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가던 날 아침밥
청춘의 시계는 군대라는 커다란 벽 앞에 멈춰 선다. 자신의 시간은 잠시 접어 두고 봉사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그 시절이 더 살갑게 다가오는지 모른다. 사랑하는 이들과의 헤어짐 역시 가슴을 아프게 한다.
까마득한 세월 뒤 편에서 잊고 있었던 고생스럽던 군 생활 추억보다는 입대 전날 어머니의 눈물과 아버지의 굳은 얼굴이 생각난다.
입대하기 며칠 전 혼자 조용히 책상을 정리하는 방으로 오셔서 그저 말씀 없이 옆에 앉아 책상 정리를 하는 아들을 바라보고 계시던 아버지 얼굴에서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다. 마음이 전해져 와도 아버지에게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입대 전에 친구들은 입대하는 나를 위해 거창한 환송식을 해 준다. 시내 음식점에서 무슨 술과 원수가 졌나 싶을 정도 거의 매일 술을 마셨다.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려고 하는 만용이었지만 며칠 간 의 술과 친구로 나의 불안감은 사그러 들지 않았다.
삼 사일 전부터는 집에서 두문불출이다. 친구들의 전화도 받지 않는다. 알고 지내던 여학생들에게서 오는 전화도 받지 않는다. 뭐 깊이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그때쯤이면 흑백이 가려진다. 정말로 헤어짐을 슬퍼하는 여자 친구가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에 애인이라고 정하고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 시내에서 같이 영화 보고 밥 먹고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던 여학생은 못내 아쉬움을 감추지 않는다.
3년이라는 세월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다. 괜히 넓은 마음인양 잘 지내고 언젠가 길에서 만나면 아는 척이라도 하자고 말을 한다. 두 번다시 보지 말자는 말고 같은 소리다. 커피 전문점에 앉아 어쩌다가 김광석의 "이등병의 편지"가 흘러나온다. 여학생의 눈시울은 붉어진다. 나도 무거워진 마음을 애써 감추려고 헛소리 늘어놓고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하루 시간이 지나고 입대 전날 조용히 집에서 시간을 보낸다. 아버지도 일찍 집에 들어오시고 어머니는 저녁 준비를 말없이 하신다.
집 안 분위기는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마음이 복잡하다. 싱숭생숭하기도 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떠나는 기분도 든다.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지만 집 근처까지 온 여학생은 만나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곱게 포장한 한 손수건과 수첩을 건넨다. 가로등 불 아래서 그렇게 마냥 서 있기만 했다.
골목길에 서서 헤어질 줄 모른다. 애인도 아닌 그저 친구 사이였지만 함께 한 그동안의 세월에 정이 들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어서 집에 가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까지 그렇게 서 있을 것이다.
먼저 그 자리를 떠난다.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뒤돌아 본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다. 가는 뒷모습을 보고 있다. 돌아보는 순간 그녀는 손을 든다. 나도 마음이 아프지만 손을 든 답을 하지 않고 그대로 집으로 달려간다.
집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준비를 끝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손에 든 포장 꾸러미를 보시며 아버지도 어머니도 웃음을 지으신다.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포장을 뜯고 수첩을 열어 보니 자기 사진과 집 주소가 적혀 있다. 갑자기 눈물이 난다.
좀 더 잘해 줄 걸 맨날 못생겼다고, 너는 내 타입이 아니라고 하던 말이 후회가 된다.
하루 종일 부엌에 계시던 어머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전부 만드셨다. 당면을 넣은 불고기 전골이 전기 프라이 팬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다. 좋아하는 고기 동그랑 땡도 있고 시금치 된장국도 있다. 어머니는 부추 겉절이까지 준비하셨다. 완전 진수성찬이다. 아버지는 아껴 두셨던 술을 안방에서 들고 나오신다. 아버지가 근처도 못 오게 하던 술을 오늘 개봉하신다. 갑자기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왜 이러지 정말 가기 싫다' 하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온다.
좋아하는 소불 고기를 당면과 같이 싸서 한 입 먹는다. 그 맛있던 음식이 모래알 씹는 느낌이 난다. 어머니는 부추 겉절이도 먹어 보라고 한다. 봄 부추의 향이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깨로 버무려져 제법 먹음직스러웠지만 역시 맛을 모르겠다. 아버지는 술을 한 잔 주신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아버지의 숨겨 놓은 술을 마시지만 쓴 지 단지 그저 홀짝 넘길 뿐이었다. 하얀 쌀밥을 시금치 된장국에 말아 억지로 한 술 먹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먹는 모습이 전과 같이 않은 모습에 가슴 아파하신다. 손수건을 꺼내어 자꾸 눈을 닦으신다. 아버지는 평소에 잘하시던 우스운 농담도 잘하지 않으신다. 입대 전날 밤은 왜 그리도 짧을 것일까. 가는 시간이 야속할 따름이다. 그렇게 입대 전날 밤은 흘러가고 있었다.
