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멀 태임사랑방

가을빛에 물든 우리, 태임가족

by 유권식

깊어져 가는 가을 향기 속에서…

아침저녁으로 스치는 선선한 바람은 계절의 변화를 고요히 속삭이고, 들녘에선 오곡백과가 햇살을 머금고 알알이 익어가는 풍요의 시간을 맞이했다. 그런 계절의 너그러움 속에서, 우리는 ‘태임가족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따뜻한 만남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먼저 먼 거리에서 이곳까지 참석해 주신 이모님, 큰외삼촌, 그리고 울 태임 가족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한 번 더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오늘 처음 갖는 태임가족 모임이었기에 설렘도 있었고, 그 설렘만큼이나 뜻깊은 순간이었다. 특히나 이곳 정상 질머리는 어린 시절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곳이라 그 의미가 더욱 깊게 다가온다. 빛바랜 가을날, 우리가 함께한 이 순간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느낌을 주었다. 이곳에서 함께한 소중한 시간들이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마음속 깊이 새겨두고 싶었다.


앞으로도 이런 소중한 자리를 계속해서 만들어가며,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순간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서 시작된 첫 모임이라, 개인적으로는 그 감회가 더더욱 새로웠다. 각자 다른 삶의 궤적을 걸어온 태임 가족님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개개인의 인사와 소감을 나누는 시간이었기에 그 뒷받침이 된 취기와 무르익어가는 가을날의 풍경 속에서, 마치 홍시처럼 익어가며 서로의 인간미가 물씬 풍겨났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펼쳐진 따뜻한 정과 함께, 가족 간의 소중한 이야기가 속속들이 나오는 이 순간은 그 자체로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 각자의 끼와 재능이 빛난 밤, 특히 순연이의 목소리는 가수로 데뷔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모임의 분위기를 한층 더 끌어올렸고, 그 순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큰외삼촌의 깊이 있는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지며, 봄날은 간다와 청춘 같은 명곡들이 밤하늘을 감싸 안았다. 그 음악에 맞춰 정상가든의 밤은, 아니 새벽까지도 뜨겁게 타올랐다. 마치 불꽃이 춤을 추듯, 웃음과 노래가 어우러진 그 순간은 한 편의 축제 같았다. 우리는 함께 노래하고, 웃고, 춤추며 평범한 일상을 넘어선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 갔다.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은 음악과 어우러져 피어나며, 우리들 마음에 오래 기억이 될 것이다.

다음날 아침, 상쾌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정상가든의 뒷산에 위치한 작은 외할아버지 산소로 향했다. 차가운 이슬이 풀잎에 맺혀 반짝이는 그 길을 따라가며, 산소 주변에는 홍시와 보리수 열매가 알맞게 익어가며 가을의 풍경을 한껏 빛내고 있었다. 그 풍경 속에서 우리는 고요히 외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며, 시간이 멈춘 듯한 평온한 느낌을 가졌다.

그 순간, 문석이 아재가 자랑스럽게 재배한 노각을 따와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손길이 가득 담긴 그 노각은 단순한 채소를 넘어, 마음까지 따뜻하게 하는 인심이 묻어났다. 마치 가을의 풍경처럼 그 아침의 분위기는 평화롭고 정겹게 스며들어, 우리 마음속에 가을의 정취를 더 깊이 새겨주었다. 그리고 그 고요한 아침, 주변을 둘러보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꼈다. 햇살이 부드럽게 내리쬐고, 산과 들이 고요히 숨을 쉬는 듯한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연과 하나 되는 기분을 느끼며, 다시 한 번 소중한 시간을 나누었다.

귀가 중에 우리는 외조부모님 산소를 찾아 고요히 인사를 드렸다. 그곳은 여름내내 작은 외삼촌의 정성 어린 손길로 돌봄을 받아 산소 주변이 깔끔하게 보수되었고, 밭에선 푸른 호박들이 자랑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작은 외삼촌의 땀과 노력이 담긴 그 호박들을 우리는 챙겼다. 그리고 주변엔 제피나무 군락지가 우거져 있었다. 그 향긋한 제피나무 군락지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소박한 수확을 했다. 제피열매를 따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웃음꽃을 활짝 피운 우리 가족들의 모습은, 그날의 가을 햇살처럼 따사롭고 정겨웠다. 작은 비닐 봉지에 하나둘 담기는 제피열매보다 더 소중했던 건, 그 순간을 함께 나누는 우리의 웃음과 온기였다. 아마도 그날의 풍경과 기분 좋은 수확의 기쁨은, 가슴 한켠에 오래도록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제피나무의 향기가 가득 퍼진 그곳은 마치 자연이 준 선물처럼,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었다. 이렇게 작은 것들이 모여 풍성한 가을을 완성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산내 이모 댁 근처 중화요리 식당에서 점심을 함께했다. 큰외삼촌께서 사주신 짬뽕과 짜장면은 정겨운 대화와 웃음이 어우러져, 어느 때보다 더 깊고 맛있게 느껴졌다. 식사 후에는 산내 이모 댁에 들러, 불편한 몸으로도 정성껏 농사지은 다양한 농작물들도 얻어왔다. 이모님 댁에서 가져온 농작물을 먹을 때면, 이모님의 따뜻한 정성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질 것 같다.

이번 만남은 마음 한켠에 오래도록 따뜻하게 남아, 앞으로의 일상에도 잔잔한 힘이 되어줄 것 같았다. 저물어 가는 한 해의 가을을 바라보며, 문득 우리의 인생도 나뭇잎처럼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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