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쌈
어머니에게 자식은 어려도, 나이를 먹어도 항상 걱정거리를 안겨준다.
구십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가끔 전화를 해서 잔소리로 시작하신다. 주로 하지 마라가 많지만 마지막에는 잘 먹어라로 끝을 맺으신다. 길거리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다는 말씀은 꼭 빠지지 않으신다.
오십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어머니 눈에는 꼭 5살짜리 어린아이 같다는 말씀이 귓가를 맴돈다. 잔소리 훈시가 끝나면 혹시 먹는 게 부실할까 어머니의 레시피 하나를 던져 주신다.
밀쌈!
보통 구절판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밀쌈이라는 말이 더 입에 붙는 모양이시다.
야채를 잘게 채를 썰어 기름에 살짝 볶는다. 계란은 노른자와 흰자를 불리에 지단을 만들고 고기는 줄고 소고 고기를 불고기 양념을 넣고 간을 해서 볶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재료는 넓은 접시에 가지런 히 덜어 내어 한 소큼 식힌다. 그 사이에 밀가루를 반죽한다. 밀가루 반죽을 수제비나 칼국수 만들 듯이 되게 하면 안 된다. 묽은 반죽을 해서 한 숟가락 떠서 팬이 동그랗게 편서 굽는다. 약간 부드럽게 구워 내어 한 장씩 싸 올린다. 이제 끝!
어머니는 긴 호흡을 가다듬고 '알간!' 하시며 전화를 끊으신다 (평안도 사투리로 알겠냐라는 말)
아들이 음식 하나 제대로 못 만들어 먹나 해서 일일이 말로 만드는 법까지 다 일러 주신다,
밀쌈!
오이와 애호박은 여름철에 많이 나온다. 오이로 냉국도 만들어 먹는데 여름철 더운 속에 열을 내려놓는데 오이만 한 게 없다. 애호박도 마찬가지다. 호박을 썰어 밀가루와 계란을 풀어 전을 해 먹으면 기름으로 살짝 구어 고소한 맛과 약간 아삭 거리는 맛에 씹는 즐거움을 준다.
밀쌈!
어릴 적 어머니는 신선한 채소가 나오는 여름이면 가끔 우리들에게 밀쌈을 해주셨다.
주말 오후 아버지는 바다낚시를 떠나시고 창문 너머 골목길에 심어진 프라타나스 나무에는 매미소리를 자장가 삼아 낮잠을 잔다. (한 사십여년 전 전쯤에는 매미가 지금처럼 소음이 심하게 들리지 않았다. 어쩌다가 한 마리 정도 우는 소리는 차라리 조요한 낮시간에 리듬감을 불어넣어 주기 충분했다.)
동생들은 스르르 잠이 들고 나도 꾸벅 꾸벅 졸고 있다. 늘 먹는 밥이 가끔은 질릴 때가 있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어머니는 졸고 있는 나에게 시장을 가자고 한다. 무료하고 심심한 아이는 시장 가자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어머니 고운 손을 잡고 골목길을 나선다. 조금만 걸어가면 동네 시장이 있다.
3시가 넘어 4시를 향한 시간 더위가 한 풀 꺾일 시간이다. 한낮의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그래도 덥다.
시장에 들어 서면 정육점이 눈에 뜨인다. 요즘 같이 마트나 백화점에서 파는 고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벌레 때문에 켜 놓은 빨간 불빛은 어린 나에게 공포감마저 준다.
무섭다!
마치 핏빛 같은 느낌이다. 정육점에 걸려 있는 커다란 고기 덩어리가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앞 장 서서 잘 걷던 나는 갑자기 어머니 등 뒤를 따라간다.
입구에는 검고 두꺼워 보이는 긴 앞치마를 두르고 고무장화를 신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분주히 움직인다.
그분들 손에 붉은 피로 물든 핏빛 면 장갑이 무서움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정육점에 아주머니가 어머니를 반갑게 맞이 한다. 입구에 커다란 유리 상자 같이 생긴 쇼케이스에는 고기가 부위 별로 정리되어 있다. 쇼 케이스 안에도 불은 붉은 형광등 불빛이 고기 색깔을 더 붉게 한다. 정육점 안에는 마치 공포 영화에서 나옴직한 음산하고 스산한 분위기가 감돈다. 만약 사람이 없는 밤에 혼자 붉은 불빛 아래에 고기 덩어리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이라면 놀라 까무라 칠 정도다.
아주머니는 어머니와 형님이라는 말로 친근 함을 표시한다. 아마 어머니보다는 나이가 조금 어린 모양이다. 그래도 곱게 화장을 한 흰 얼굴에 살짝 파마를 한 짧은 머리가 지성적이고 단아하게 보인다.
아주머니 옆에는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작은 음료수 병을 하나 들고 나오신다.
그때 처음 나오기 시작한 요구르트였다. 얇은 플라스틱 병에 빨대를 꽂아 주신다. 달달한 맛이 무섭던 기분을 많이 누그러트린다. 그 때나 지금이나 요구르트는 여전히 달다.
어머니는 양지머리와 불고기감을 조금 사가고 집으로 가신다. 고기육수를 내실 모양이다.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음식 준비를 하신다. 여름철이라 냉장고에는 오이와 호박이 있다. 여름 식단에 빠지지 않는 오이와 호박을 꺼내어 오이는 생으로 채를 썰고 호박도 작게 채를 썰어 약한 불에 숨만 죽게 볶는다. 당근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당근도 아삭한 식감을 살리기 위해 살짝 기름 두르지 않고 볶는다. 이제 채소는 준비가 다 되었다.