출발하는 이른 아침 어머니의 부엌은 또다시 먼길 떠나는 아들을 위한 준비로 분주하시다.
그날 아침 따라 전기밥솥에 밥을 하지 않으시고 돌솥밥을 하신다. 작은 돌솥을 불에 올려놓고 밥을 하신다.
이제 철에 끝나가는 김을 소금과 참기름으로 바르시고 가스레인지에 약하게 불을 켜고 마치 부채를 흔들듯이 앞뒤로 살짝 쌀짝 바꾸며 구우신다. 아침에 언제 그렇게 준비하셨는지 황탯국을 끓여 놓으셨다. 황태를 잘게 찢고 얇게 깍둑 썬 무를 참기름에 함께 볶아 육수를 넣고 끓이신다. 이제 충분히 끓었다고 생각되면 두부와 계란을 풀어 넣는다. 속풀이에 아주 좋은 시원한 국이 만들어진다. 전날 아버지와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돌솥에 지은 흰쌀밥과 김 시금치무침과 어제저녁에 나온 부추 겉절이 하나면 떠나는 길에 든든 한 아침식사가 될 것이다. 어제저녁에 거의 먹지 못해서 그런지 아니면 시원한 엄마 손 황탯국 때문인지 밥 한 술 말아 빈 뱃속을 채웠다.
전날에 비해 오히려 떠나는 날 기분이 더 좋았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입대하는 장소에 일부러 가지 않으셨다. 그냥 마음이 짠해져 울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드렸다.
현관에 벨 소리가 들리고 나와 함께 갈 친구 두 명이 집으로 들어온다.
아직 갈 시간이 남아 있어 거실에 앉아 차 한 잔 나누며 농담도 하는 여유가 생겼다. 어제저녁까지 어둡고 무거운 기분을 구름 걷히듯 사라지고 맑은 하늘에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기분도 다시 상쾌해진다.
친구들이 어깨에 손을 얹는다. 그 친구들도 군 복무를 마쳤다.(단기 사병)
사실 마음으로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고 샘나기도 했지만 건강한 신체로 국방의 최전선에서 의무를 다한다는 제법 거창한 대의 앞에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졌다.
떠나야 한다. 이제 정말로 떠나야 한다. 모든 꿈과 시간을 멈추고 나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는 떠나야 한다.
어머니는 차마 집 밖에까지 나오시지 못하신다. 아버지는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내 손을 꼭 쥐었다를 반복하시며 지하철 역 근처까지 따라오신다. 아버지에게 어머니 혼자 계시니 들어가라고 말씀드려도
"요 앞까지만 요 앞까지만"
하시며 지하철 입구까지 따라오신다. 그렇게 남자라면 꼭 군대를 가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나의 아버지는 아들의 가는 모습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아버지와 굳게 악수하고 나는 친구들과 역으로 향했다.
기차에 몸을 맡기고 길고 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떠났다.
나중에 들었지만 어머니는 내가 가고 나서 화장실에서 한 참을 우셨다고 한다. 아들이 가는 길 앞에 울지는 못하시고 그렇게 떠나보낸 아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셨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숙명적으로 거쳐야 할 일이 있다면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
그리고 떠나는 그 순간 가족과 친구가 커다란 위안이 된다.
훈련 중에 어머니가 해주신 음식이 많이 생각났다. 왜 그 날 불고기를 먹는 둥 마는 둥 했을까
왜 고기 완자를 먹지 않았을까 왜 기름 바른 김에 흰 밥을 싸서 먹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막심했다.
군대의 커다란 대의명분 국가는 생각보다 멀리 있다. 그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의 안녕을 위해서 나의 청춘을 기꺼이 바친다.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 한 세대가 지나고 다음 세대가 이어 군대를 간다. 그때만큼 긴 복무는 아니지만 그래도 군대 가는 길에 어머니들은 아들을 위해 따뜻한 밥을 지어 주신다.
그 밥은 청춘의 시간 속에 저 먼 기억 속 창고로 들어갔다. 그러나 가끔은 같은 음식을 먹을 때 생각이 난다.
그 날에 어머니와 아버지의 사랑이 가득한 어느 봄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