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어탕
미꾸라지는 가을이 되면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무더운 여름 내내 그렇게 뽐내던 무성한 초록색 잎들은 그 색이 바래지고 진홍빛의 고운 자태를 잠시 뽐내고는 누렇게 변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되고 가을은 깊어만 간다.
주위 사방을 둘러봐도 잎은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을씬스러운 분위기를 만든다. 간신히 김장을 위해 심어 놓은 배추와 무 줄기만이 초록빛을 발하며 떠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한다.
제철 배추의 달큼한 맛과 통통해진 미꾸라지가 깊어 가는 가을밤 우리의 밥상에 추어탕이라는 이름을 달고 올라온다.
요즘은 가정에서 미꾸라지를 식재료로 하는 추어탕을 만들어 먹는 집이 없는 듯하다. 어떻게 아냐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다. 살아있는 미꾸라지를 어떻게 요리하는지 모르는 주부가 태반일 것이다.
미꾸라지는 민물에서 산다. 특히 논두렁 같은 곳에서 진흙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물을 치고 논 바닥을 휘저으면 펄떡펄떡 거리는 미꾸라지가 그물로 쏙쏙 들어온다.
가을이 익어갈 때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길을 나선다. 풍성한 결실의 계절 가을 느끼기에 시장만큼 구경하기 좋은 데도 없다. 어머니와 함께 구경하는 시장 거리는 나의 호기심을 충족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수산물을 파는 시장에 가면 그 살아 있는 생명들의 모습에 절로 신이 났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나쁜 취미였다. 물고기들은 그 넓은 바다와 호수와 강에서 자유로이 살았다. 인간의 먹잇감으로 사냥되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을 기다리고 있는데 인간인 어린 나는 잡힌 물고기들이 작은 수족관이나 아니면 커다란 물 대야에서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보고 재미있어했다.
특히 작은 고무대야에 빽빽이 모여 있는 미꾸라지들이 펄떡거리고 있다. 시장을 보러 온 사람들은 비닐봉지에 적당한 양의 물과 미꾸라지를 돈과 교환하고 장바구니에 넣어 집으로 향한다.
지나가는 걸음에 이제 나오기 시작하는 배추도 한 단 산다. 아직 본격적인 김장철이 되지 않아도 조금 일찍 나온 배추들은 국거리로 안성맞춤인 식재료였다.
어머니는 집으로 와서 장바구니를 정리하신다. 나도 같이 고사리 손으로 어머니가 하시는 정리를 도우고 있다. 간식으로 사주신 달달한 꿀떡을 어머니 곁에 앉아 오물오물 먹으면서!
이제 조금 있으면 대학살이 시작된다. 인간에 의한 미꾸리지의 대학살이 시작된다.
어머니는 찌그러진 잘 쓰지 않는 냄비에 미꾸라지를 풀어놓는다. 좁은 냄비 안에 미꾸라지는 와글와글 거린다. 이제 절정에 다다른다. 어머니는 굵은소금 한 움큼을 손에 쥐고 한 손에는 냄비 뚜껑을 잡고 준비하신다.
나도 뭔가를 준비한다. 어머니가 뚜껑을 닫으시면 얼른 내 손은 뚜껑을 누르고 있어야 한다.
잽싸게 소금을 냄비 안으로 넣는 순간 미꾸라지들의 필사적인 몸놀림이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덮은 뚜껑에 손을 얻어 놓는다. 미꾸라지들이 몸부림이 얼마나 세게 움직이는지 냄비가 흔들흔들하고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누르고 있는 냄비 뚜껑은 열리기 일보 직전이다.
"파닥파닥 땅땅"
양은 냄비에 그들의 몸이 부딪히며 내는 소리다. 점점 격렬해지고 있다. 삶과 죽음의 사투가 안에서 벌어지고 있지만 냄비 밖은 냄비를 누른 손 외에는 그저 평온하다. 다시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 요동치던 냄비는 서서히 진동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용하다. 냄비 뚜껑을 열어 본다. 미꾸라지들이 힘을 잃고 움직이지 않는다. 소금 한 줌에 모두 기절했는지 죽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굵은 채에 바쳐 물로 미꾸라지를 씻는다. 간혹 움직이는 미꾸라지도 보이지만 거의 움직임이 없다.
