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요리

구수한 된장찌개

by 마리아

멸치 우려낸 육수에 호박 썰고 감자 썰고 무 썰어 양파 넣고 파 넣고 보글보글 끓이고 두부와 된장을 풀어 조금 더 끓이면 구수하고 담백한 된장찌개가 완성된다.

김치하나 곁들이면 다른 반찬이 필요가 없다. 하얀 밥에 된장을 푹 담아서 쓱쓱 비벼 한 숟가락 뜨는 순간

으~음

어떤 산해진미도 이보다 맛이 있을까!


작은 교자상에 안방으로 들어온다. 흰 백 자기에 소담스럽게 담긴 밥과 가을 열무로 담은 김치와 생선구이 하나에 상 중간에 놓은 뚝배기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구수한 냄새의 찌개가 끓고 있다.

가방을 싸고 있는 소년은 어머니가 문을 열고 가져오는 교자상을 얼른 받아 방바닥에 내려놓는다.

아침 등교 시간에 맞춘 어머니의 밥상을 마주하며 소년은 뚝배기에 숟가락을 푹 질러 넣는다.

밥 위에 살짝 올려 쓱쓱 비벼 한입 속 넣는다. 젓가락으로 열무김치를 집어 들고 입 안으로 넣는다.

열무 씹히는 소리가 우적우적 힘차게 들린다. 아들이 먹는 모습을 마냥 웃음을 띈 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는 행복감이 가득하다.

어느 듯 작은 뚝배기에 담긴 된장찌개는 백 자기에 담긴 흰 밥과 함께 사그라지고 도톰하게 살이 오른 생선은 앙상한 뼈만 남는다.

언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셨는지 한 손에는 작은 사발은 뜨끈한 숭늉이 들려 있다. 아들은 숭늉을 후후 불어 내며 마신다. 바닥에 깔린 누룽지는 숟가락 한 입으로 마무리된다.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숨겨 있다고 한다. 우리네 보통의 음식 된장은 오래전부터 우리의 식탁에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나물을 넣고 국을 끓일 때에도 고기를 삶을 때에도 생선요릴 할 때에도 된장은 우리 식탁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음식이었다.

도시의 점심에도 농촌의 점심에도 된장찌개는 식탁에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다.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의 정서에 녹아 있는 구수한 된장찌개는 푸근한 고향 그리고 영원히 함께 계실 것만 같은 어머니의 모습을 담고 있다.

먹어도 먹어도 물리지 않고 싫증 나지 않는 그 깊은 맛이 우리네 어머니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입맛이 사라져 먹고 싶은 음식이 딱히 생각나지 않을 보글보글 구수한 된장에 제철 채소와 두부를 푸짐하게 썰어 넣은 된장찌개 하나면 없던 입 맛도 다시 되살아난다.


어미니의 원수는 손주가 갚는다고 그랬던가. 자식 뒷 바라지에 남편 뒷바라지에 자기 일에 지쳐 있는 딸은 가족을 모두 집에 두고 친정으로 향한다.

풍족하던 풍족하지 않던 그 삶의 무게 속에서 힘겨워하는 딸을 늙은 어머니를 찾는다.

혼자서 문 앞에서 잠시 서 있던 그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자 눈시울이 붉게 변한다. 가방을 놓고 말없이 등 굽은 어머니를 힘껏 안는다. 어머니의 거칠고 손마디 굵어진 투박한 손이 달의 등을 쓸어내린다.


어머니는 장독에 가시어 묵은 된장을 한 숟가락 깊어 퍼온다. 전 날 장에 가서 사 온 커다란 삼겹살 덩어리를 된장과 함께 솥에 넣고 삶으신다.

그리고 양파와 호박 감자를 썰어 놓고 이웃집 아저씨가 잡수라고 가져온 다슬기를 삶고 손을 까 된장에 넣어 본다. 마당 앞 텃밭에서 따온 호박잎도 삶고 머위 잎도 삶는다.

안방에 벌러덩 누워 선잠을 자고 있던 딸은 구수한 냄새에 몸을 일으킨다.

솥 걸린 부뚜막 위에는 삶아 건져 올린 삼겹살 수육이 둥근 접시에 예쁘게 자리한다.

봄에 수확한 보리로 밥을 짓고 다슬기 가득 넣는 짜박 된장도 상위에 올라온다.

머니가 들고 가려던 작은 상을 딸이 들고 툇마루에 걸터앉는다. 모녀는 말없이 호박잎에 고기 한점 깡 보리밥 한 숟가락에 짜박 된장을 떠서 밥 위에 올린다. 사방 빈틈없이 꼭꼭 싸서 한 입 쏙!

입은 벌써 여름의 향기를 잔뜩 머금고 있다. 딸은 미소 짓는다. 무거운 삶의 짐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어머니는 그런 딸의 모습을 그저 바라만 본다.


그 구수하고 소박한 음식은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한다. 풍랑 치는 세상 속에 배를 띄운 선장은 거친 파도를 싸워 나가고 있다. 방향을 잡아야 한다. 꽉 쥔 방향타는 자꾸 파도에 흔들리고 바람에 흔들린다.

저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더 가까이 떠 가까이 풍랑을 헤쳐 나간다. 오로지 보이는 저 아득히 먼 불빛에 기대어 키를 놓치지 않는다.

그 불빛 따라 고요한 바다로 나온다. 모든 것은 잔잔해지고 회색빛 비바람 치던 구름도 걷히고 별이 반짝이는 맑은 밤하늘이 보인다. 그리고 비치는 불빛은 등대가 되어 보인다.

등대와 같은 어머니! 늘 그 자리에 서 있지만 잘 보지 않는다. 아니 삶의 풍파에 보려 하지 않는다.

늘 그 자리에 장승처럼 서 계시는 어머니의 손 맛은 배의 엔진에 윤활유와 같다.

등대의 불빛처럼 길을 밝혀주는 어머니! 그리고 소박하고 맛있는 어머니의 손맛이 인생의 항해에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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