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약수터에서 먹었던 콩국
소박한 음식을 먹으면 추억이 되살아 난다. 다시는 볼 수 없고 다시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의 아쉬움 때문에 그리움이 피어나고 평범했던 시간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는다. 추억 속에 이제는 다시는 뵐 수 없는 아버지와 그 시절의 어머니의 모습만이 눈 앞에 어른 거린다.
요사이 아침 식사로 콩국을 먹는다. 전날 콩을 불리고 다음 날 아침 콩은 부풀어 오르고 껍질은 반쯤 벗겨져 있다. 맛있는 콩국을 먹으려면 잠시 콩껍질을 제거하는 노력을 들여야 한다. 거기에 전날 남은 식은 밥을 믹서기에 함께 갈고 5분에서 10분 정도 잘 저어 주면 아침 식사로 꽤 훌륭한 콩국이 된다
사람이나 기계나 사용을 많이 하면 처음보다 자꾸 성능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그렇게 잘 먹던 아침밥이 조금 부담스러워진다.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콩 비린내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콩국은 의외로 맛있다. 특별한 조미료나 설탕을 넣지 않아도 노란 콩이 달큼한 맛을 낸다.
그저께도 어제도 오늘도 아침에 콩국을 끓여 먹었다. 아침 준비가 귀찮은 아내도 좋아한다. 당연한 일 아닐까! 여자들은 삼식이를 싫어한다. 특히 하루 종일 밥을 챙겨 줘야 하는 시골생활에서 남편은 아내를 위해 한 끼는 봉사해야 한다. 아침에 약간의 수고로움이 내 삶을 편안하게 만든다.
콩국을 먹으면서 어디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맛이란 게 참으로 놀랍다. 기억을 이끌어 내는데 맛처럼 생생하게 끌어내는 매개체도 없다.
오늘 드디어 그 콩국이 주는 맛 때문에 나의 기억 창고의 문이 열렸다.
아주 먼 과거의 시간 속으로 나는 이끌려 간다. 그 시간에 어린 소년은 잠이 들 깬 눈을 비비고 앉아 있고 거대하고 바위처럼 굳건한 한 사람이 나를 토닥인다.
아버지!
아직 여명도 밝아 오지 않은 깜깜한 새벽에 아버지는 나를 깨운다. 새벽녘 달콤한 맛의 나라를 거닐고 있는 나는 이 꿈에서 깨어나기 싫다. 싫다 싫다 하면서 나는 눈을 비비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약수터에 가자!"
"예에?"
나의 이 짧은 대답에도 아랑 곳 하지 않으시고 아버지는 어서 옷을 입고 나오라고 하신다. 옆에 동생은 아주 콜콜 잘 자고 있다.
아하!
단식이 절로 나온다. 아직 창 밖은 어둠이 짙게 깔린 한 밤중이다. 동생은 빼고 매번 아버지는 나를 깨우신다.
어디를 가나 나를 데리고 다니시는 아버지! 끙!
시계를 보니 긴 바늘 8을 지나 12를 향해 달리고 짧은바늘은 5에 가까이 멈추어 나에게 히죽거리고 있다.
방 안에 가득한 새벽 기운에 추운 한기를 느낀다. 어깨를 두 손으로 깜 싸안았다. 옷을 찾는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거실을 나오니 아버지는 등산복을 입고 커다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거실 창가에 비치는 희미해지는 달빛을 바라보고 계셨다. 탁자 위에는 작은 배낭이 눈에 보인다. 약수터 물을 받으시려고 물통을 배낭이 넣으신 모양이다.
옷을 입고 나온 모습을 보시고 입에 집게손가락을 대시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신다. 그리고 현관으로 나가시는 아버지는 동생들과 어머니가 깰까 마치 고양이가 앞발을 조심스럽게 세우고 살금살금 걸어가신다. 조심해서 문을 여신다. 다도 덩달아 아기 고양이가 되어 살금살금 걷어 간다. 조심스럽게 문을 나셨다. 야옹!
한 동안 늦은 귀가에 아버지는 산에 가시지 않았다.
며칠 일찍 들어오시더니 오늘은 새벽 운동을 겸한 집 근처 있는 산의 중턱에 있는 약수터를 가신다.
아버지는 술을 드시고 늦게 오시는 날이 아니시면 다음 날 새벽에 동네 뒷산의 약수터로 가벼운 새벽 등산을 즐긴다.