이제 미꾸라지를 뜨거운 물속에서 넣어 살이 흐물흐물 해질 때까지 삶는다. 삶을 때 비린내를 잡기 위해 생강도 넣고 마늘도 넣는다. 이제 삶아진 미꾸라지를 채에 바쳐 숟가락이나 소구를 이용해서 으깨기도 하지만 어머니는 손으로 일일이 으깨며 머리와 뼈를 제거하셨다. 뼈를 제거하고 보통 믹서기에 갈지만 씹히는 맛을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갈지 않으시고 끓이셨다. 배추도 준비되어있고 맑은 물에 된장도 풀고 불이 모든 것을 알아서 해줄 차례다.
나는 숙제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옆에서 미꾸라지들이 국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숙제하고 공부하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추어탕 만드는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공부는 하기 싫고 놀고는 싶고 핑계 김에 어머니 일을 도와준답시고 추어탕이 끓을 때까지 부엌에 있고 싶지만 어머니의 무서운, 그리고 강력한 말씀에 방으로 들어와 책상에 앉아 숙제를 마친다.
숙제를 끝내고 방에 앉아 이제 끝나가는 어린이 만화영화를 보고 놀고 있다. 부엌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다. 슬슬 저녁 시간이 다가오고 뱃속은 천둥소리보다 크게 우르르 꽝꽝한다. 어머니는 아버지 사무실에 전화를 해보라고 한다. 늦게 퇴근하면 먼저 우리부터 먹이실 생각이셨다.
전화 거는데도 서열이 있다. 당연히 장남이 걸어야 하지만 이제 서서히 머리가 커지는 동생이 나의 영역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전화기 있는 곳으로 뛰다시피 걸어간다. 그래도 형만 한 아우 없다고 나의 차지가 되었다. 아쉬워하는 동생의 얼굴이 갑자기 내 마음을 흔든다. 큰 선심 쓰듯이 전화하라고 수화기를 건넨다.
갑자기 한해진 동생이 웃는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여동생도 옆에 붙는다. 항상 여동생이 통화를 마무리하기 때문이다.
띠~띠~ 띠~띠~띠
신호는 간다. 그것도 긴 신호가 간다. 전화를 받지 않으신다. 어머니에게 수화기를 든 동생을 대신해 부엌으로 향해 소리치듯이 전화받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말한다.
알겠다고 말하시며 어머니는 마루에 걸려 있는 시계가 몇 시냐고 물어보신다.
7시가 조금 넘었다.
7시가 넘고 전화가 없으신 걸 보니 오늘은 일찍 들어오실 것 같다. 어머니는 서둘러 저녁을 준비를 하신다.
모처럼 전화 통화를 할 기회를 놓친 동생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역력하다.
여동생도 아쉬워한다. 늘 마지막에는 "아빠 일찍 와" 하는 소리를 하고 싶어 하는 동생이었다.
부엌에서 매운 냄새가 확 흘러나온다. 재치기가 절로 나온다.
'에취 에취'
부엌에서는 어머니의 제치기 소리 마루에서는 나 한 번 동생 한 번 제치기 소리, 그리고 막내 여동생의 작은 제치기 소리가 끝을 맺는다.
추어탕에 올릴 고추를 썰었기 때문이다.
"딩동 딩동 딩동"
현관 쪽에서 나는 벨 소리다. 아버지가 오셨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들어오시는 아버지가 우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신다. 여동생은 아버지에게 폴짝 뛰어 안긴다.
아빠!
여동생은 폴짝 안기고 나와 남동생은 일렬로 서서
"아버지 다녀오셨습니까?" 하고 꾸벅 인사한다. 아버지가 들어 오시자 부엌에서도 어머니가 나와 웃으신다. 아버지는 계면쩍으신지
"아이 배고프다." 하는 말만 하신다. 부엌에서 나는 추어탕의 냄새가 조금 전 보다 더 진하게 되어 코를 사정없이 후벼 판다.
