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술과 수정과
동장군이 긴 얼음 칼을 빼들고 삭풍의 눈보라를 등에 업고 버티고 서 있다. 모든 대지를 꽁꽁 얼리고 영원히 떠나질 않을 기세다.
이 한 겨울날에 허기진 배를 달래주던 어머니의 녹두 빈대떡, 그리고 함께 먹던 단술과 수정과!
연한 회색빛이 감도는 밥알 동동 단술과 계피향이 가득한 잣 동동 띄워 곶감에 호두를 끼워 넣은 수정과 한 그릇의 달콤함은 어떤 맛과도 비교 불가능하다.
수정과 안에 넣은 곶감의 단 맛은 지금도 입 안에 가득한 느낌이다.
아파트가 없던 시절 장독대에 있는 장독 두 개에 하나 가득 담은 단술과 수정과는 추운 날씨의 천연 냉장고 속에서 명절날 기름기 가득한 음식의 느끼함을 잡아 주기에는 족한 음료였다.
지금처럼 음력설을 쇠지 않고 양력설을 쇠었던 어린 시절이었다. 억압받고 획일화된 전체주의 냄새가 강한 시대에 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구습을 타파한다며 양력설을 쇠라고 강제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래도 음력을 설을 쇠었다. 그렇게 오천 년을 내려온 전통을 구습이라며 타파한다고 우리네 풍습이 사라지지도 않는다. 서구의 방식만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전통은 강제한다고 해서 쉽게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양력 설은 새해를 맞이 하여 삼일 동안 쉬는 법정 공휴일이었다. 그렇게 강제로 공휴일을 정해서 쉬게 하려 해도 1월 1일 하루만 쉬고는 자영업이나 공장 같은 곳은 모두 생활 전선으로 향해 나갔다. (대한 뉴스의 말투를 살짝 흉내 내어 본다) 반대로 음력설에는 자영업을 하는 분들과 작은 공장을 운영하고 그 공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모두 고향으로 가고 공무원과 은행 같은 곳만 쉬는 기이한 설 명절이 몇 년간 계속되었다.
음력 명절이 다가올 쯤에는 긴 겨울 방학도 끝나갈 무렵이기도 했다. 방학 내내 미루어 왔던 숙제를 한다고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어머니는 커다란 솥에 밥을 붇고 엿기름을 이용하여 단술을 만드신다. 또 다른 솥에는 계피와 생강을 넣고 한 솥 끓여 내고 계신다. 수정과는 몰라도 단술은 엿기름을 내리고 밥과 섞어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한동안 보관 한 뒤에 떴다. 단술이 아랫목에서 밥알이 동동 떠오를 때까지 우리는 부엌방 근처 아랫목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솥에 뚜껑을 덮고 솜이불을 폭 씌워 놓고 아랫목의 따뜻한 열기를 이용해 삭힌다.
명절에 사용할 전통의 음료가 만들어지는 때이다.
지금이야 명절이라고 단술이나 수정과가 손님 접대용으로 나오는 집은 별로 없다.
단술 파는 곳이 많고 식품 회사에서 만든 단술 아닌 단술 같은 음료들이 많다. 단술 담그는 일이 손이 많이 가다 보니 도시에서는 거의 만드는 집이 없다.
어린 시절 마실거리에 콜라나 사이다가 있기는 했어도 소풍이나 혹은 큰 마음먹고 가는 외식 때에나 겨우 맛을 볼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달콤한 음료를 기다리는 우리는 단술이 익어 간다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었다.
어머니는 수정과에 들어갈 곶감을 잘라 펴고 호두 조각을 몇 개 넣고 돌돌 감아 썰어 놓으신다. 옆에 붙어 앉아 불쌍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으면 손으로 집은 곶감 조각을 입에 쑤셔 넣으신다.
오물오물 씹히는 그 달콤한 곶감과 고소하게 씹히는 호두 맛이 입안에 황홀경을 안겨 준다.