소고기를 잘게 다지는데 어머니 특유의 리듬감을 가지고 소고기를 다진다. 한 참 다지는 소리를 들으면 말이 달리는 소리가 난다.
다그닥 다그닥 다그닥
도마 위의 칼이 드럼 채 같다. 칼 속에서 소리가 나오는 듯하다.
다진 소고기는 양념 간을 하고 잠시 놓아둔다. 양념이 쓰며 들게 숙성을 한다.
그 사이에 밀가루 반죽을 한다. 밀가루 반죽을 너무 되게 해도 딱딱해져서 싸 먹기 힘들고 너무 물러지면 모양이 잘 나오지 않는다. 농도를 맞추기 힘든데 어머니는 늘 예쁜고 얇은 동그란 모양을 잘 만드셨다. 만두피 정도 크기로 익은 밀떡을 여러 장 만드시면 밀쌈 준비는 끝이다.
양지 육수를 내기 위해 올려놓으신 냄비에는 구수한 냄새의 고기 육수가 준비되었다. 이제 식히기만 하면 된다. 냄비가 담길 정도의 큰 그릇에 찬물을 붓고 기다린다. 어느새 육수는 식고 하얀 덩어리가 군데군데 떠 오른다. 면포를 그릇에 깔고 냄비에 부으려고 하신다. 이때 아들이 한몫하는 순간이다. 뭘 하겠나 마는 그릇이 이리저리 움직이지 않게 쥐고 있으면 된다. 면포를 걷어내면 맑고 투명한 고기 국물만 남는다.
이제 국수도 삶았고 먹는다. 어머니 옆에서 조수 노릇을 하고 나니 힘이 든다. 가져오라는 것 다 가져다주고 잡아 달라는 것 잡아드리고 나도 한 몫했다.
어머니를 도와 드리면 뭔가 큰 일을 한 듯한 뿌듯함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른다. 마루에서 시원하게 누워 자고 있는 동생들을 일으킨다. 시간도 5시를 넘었다. 조금 이른 저녁을 먹자 하신다. 양이 많다.
옆집 진미네에 전화를 하신다. 진미 어머니와 어머니는 친하다. 초등학교 일 학년부터 같은 반을 을 하고 가끔 짝도 되었다.
어머니는 평양이 고행이지만 해방 후에 서울에서 사셨고 진미 어머니의 고향은 서울이었다. 부산에서 내려와 살면서 음식 나누어 드시는 몇 안 되는 분이시다.
음식도 나누어 먹는다. 진미 어머니와 진미와 진미 동생이 왔다.
해가 넘어가고 창문으로 동네가 붉은 페인트 칠을 해 놓았다.
예쁜 접시에 담은 밀쌈이 나오고 젓가락을 쥐고 앞 접시에 밀떡을 올려놓는다. 약간 식은 밀떡에 오이와 호박 소고기를 조금 얻고 손으로 살짝 싸서 아무런 소스 없이 한 입 쓱 베어 물었다. 아삭한 오이와 부드러운 식감의 호박에 소고기의 고소한 맛이 당근의 달큼한 맛과 정말 잘 어울린다. 한 입 가득 입에 물고 우물우물거린다. 토요일 저녁시간에 진미네와 우리 집에 아버지가 모두 계시지 않는다.
진미와 나 동생들 다섯의 입은 엄마 제비와 아빠 제비가 먹이를 물고 오면 입을 짝 벌려 먹는 제비 새끼의 입 모양처럼 바꾼다. 오물오물 맛있게 먹었다. 한 여름 깊어가는 밤의 향기에 젖어 들어가는 작은 모임이 시작된다. 어머니의 음식을 가끔 먹어 본 진미 어머니도 맛있게 드신다. 이제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된 막내 여동생 젓가락 질 서툴러 어머니의 무릎에 비스듬히 앉아한 손에 줘고 오물오물 먹는다.
아주 작은 그릇에 국수를 조금 넣고 국물을 붓는다. 찢은 양지 수육을 양념해서 앉고 잘 섞어 국수를 먹는다. 어리고 작은 배가 아쉽다. 적절히 간이 베어 국수가 맛있다. 어머니가 해 주시는 국수 맛은 정말 일품이다. 국수 건더기를 국물에 적시고 국수 면발 사이에 베인 육수의 맛을 느껴 본다. 무엇도 따라올 수 없는 맛이다. (아직 초등학교 3학년 4학년이 맛을 알면 얼마나 알까. 어머니가 국수를 국물에 여러 번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신 뒤에 드시는 것을 따라 한 것뿐이다.)
사십여 년 전 어느 여름밤이 이렇게 깊어 간다.
어머니의 전화 한 통에 추억의 서랍 속에서 기억 한 장을 꺼내 읽었다. 지금 보다 훨씬 젊고 날쌘 어머니와 이제 코밑에 까만 수염이 조금 보일랑 말랑한 어린 아들이 부엌에서 바쁘다.
돌아오지 않는 그 시절의 모습이다. 오늘따라 텃밭에 보이는 오이와 호박이 그 시절 음식에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아내를 불러 만들어 먹어 볼까? 생각을 접는다. 그때 그 느낌은 아내가 줄 수 없다. 나도 그때의 내가 아니다. 지나간 발자국은 음식에 담긴 빈 그릇과 함께 멀리멀리 가버린다.
그래도 만들어 먹어 봐야겠지!
여~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