안방으로 들어가시어 옷을 갈아입으신 아버지는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그 박력 있는 세수를 하신다.
'어푸! 어푸!'
화장실 바닥에 세면대 물이 튄다. 커다란 손으로 얼굴에 비누칠을 하시고 아버지가 씻으시는 모습을 세 남매가 바라보고 있다. 흰 거품을 얼굴에 문지르시는 순간 화장실 문에 있던 우리를 향해 얼굴을 돌리시고 '어흥'
하신다. 장난기가 발동하셨다. 그 모습에 여동생은 자지러지게 웃는다.
식탁에는 벌써 아버지의 자리에 뚝배기 가득 추어탕이 담겨 있다. 초록색 배추는 있는 푹 익어 갈록 색의 빛을 내고 있고 푹 끓여진 추어탕 그릇 안에는 살점이 녹아 그다지 많이 보이지 않는다.
접시에 붉은 고추와 초록 고추가 있다. 다진 마늘 통이 놓여 있고 종제기에 제피 가루까지 놓여 있다.
식탁 위에는 김치 한 접시가 소담스럽게 담겨있다. 식탁에 다른 반찬은 없다. 오로지 추어탕과 김치가 전부다.
추어탕 위로 빨간 고추 초록 고추 다진 마늘이 올라가면 그 색의 조화가 입맛을 더 돋워 놓는다.
여동생은 아직 메운 맛에 익숙하지 않지만 나와 남동생은 그래도 남자 되어가는 중인데 아주 조금씩 넣어 먹어 본다.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으면 제일 먼저 물컹해진 배추가 씹힌다. 탕 국물에도 배추의 시원한 맛과 달큼한 맛이 배어 있지만 배추에도 구수한 국물의 맛과 배추의 시원하고 달큼한 맛이 입 안에 가득 펴진다.
그리고 살짝 넣은 재피 향까지 어우러져 입안에 알싸한 맛까지 돈다.
우적우적
입에 씹히는 소리가 내 귀가에 들린다.
아버지는 맛이 좋으신지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지신다.
아버지는 몇 번을 숟가락으로 탕을 드시고는 흰쌀밥이 담겨있는 밥그릇 통째로 들어 그릇을 싹 비우 신다. 뚝배기 그릇에 밥이 가득하다.
숟가락으로 몇 번 휘저으신다. 흰 밥알에 배추 사이사이에 들어 가 있다. 국물을 머금은 밥알이 땡땡하게 부풀어 오른다. 나도 동생도 아버지를 따라 밥을 국에 만다.
국물을 머금은 땡글땡글한 밥 알에 이빨에 여지없이 부서지면 그 맛도 가히 대단하다.
깊어가는 가을밤에 우리 집의 식탁도 깊은 가을을 머금은 추어탕과 함께 깊어 간다.
가을이 깊어 가면 그 시절이 많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추어탕만큼은 어머니가 해 주신 게 제일 맛있다고 하셨다. 그 생각은 나도 마찬가지다. 아니 부산이나 대구에도 추어탕 맛집이 많이 있다.
그 맛이 훌륭해서 줄을 서서 먹는 곳도 있다. 추어탕 만들기가 그리 쉽지 않으니 좀처럼 집에서 만들어 먹어 보지를 못했다.
그때 그 맛은 아무리 천하의 맛집이라도 내지 못한다.
그 시절 보름달 휘영청 걸려 있는 깊은 가을날 가족들이 모여 앉아 먹었던 추어탕에는 또 다른 맛이 하나 더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랑!
가족의 깊은 사랑이 빠진 음식의 맛이니 추억 속의 맛은 느낄 수 없다.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그 가을날 밤은 이 생이 다하는 그날까지 기억될 것 같다.
쌀쌀 해지는 날씨에 뜨끈한 추억탕 한 그릇 생각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