겨울의 새벽은 무척 춥다. 아무리 옷을 입어도 뼛속까지 찬 공기가 쏙쏙 파고 들어간다. 문을 나서고 잠깐 동안은 집 안의 기온 때문에 견딜만하지만 짧은 추위와의 밀회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는 가만히 있어도 춤추듯 몸이 떨린다. 입은 나도 모르게 덜덜거리며 떨고 있다. 추위를 느끼니 발걸음은 빨라진다. 숨이 턱까지 찰 듯 빠른 걸음으로 걷고 나니 몸은 운동으로 인해 따뜻한 온기를 만들어 낸다. 조금 덜 추워지지만 다리에 힘이 꽉 들어간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몸이 고달파진다.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다니시려고 하고 나는 따라가지 않으려 하고 늘 옥신각신 하다가 결국은 아버지를 따라나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 뭐 공부를 잘하라는 기대보다는 늘 옆에서 있는 그 자체가 아버지의 든든한 힘이 된다. 어린 나이지만 모를 리 없다. 그래도 힘들다. 그래서 늘 아버지에게 때를 쓰는지 모른다.
약수터를 향해 가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초등학생은 나뿐이다. 이른 새벽에 이렇게 많은 사람의 약수터를 가는 모습이 놀라웠다. 다들 옷을 단단히 입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나도 아버지 걸음을 맞춘다고 입에 하얀 김이 뿜어져 나온다. 숨을 쉬면 차가운 공기가 폐의 깊은 곳까지 내려가 묶은 찌꺼기를 씻어낸다. 차갑지만 점점 몸도 개운해지고 잠도 깨고 상쾌하다.
좀 전까지 불만 가득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나도 새벽의 신선한 공기에 파묻힌다.
이제 도로를 벗어나 등산로 입구로 들어선다. 전나무와 잣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등산로 길은 어른 여섯일곱 명이 일렬로 서서 걸어가기에 충분했다. 이 산은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산이라 소풍 때면 늘 이 길을 걸어간다. 낮에만 보는 길이 새벽어둠 속에서는 마치 처음 와 보는 길처럼 낯설게 느껴진다.
아직 어둠이 짙게 드리워진 시간이라 누군가 손전등을 켜고 길을 밝힌다. 덕분에 길은 보이지만 길 옆의 숲 속은 더 어둡게 느껴진다. 뭔가 나를 휙 낚아채도 모를 정도로 어둡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5학년 변성기의 소년이 속으로 무서워한다. 아버지에게 혼날까 무서움을 감추려고 자꾸 헛기침을 한다.
한 20 분쯤 걸으니 등산로 옆에 작은 오솔길이 오른편에서 보인다. 아버지와 나는 그 길로 발걸음을 옮긴다. 여기서 한 15분 정도 올라 가면 약수터가 나온다. 갑자기 경사진 오르막이 시작된다. 겨우 15분 정도 거리인데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 오르막이 심하게 되어 있어 가는 길 옆에 나무들이 사람의 손을 타서 가지는 모두 없어지고 굵은 줄기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차가운 공기에 얼굴은 얼음장 같다. 얼굴은 차고 몸속에는 열이 차 오른다. 입에는 담배연기가 품어져 나오듯 하얀 김이 서려 나온다. 찬 공기에 입과 코에서 나온 따뜻한 김이 눈썹에 하얗게 내려앉아 물방울이 맺혀 있다. 장갑을 벗고 손으로 쓱 문지르니 촉촉한 물기가 손바닥에 묻어 나온다. 바지 엉덩이 쪽에 손을 대고 쓱 닦는다.
이제 약수터 정상이 보인다. 아버지는 뒷짐을 쥐고 힘겹게 따라오는 나를 힐끔힐끔 훔쳐보신다. 아버지는 뜻 모를 미소만 짓는다. 야속하다. 손이라도 좀 잡아 주시지.
동녘으로 눈부시게 푸른 여명의 빛이 떠오른다. 정상에는 물을 받겠다고 두 세명이 줄을 서 있다. 모두 군데군데 자리 잡고 몸을 푼다. 아버지는 주변을 살피시고 겉 옷을 벗고 체조를 하신다. 아버지에게 받은 배낭 안에 물통을 꺼내고 물을 받는다. 오르는 내내 몸에 싸인 열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점퍼 앞의 지퍼를 내린다. 열기를 식혀 줄 찬 공기가 열어젖힌 점퍼와 옆구리 사이를 훅 들어간다. 차갑지만 시원하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가져온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다. 땀이 식으면 다시 차가워진다. 그러기 전에 땀을 닦아 낸다.
약수터 주변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는 세숫대야를 잡고 물을 받아 손을 넣는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듯 차갑다. 손을 쓱쓱 비비니 손이 따듯하다. 손바닥으로 한 가득 물을 떠서 얼굴을 문지른다. 찬물과 따뜻한 피부가 닿아 김이 모락모락 난다. 몇 번 물을 떠서 얼굴을 씻고 수건으로 얼굴과 손을 닦는다.
우와!
얼마나 상쾌한 기분인지 모른다.
목이 마르다. 얼른 작은 바가지에 물을 가득 받아 아버지에게 간다. 아버지는 씩 웃으시며 내 손에 바가지를 건네 받는다. 아버지는 마치 구수하게 식은 숭늉을 드시듯 아무 맛이 없는 물을 맛있게 꿀꺽꿀꺽 소리를 내며 마신다.
