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찜
겨울 방학이 시작되고 얼마 있지 않으면 크리스마스가 온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겨울 방학은 크리스마스를 코 앞에 두고 시작된다. 딱히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잘 모르던 어린 시절에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바로 선물이다.
선물!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일 년 동안 착한 일을 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신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착한 행동을 가르친다. 보상이 따르는 선행은 그다지 좋은 교육방법은 아니지만 그래고 차가운 겨울 저물어 가는 연말에 산타 그로스는 아주 매력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12월이 되면서 유독 다른 때 보다 더 착해진다. 어머니는
"일 년 열두 달이 크리스마스면 좋겠네 너희들이 이렇게 말을 잘 듣는 걸 보니 말이다."
산타 할아버지를 믿은 내가 순진한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의 연기가 훌륭한 것인지 모른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다. 너무도 생생한 기억에 아직도 그 날은 정말 산타 할아버지가 계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손에는 작은 케이크가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일 년에 두세 번 먹는 별식을 어머니는 준비하신다.
부엌에서는 간장 양념 진한 갈비찜이 끓고 있다. 명절 외에는 먹을 일이 별로 없는 갈비찜이 크리스마스이브의 저녁 식탁에 오른다.
생각보다 조금 이른 퇴근에 어머니는 서둘러 저녁을 준비하시고 우리들은 아버지와 함께 텔레비전에 둘러앉아 놀고 있다. 여동생은 여전히 아버지 옆에 붙어 있다. 아버지의 여동생에 대한 사랑을 각별했다. 만약 여동생이 오빠를 놀려도 참아야 한다. 혹시 꿀밤 하나라도 줘 박았다가 울거나 아버지에게 이르면 그 즉시 우리는 천국행 티켓을 끊어야 한다.
크리스마스는 종교를 떠나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아이들은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산타 할아버지를 기다리고 젊은 청춘들은 시내로 쏟아져 나온다. 캐럴송이 울려 퍼지고 들뜬 분위기에 사람들은 즐거워한다.
점심을 드시고부터 어머니는 저녁에 먹을 갈비찜을 만드시기에 분주하시다. 단골 정육점에 미리 전화를 해 놓으시면 정육점에서는 기름 부위를 적당히 제거하고 봉지에 잘 포장해 놓는다.
방학이라도 공휴일에만 텔레비전이 나온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텔레비전 방송은 5시 반 이후는 되어야 한다.
아랫목 뜨듯한 곳에 배를 갈고 엎드려 우리는 책을 보고 시간을 보낸다. 그 사이에 어머니는 시장을 다녀오시고 정육점에서 가져온 갈비를 차가운 물에 담가 두신다. 그리고 갈비찜에 넣을 양념을 만드신다.
차가운 물에 담가 두면 핏물이 빠져 고기의 누린내를 잡는데 도움이 된다. 몇 번 헹굼을 계속하시고 지루한 나는 부엌에 가서 어머니가 하시는 일에 한 손 거든다. 마늘을 가져와라 배를 가져와라 간장을 가져와라 그때마다 조르르 다녀며 어머니에게 가져다 드린다. 특히 크리스마스의 선물에 대한 유혹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니 평소보다 더 열심히 움직인다.
추석을 전후해서 나오는 배는 정말 환상적인 과일이다. 맛있는 배는 껍질을 깎을 때부터 터져 나오는 과즙으로 칼 쥔 손이 흥 근하다. 그리고 달싹한 그 맛이 자꾸 손이 가는 과일이다. 시지도 않아 신맛을 좋아하지 않는 나도 꽤 좋아하는 과일 중에 하나다. 이렇게 과즙이 풍부한 배를 갈비 양념에 함께 섞으면 고기의 맛이 훨씬 부드러워지고 맛도 더 좋아진다. 특히 갈비는 오래 삶아야 한다. 갈비뼈와 고기가 잘 분리되어야 하는데 오래 삶아서도 그렇게 되지만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배가 일정 부분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고기를 살짝 삶아 불순물을 제거하시고 이제 양념과 섞어지기 시작하신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 안에는 고기와 양념이 뒤섞인 배꼽을 자극하는 냄새로 가득하다.
아버지도 들어오셨고 저녁 준비가 시작된다.
들어오신 아버지는 오늘따라 어머니 말씀 잘 들었냐고 물어본다. 대답은 참새 새끼 입 벌리듯 벌린 입으로 잘도 대답한다.
아버지는 시계를 보시며 산타 할아버지가 언제 오시려나 하는 말을 남기고 마당에 세수를 하러 가신다. 이때 어머니는 우리 삼 남매를 불러 이것저것 심부름을 시키신다. 평소에 완전 공주 같은 여동생도 숟가락 젓가락 심부름을 한다. 조금만 익으면 맛있는 갈비찜을 먹을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침을 꿀꺽 삼킨다.
