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요리

아버지의 신발과 냉면

by 마리아

머리가 커지는 사춘기 시절이 되면 왜 그런지 아버지와 서먹한 사이가 된다. 말도 많이 없어지고 아버지의 잔소리에 화도 잘 내고 그리고 후회되지만 다시 아버지 얼굴을 보기가 민망하다.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기대와 나와 희망과는 간극이 많았다. 잦은 꾸지람과 반항 때문에 주말에 밥상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도 조금 서먹하다는 느낌을 가지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고 조금 가까워진 기회가 된 것이 어쭙잖은 미국 드라마 때문이었다면 어떨까?

처음으로 아버지와 단둘이서 시내에 나가 신발을 사고 냉면을 먹었던 일은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은 그때 그 모습쯤에서 멈춰 있다. 몇 년 뒤 아버지는 내게 그리움을 남긴 체 머나먼 나라로 떠나셨다. 아버지는 지금의 나보다 더 젊은 모습으로 나의 마음속에 살아 계신다.

나의 고교시절에 미국 드라마 '맥가이버'가 크게 인기 몰이를 하고 있던 때였다. 주인공의 복장과 적을 물리치는 방법이 늘 보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영화에서는 첩보원이나 비밀요원은 모두 양복 차림에 단정하고 깔끔한 모습이었다. 권총이나 각종 무기를 능숙히 다루던 모습이었다면 이 외화는 폭력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지혜와 재치 그리고 과학의 이론으로 적을 물리치고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이었다. 전혀 색다른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매력을 느꼈다.

주인공의 복장은 너무나 평범했다. 복장도 허벅지 부분은 헐렁하고 다리 아래로 가서는 좁아지는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와 어깨선이 넓은 점퍼, 머리는 단정하게 정리되지 않은 헝클어진 모습에 양귀 쪽의 머리는 짧고 뒷머리는 길게 기르는 유니섹스 스타일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신선한 충격이다. 이제까지 첩보물의 주인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살상 무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적을 물리치는 모습은 총 쏘고 폭탄을 터뜨려서 사람을 죽이던 그런 방식이 아니었다. 죽는 장면이 그리 많지 않아 거부감도 적었다. 주인공은 궁지에 몰려 있을 때 물리나 화학 같은 과학 지식을 동원하여 위기를 벗어났다. 덕분에 물리나 화학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조차도 관심을 가질 만큼 신출 귀 몰 한 주인공의 모습에 열광했다.

아버지도 이 드라마를 좋아하셨다. 낚시를 가지 않으시는 주일에는 가족 모두는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주말에 가족이 다 함께 앉아 텔레비전을 보는 일이 그리 흔하지 않았다.

여름과 겨울의 변화무쌍한 날씨 덕분에 아버지와 함께 주말을 집에서 보내셨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던 아버지는

"나도 맥가이버 신은 신발이나 바지 한 번 입어 볼까?"

아버지의 이 한 마디에 우리 가족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옷에 별 관심이 없으셨다. 관심이 없다가 보다는 검소한 분이었다. 유일하게 하시는 사치는 낚시였다. 늘 입는 양복 몇 벌을 번갈아 입고 다니셨다. 사무실에는 일하는 작업복이 있고 옷에 큰 관심도 없으셨다.

그 시절 유행했던 유니섹스 스타일의 캐주얼도 나왔지만 나이 드신 분들이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면바지도 한창 나오던 시절이었다. 예전에 기지 바지라고 불리던 양복감으로 만든 바지보다 훨씬 실용적이었다.

드라마를 보시고 그런 옷을 입어 보시고 싶었던 것 같다. 아버지는 그 드라마 속에 이미 주인공이 되어 있었다.

스포츠 중계 외에는 별 달리 텔레비전을 잘 보시지 않았다. 그런데 맥가이버는 시간에 꼭 보셨다. 그만큼 아버지도 재미있어하셨고 주인공이 멋져 보였으리라.

사람에게는 자기만의 로망이 있다. 주인공이 되어 악당을 물리치고 멋진 여자와 함께 길을 걸어가는 상상은 나이와 세대를 초월하는 듯하다.

월요일에 학교를 가보면 반 친구들의 아버지도 빠지지 않고 그 드라마를 봤다는 이야기를 한다. 비슷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같은 세대 분들에 비해 키도 크시고 체격이 좋으셨다. 그러니 옷을 사기 편하다. 물론 사 입는 일은 별로 없었다. 같이 시내를 나가도 함께 옷을 사는 일은 없었다. 어머니 옷은 함께 사 오셨지만 당신께서 당신 자신의 옷을 사 입으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니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어차피 아버지와 함께 옷을 사시면 투닥거리 실 것 같았던 어머니는 주중에 아버지의 바지를 사기 위해 시내로 외출하셨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사 오시는 물건에 대해 토를 다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는 감각과 센스가 좀 있으신 편이라고 주위에 분들이 많이 이야기하신다.)

양복바지와 낚시 바지가 전부였던 아버지의 복장에 드디어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사실 아버지도 욕구를 억누르고 사셨던 것 같다. 늘 검소함이 몸에 배어 있었다. 뭔가 다른 곳에 돈을 쓰시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을 가지셨는지 모른다. 일찍 들어오신 아버지는 어머니가 사 오신 바지에 만족을 하셨다. 문제는 신발이었다.

정장 구두 세 켤레와 가까운 약수터에 가실 대 신는 등산화와 낚시 화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등산화를 늘 신고 다니실 수도 없다.

