면 다시 갈증이 나서 물을 마셔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소풍 때가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일상 속에서 마실 수 없었다. (지금 시절을 생각하면 이상 하지만 70년 대 초반에는 참 귀한 음료였다)


자! 이제 소풍의 백미 점심을 먹는 시간이 되었다. 다들 걷는다고 지치고 힘들었다. 평소의 점심시간보다 조금 이르지만 걷는다고 배도 고프고 , 무엇보다도 맛있는 김밥을 빨리 먹고 싶어 하는 유혹 때문에 얼른 도시락을 열어 본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싸 기지고 온 도시락 중에서 보기 좋고 맛깔나게 생긴 도시락을 맛보신다. 사실 도시락을 검사한다는 핑계였지만 맛이 조금씩 다른 김밥에 선생님들도 호기심이 생겼다. 마치 누구의 김밥이 맛있나 하는 시식회 같은 분위기였다.

아이들도 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뽐내고 싶었다. 자기가 만든 김밥이 아니지만 선생님에게 받는 맛의 칭찬에 어깨가 절로 으쓱해지던 순진한 시절이었다. 김밥이 지금처럼 먹을 수 있던 때가 아닌 시절에 그야말로 아이들 소풍이 아니면 어지간해서는 먹을 기회가 별로 없던 시절이었으니 가히 꿀을 먹는 기분이었다.

그리 넉넉지 않은 시절이었다. 김밥은커녕 밥도 제대로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의 어린 초등학교 시절은 지금 같이 풍요로운 시절이 아니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반 친구들도 있었다.

맨 손에 물통 하나 들고 오는 아이도 한 둘 정도는 있었다. 밥에 김치 정도 싸가지고 온다면 그냥 오는 아이에 비해 즐거운 소풍이다.

도시락 검사는 그런 이유 때문에 한 것이다. 선생님의 말이 없어도 삼삼오오 둘러앉은 아이들이 가져온 김밥을 조금씩 종이 도시락 뚜껑에 모은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해서도 아니다. 한 동네 사는 친구들이었다. 함께 먹는 게 당연한 것이다. 조금 나은 집은 김밥 조각 몇 개 더 싸 주던 그런 시절이었다. 김밥 몇 조각을 나누면 그 양이 꽤 많았다. 아이들은 기죽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그 일을 가지고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둘러앉은 즐거운 점심시간 일 뿐이다.

물과 음료수도 나누어 마시고 가지고 온 과자도 함께 나누어 먹는다.


종이 도시락은 가방에 넣으면 음료수 병과 과자와 뒤 엉켜 모양이 찌그러진다.

좀 찌그러진 모양이면 어때! 맛있다. 어머니의 맛이 그대로 배 안에 자리 잡는다.

맛있는 김밥을 수풀 우거진 산속의 공터에서 나무 잎들이 그늘을 만들고 새들의 노랫소리가 배경음악으로 깔리는 멋진 풍경 속에서 느긋하게 먹는다. 일 년에 몇 번 먹어 보지 못하는 주황색 빛깔의 환타도 그 달콤한 맛이 즐거움을 더 했다.


빛바랜 사진 속에 젊고 예쁜 여선생님과 독일 바바리안 지방의 가죽 멜빵 같은 멜빵에 주름치마를 입은 여학생들과 흰 칼라에 마치 제복 같은 검은 교복을 입은 남학생들이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서 있다.

사진 속 남아 있는 추억이지만 잊을 수 없는 소풍과 함께 먹던 김밥의 맛을 이제는 느낄 수 없다.

모두 함께 먹은 김밥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집집마다 이른 아침 부엌에 불을 밝히고 아이가 소풍 가서 먹을 김밥을 싸주시던 어머니의 손맛!

지금처럼 김밥 전문점에서 먹는 그 맛없는 김밥이 아니라 재료 하나하나에 온 정성과 사랑이 가득했던 그 맛이 그립다.

맛은 추억을 불러온다. 종이 도시락이 찌그러지지 않게 고이고이 싸주시던 어머니의 하얀 손길이 그립다.

선생님의 호루라기 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아득히 먼 그곳으로 귀를 기울여 보지만 들려오지 않는 소리는 나를 슬프게 한다. 그렇게 그렇게 어머니의 손맛과 아련한 기억은 멀리멀리 사라져 간다. 손으로 잡으려 잡으려 하지만 떠나가는 아쉬운 추억은 야속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