상을 편다. 착한 일하면 기다리는 산타가 선물을 준다는 말에 열심히 저녁상 차리는 일을 도운다.
마당에서 세수를 하고 들어 오시는 아버지도 아랫목에 자리를 잡고 앉으신다. 텔레비전에는 캐럴송이 나온다. 가수들과 배우들이 크리스마스 특집 프로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안방 한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크리스마스 추리와 방송에서 나오는 캐럴송이 어울려 집의 분위기도 크리스마스 그 자체다.
이제 저녁 상이 준비되고 아버지는 마당에 수건을 두고 왔다며 잠시 나가신다. 겨울 찬 바람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온다. 젖은 수건은 겨울 삯풍에 벌써 딱딱하게 굳어 있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커다란 그릇에 갈비를 담고 들어 오신다. 갑자기 마당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부스럭 거리는 소리도 나고 뭔가 쿵하고 떨어지는 소리도 난다. 어린 우리로서는 많이 놀랄 수밖에 없다.
70년 대 그 시절에는 아파트보다는 대부분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이었다.
아버지는 살포시 마당 쪽에 나 있는 창으로 밖을 내다보신다. 그리고
"누구요?" 하며 말씀하시는 통에 우리는 놀란 토끼 눈을 뜨며 아버지 근처로 모여든다.
후다닥 하는 소리와 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도 들린다.
아버지는 창문으로 마당을 살펴보시다가
"야~ 아~ 마당에 뭐가 있는데..... " 하시며 말끝을 흐리신다. 아버지는 나가 보라고 한다. 잔뜩 겁먹은 나와 동생은 바짝 붙어 마당으로 나가 본다.
아니 이럴 수가!
마당에는 선물 상자가 놓여 있었다.
우리는 산타클로스가 왔다 갔다며 고함을 지른다. 너무 기뻐 방을 뛰어다닌다. 배고픔은 잠시 저 멀리 사라지고 우리는 선물 상자를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선물상자에는 장난감과 학용품이 있었다. 신이 나서 장난감을 열어 본다. 꼭 갖고 싶었던 물건이었다.
마음속으로 나는 산타에게 고맙다고 했다. 어떻게 나의 마음을 이렇게 잘 알고 계실까!
여동생도 남동생도 가지고 싶은 장난감과 학용품에 황홀해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선물을 보시고
"산타 할아버지가 너희가 일 년 동안 말 잘 듣고 한 걸 아시는구나 이렇게 좋은 선물도 주시고 가시네"
우리는 신이 났고 텔레비전의 가수는 징글 벨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어머니가 만드신 갈비찜으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했다.
선물을 받고 난 뒤 먹는 갈비찜의 맛은 황홀함 그 자체였다. 오래 끓여 고기는 뼈와 거의 분리가 되었고 간장을을 기본으로 하는 양념이 고기에 잘 배어 있었다.
뼈를 쥐고 뜯을 필요도 없었다. 푸짐한 밥상에 크리스마스 선물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었다.
골목길에서는 성당과 교회에서 나온 젊은 형과 누나들이 다니며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눈이라도 오면 참 좋을 크리스마스였다.
저녁을 물리고 아버지가 사 온 케이크를 조금 먹고 나니 배가 남산만 하게 되었다.
마당에 나와 하늘을 바라본다. 별들이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산타할아버지 고맙습니다를 마음속에 연발했다. 그렇게 순진한 어린아이의 크리스마스이브 날 밤은 깊어 갔다.
한 참 뒤에 안 사실이지만 매년 크리스마스 때 보이지 않는 산타는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는 젊은 형들이 아버지의 지시로 한 일이었다.
그걸 산타가 가져다주는 줄로 계속해서 믿고 있었으니 바보 아니면 너무 순진한 것 둘 중 하나인데 아마 요즘 나의 모습으로 봐서는 바보가 아닐까?
크리스마스에는 늘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갈비찜도 그중 하나였다. 그 날 산타의 선물과 어머니의 맛있는 갈비찜이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아버지와 함께한 저녁시간의 즐거움 선물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 설레던 밤 부엌에서 요리하는 어머니의 따뜻함이 때문에 오래 기억되는 크리스마스 전날 밤의 만찬이었다.
가족의 사랑이 모질고 험한 세상에 든든한 쉼터의 역할을 한다. 가족과 함께 한 순간순간이 행복으로 충만했던 시간들이었다.
날씨가 쌀쌀해진다. 크리스마스의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어머니에게 전화 한 통 드려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