교복 자율화가 되고 나이키니 프로스펙스니 월드컵이니 하는 가죽 재질의 운동화가 나왔다. 아이들은 나이키 한 번 신어 보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던 때였다.


일기 예보에 풍랑주의보가 있던 주말로 기억한다. 낚시를 가지 않는 토요일에도 저녁시간이 되어야 퇴근해서 집으로 오신다. 어쩐 일로 토요일 낮 시간에 퇴근을 하고 들어 오셨다.

방에서 하라는 공부는 집중하지 않고 먼산 쳐다보며 공상에 빠져 있는데 방문이 와락 열리면서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신다. 후다닥 하며 놀라 아버지를 의자에 앉아 쳐다보고 있었다.

시내에 신발을 사러 가자고 하신다. 모두 놔두고 나랑 같이 가자는 아버지의 말씀에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혼날 일이 있는가였다. 어차피 성적표도 보셔서 혼도 났고 뭐 특별히 방학이라도 가방 들고 학교 왔다 갔다 한 죄 밖에는 없는데 무슨 일이지! 내심 불안했다.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더더욱 아버지와 소원해져 말도 잘하지 않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와 자주 의견 충돌이 있었다. 식탁에서 밥 먹다가, 혹은 약주라도 드시고 오신 늦은 밤에 아버지는 자꾸 했던 말을 또 하시고 또 하시고 해서 거기에 대꾸하다가 혼나고 어머니와 여동생은 말리고 남동생은 나 몰라라 하며 자는 척을 했다. 이틀 전에도 아버지와 말다툼을 했고 사실 아버지가 함께 가자는 말에 별로 내키지 않았다.

아버지는 물질로 나를 유혹했다. 같이 가서 신발 고르는 걸 도와주면 보고 싶은 책도 사주고 시내 유명 냉면집에서 평양냉면을 사주시겠다는 거절하기 힘든 제안을 하셨다. 혹시 혼나는 일이 생겨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아버지를 따라 나셨다.

아버지는 내가 냉면과 책이라면 사족을 못쓴다는 걸 알고 계셨다. 결국 단순한 나는 아버지가 던지는 유혹이 홀라당 넘어간 꼴이 되었다.

당시 캐주얼의 양대 산맥인 랜드로바와 영에이지 매장을 찾았다.

아버지는 맥가이버에 나오는 모양과 색깔의 신발을 찾고 계셨고 서너 군데 매장을 돌고 나서야 아버지가 마음에 들어하시는 신발을 구할 수 있었다. 신발이 마음에 드셨는지 아버지는 내게 책 두 권은 사도 된다고 하셨다. 정말 땡잡았다. (기억에 한 권은 그때 미국의 천체 물리학자 칼 세이건 박사의 코스모스를 사고 또 한 권은 단편집을 샀던 것 같았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드디어 볼일 다 보고 냉면집!

야호!

어머니와 동생들을 두고 냉면집을 가서 아버지랑 둘이서만 냉면을 먹는 게 조금 찔렸지만 아버지와 나만의 비밀로 하고 냉면집으로 갔다. 겨울이라 냉면 마니아들 외에는 자리가 한산했다.

어머니의 고향이 평안도라서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해 냉면을 자주 사주셨다. 번거롭게 집에서 해 먹느니 제대로 솜씨 내는 냉면집에서 사 먹는 게 훨씬 수월했다.

천하 주당이신 아버지가 참새가 방앗간 그냥 못지 나가시 듯 냉면과 함께 수육을 시키고 소주 한 병을 시켜 드셨다. 한 창 왕성한 식욕을 자랑할 나이였다. 아버지는 아주를 별로 드시지 않는데 나는 안주로 시킨 수육을 게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아버지도 술을 다 드시지 않고 반 병만 드셨다.

약간 취기가 오르셨는지 집으로 오는 택시 안에서 내내 내손을 꼭 쥐고 계셨다. 요리조리 손을 만지시고 택시에서 내리 실 때까지 놓지 않으셨다. 그래도 고등학생이면 다 큰 사람인데 자꾸 아이처럼 대하신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아버지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에 대들었던 일이 죄송하게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늘 시작은 좋았지만 또 싸울까 두려웠다.

집에 오고 아버지는 신발을 어머니에게 자랑한다. 술냄새가 나니 늦은 점심으로 뭘 먹었냐고 한다. 그냥 돼지국밥 먹었다고 거짓말하고 아버지는 눈을 찡긋하신다.

미안한 마음은 저녁이 되어 사라졌다. 두 동생과 함께 우리 가족은 그날 비싼 소갈비를 먹었으니 된 거지 뭐!

아버지는 시골에 갈 때나 주말에 외출하실 때나 그 신발을 아끼며 신고 다니셨다. 그날 이후 양복 정장 대신에 간편한 개주얼 스타일을 즐기셨다. 덕분에 어머니의 다림질하는 횟수가 줄었다.

나도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신발을 고를 때 한발 넣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를 위해 뭔가 했다는 마음이다.

지금도 가끔 시내를 나와 냉면을 사 먹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남포동 시내를 함께 걸었던 아버지가 생각난다.

약간 반 술 되신 상태에서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걸으신다. 나는 혹시라도 친구들이 볼까 창피해서 손을 빼려 하면 더 힘주어 잡으시던 아버지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진다.

나에게 잔소리만 하신다고 야속하게 생각했던 철없던 맏아들이 아버지 생각 많이 합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그때는 말씀 한 번 못 드렸지만 사랑합니다!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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