이제 장독대 위의 빈 장독가 밥알 동동 떠오른 단술과 수정과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어머니는 두 개의 장독에 가득 채워 놓고 절대로 손을 대지 못하게 엄한 말씀을 하신다.
그 말씀은 귓가에서 맴돌다가 찬 겨울바람이 그냥 흘러간다. 마침 서울에서 방학 동안 부산에서 지내던 세 살 위의 종고모와 나 둘이서 어머니가 잠깐 시장을 간 사이에 거사를 치른다.
너무 많이 마시면 들킨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야말로 오뉴월 비 오는 날 먼지 나듯이 엉덩짝이 터질 것이다. 그 야단은 전부 나에게 돌아가겠지!
목숨을 건 작전이 시작된다. 장독대 위 옥상에 동생을 새워 놓고 어머니가 오시나 안 오시나 감시하게 한다.
나와 고모는 작은 국자와 스테인리스 그릇에 거의 표시 나지 않을 양을 따른다. 그리고 원래에 모습 그대로 장독을 덥고 드디어 동생 한 모금 나 한 모금 고모 한 모금!
으으악! 그 단 맛이란 지옥을 간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맛이다.
물론 어머니는 시장을 갔다 온 사이에 조금 먹었다는 것을 짐작하신다. 아무리 깨끗이 씻은 그릇이라도 물기가 남아 있을 게 뻔한 일이다. 알고도 속아 주시는 것이다.
명절이 다행히 방학과 겹치는 날이 있다. 명절 때만 먹을 수 있었던 갈비찜을 맛있게 먹고 단술과 수정과 중에 하나를 먹는다. 달콤한 수정과와 단술!
기름기로 느끼해진 입맛이 시원해진다.
대학을 입학과 함께 음력설이 공휴일로 지정이 되었다. 당연히 장손이신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의 손길이 더 분주해지셨다.
더 많은 음식이 준비되고 고등학교에서 해방된 나는 마음껏 음식과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잔심부름도 하면서 만들어 놓은 음식을 조금씩 얻어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사실 어떤 생각이셨는지는 몰라도 어머니는 항상 나에게 간을 보라든지 아니면 맛을 보라든지 하셨다. 나야 아! 좋지!
하고 양념이나 이제 처음 무친 나물이나 전을 맛보는 즐거움을 독차지했다.
그 덕분인지 지금도 음식에 들어간 재료는 어지간해서는 다 알아맞춘다.
이제 수정과와 단술은 아랫목에 이불로 감싸 안지 않아도 되었다. 전기밥솥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지루한 기다림도 사라지고 밥솥 몇 개로 단술은 만들어지고 수정과는 집 제사에 오는 친척들의 품앗이가 되었다. 명절에 사람은 모이지만 그 찬 겨울 장독대에 올라 뚜껑을 열고 얼은 손을 호호 입김으로 불며 떠먹던 그런 시절은 이제 저 멀리 아주 머나먼 곳에 서서 아련한 추억으로 서 있을 뿐이다.
어머니의 수정과 속에 들어가는 돌돌 말은 감 맛을 그 뒤에 맛볼 수 없었다. 시대가 풍속의 모습도 변화시켰다.
세월이 좋아졌다고 말해야 하나 수정과와 단술은 대기업 식품회사의 마크를 달고 어디서든 마실 수 있는 음료가 되었다. 그 맛은 글쎄?
나도 오십 중반 줄에 앉은 기성세대가 되었다.
젊은 아이들의 입맛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파는 단술과 수정과는 왠지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달콤한 맛 대신 강한 단맛만이 느껴진다. 그래서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걸까!
손의 기운이 음식의 끝에 만져지고 그 손맛이 힘이 맛을 좌우했던 그 시절이 타고 온 배를 떠나보내 듯 넘실 넘실 사라져 간다.
그리운 것이 꼭 맛뿐일까. 그때 장독대에서 호호 불던 따스한 입김의 감촉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눈을 감고 입가에 맴도는 맛을 느끼려 애쓴다. 애쓰면 애쓰는 만큼 희미해지는 맛이 아쉽게 떠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