아버지는 물을 다 드시고 장난스레 웃으신다. 손으로 입을 훔치시는 아버지!
그 모습은 나의 든든한 방패였다.
나도 물을 들이켠다. 배 속까지 시원한 기운이 몸 전체를 타고 내린다.
우리는 비탈진 오솔길을 내려와 다시 걷기 편한 등산로길로 접어들었다. 5분을 걸어 가자 산장이 나오고 아버지는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 가신다. 어둠은 자리를 지키려고 하고 빛은 어둠을 내몰려는 듯 어둠과 빛이 섞여 혼재하는 모습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다. 중간에는 솥이 끓고 있다. 어묵 꼬지가 구수한 멸치 육수에 빠져' 날 잡아 잡수' 하고 있다. 자리에 앉고 아버지는 중간에 서서 국자로 솥 안을 이리저리 휘젓는 뚱뚱한 아주머니에게 브이 자를 그린다. 보기에 따라 브이도 되고 두 개도 된다. 아주머니는 솥을 열고 작은 스테인리스 쟁반에 바쳐진 그릇에 넉넉히 담으신다. 아버지는 어묵을 하나 집으신다. 나도 따라 어묵을 잡고 아버지와 동시에 우물우물한다. 옆에 앉은 연세 지긋한 어른이 아버지에게 말을 건다.
"아들이요? "
"예"
"한눈에 알아보겠소. 눈 생긴 모습에 먹는 모습까지 꼭 닮았어요"
하고 웃으신다. 아버지는 그 소리가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린다. 언젠가부터 목이 쉬고 몸이 이상하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몸 여기저기에 이상 징후가 보인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혼자 있고 싶은 때가 많은데 아버지는 꼭 나를 데리고 다니신다.
애 취급받는 것 같아 싫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도 귀여우신가 보다.
그릇에 누런 빛깔을 죽이 나왔다. 그릇을 내기 전에 생 메추리 알을 넣는 아주머니의 손이 보였다. 뜨거워서 그릇을 쥘 수 없다.
장갑 낀 손으로 쟁반을 받치고 작은 숟가락 으로 휘휘 젓는다. 메추리 알이 터져 열기에 익어 간다.
뭔지 모르지만 고소한 냄새가 난다. 나는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 음식을 아버지도 다른 주변 사람들도 잘도 드신다. 얼굴을 찡그리며 후후 불어 한 숟가락 입에 넣는다.
응!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의외로 고소한 맛이 난다. 맛이 있다. 죽도 아니고 국도 아니고 묘한 모습이었다. 걸쭉하다. 다시 한 숟가락 뜨고 나니 입에서 녹아 없어진다.
이제야 입구에 콩국이라고 쓰인 간판 글씨가 보인다. 먹을 거라고는 콩국과 어묵뿐이니 당연히 콩국이다. 처음 먹어 보는 맛이었다. 그러나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에 한 그릇 게눈 감추듯이 홀라당 다 먹었다.
배도 든든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나보다 먼저 다 드시고 뜨거운 어묵 국물을 식히고 계셨다. 그릇을 내려놓자 아버지는 어묵 국물이 든 컵을 건네신다. 아버지는 장갑을 낀 내 손을 꽉 잡았다가 놓으신다. 아버지의 입술 고리가 올라가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신다.
배도 든든하고 나도 따라 웃는다. 아주머니도 옆에 어른도 함께 웃는다. 초등학생이 먹는 모습에,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에, 남기지 않고 다 먹은 그 모습에 기특하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이신다.
이제 내가 배낭을 멘다. 키는 어느덧 자라 있지만 힘은 그다지 강하지 못한 지 메고 나니 뒤로 무게가 확 쏠린다. 아버지는 휘청하는 내 뒤를 받쳐 주신다. 무게감이 어깨로 온다.
산장을 나서고 집으로 향한다. 무거운 물통의 무게가 온몸으로 전해진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하다. 그래서 그런지 무거워도 그다지 힘들지 않다.
오늘 같이 아버지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어떴을까. 지금 쯤 일어나 앉아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 갈 준비나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빛은 이제 어둠을 완전히 걷어 냈다. 집으로 가서 가방을 싸고 학교로 가면 된다. 든든한 식사에 따뜻한 기분이 가득하다. 찬바람을 막는 방패처럼 느껴진다.
아버지도 나도 말없이 웃으며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햇살이 등 뒤를 따스하게 비추는 겨울날 아침이 신선하고 상쾌했다.
아침 죽의 냄새가 나를 그 멀고 먼 과거로 보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씩 웃고 있으니 앞에 앉아 죽을 먹고 있는 아내가 핀잔이다. 죽에 뭐 이상한 게 들었냐고 왜 실없이 히죽거리냐고.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콩국이 너무 맛있어!"
아내도 씩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