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작가라는 말이 다가왔다

by 유권식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부산광역시문인협회’ 신인문학상(수필 부문)을 병오년 1월 23일(금)받는 날이다.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 때문인지, 마음은 며칠 전부터 조용히 소란스러웠다. 전날 밤에는 혹여 당선 소감과 신입회원 인사를 해야 하지는 않을까 싶어, 몇 번이나 문구를 고쳐 쓰고 중얼거리며 외우다 보니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두 시가 훌쩍 넘어서 있었고, 그제야 몸을 눕혔지만 설렘과 긴장이 뒤섞인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잠결에 꾸었던 꿈마저 뒤숭숭해 몇 번이나 뒤척이다 눈을 뜨니, 어느새 새벽빛이 창가에 내려앉아 있었다. 개운함과는 거리가 먼 아침이었다.

겨울의 공기는 한층 매서워져 있었고, 기온은 눈에 띄게 내려가 있었다. 창틈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은 날이 선 칼날처럼 예민한 소리를 내며 집 안을 훑고 지나갔다. 그런 날씨 속에서도 아내는 며칠 전부터 휴무를 미리 맞춰,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기로 했다. 그 말 한마디가 든든한 버팀목처럼 마음 한켠에 자리했다. 평소 같으면 점심을 훌쩍 넘겨서야 끼니를 챙겼겠지만, 오늘만큼은 시간을 앞당겨 오전 열한 시에 아점을 해결하고, 남은 시간 동안 마음을 가다듬으며 여유를 부렸다.

시계 바늘은 생각보다 빠르게 움직여 오후 한 시를 가리켰고, 출발 전 교통수단을 두고 고민하다가, 아내가 부산예술회관 주차 정보를 찾아보고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우리는 조심스레 외투를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문을 여는 순간, 바깥의 겨울바람이 기다렸다는 듯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괜스레 숨을 한 번 고르고 나서야, 비로소 이 하루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했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동안, 차창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유난히 거칠고 낮게 울렸다. 속도를 더할수록 바람은 숨소리처럼 끊임없이 귓가를 파고들었고, 겨울의 냉기는 차 안까지 서서히 스며드는 듯했다. 창밖으로 이어지는 겨울 거리의 가로수들은 잎 하나 남기지 않은 채 말없이 서 있었는데, 그 앙상한 가지들마저 차가운 공기에 몸을 맡긴 채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바람과 나무와 계절이 하나로 엮여 오늘의 긴장과 설렘을 더욱 또렷하게 느끼게 했다.

부산 대연동으로 접어들 즈음, 여동생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차 안에 잔잔히 울리는 벨소리가 왠지 모르게 반가웠다. 어디쯤 오고 있느냐는 안부 섞인 물음에, 나는 지금의 위치를 차분히 설명하며 수상자는 시상식 전에 미리 도착해 달라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고 전했다. 혹여 서두르다 마음이 흐트러질까 싶어 조금 일찍 출발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동생에게는 시간에 맞춰 천천히 오라며 당부를 건네고 전화를 끊자, 차 안에는 다시 조용한 흐름만이 남았다. 우리는 그렇게 남은 길을 조금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달렸다.

주차를 마친 뒤, 부산예술회관 강당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두 시였다. 건물 앞에 서니 낯설면서도 설레는 기운이 천천히 가슴 속으로 스며들었다. 방명록에 이름을 한 글자씩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는 순간, 그동안 마음속에만 품어 두었던 ‘작가’라는 이름이 조심스레 현실로 다가오는 듯했다. 절차를 마친 뒤 실내 카페에 가서 아내와 마주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누었다. 김이 은근히 올라오는 찻잔을 사이에 두고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그 짧은 순간마저도, 오늘이라는 날을 오래 기억하게 해 줄 소중한 여백처럼 느껴졌다. 정기총회와 시상식이 함께 열리는 날이라 행사장은 이른 시간부터 많은 문인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랜만에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 소리와 낮게 오가는 대화들이 겹겹이 쌓여, 공간 전체가 문학의 온기로 채워지는 듯했다. 각 좌석마다 정갈하게 부착된 시상 수상자 명단은 조용히 오늘의 주인공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나는 그 이름들 사이에서 문득 내 이름을 발견하며 가만히 숨을 고르곤 했다.

잠시 후 개회를 알리는 선언이 울려 퍼졌고, 행사장은 자연스레 한 방향으로 집중되었다. 국민의례가 엄숙하게 이어지고, 의장의 인사말과 격려사가 차례로 진행되는 동안 나는 무대 위의 말들보다도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감정에 더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동안 글을 쓰며 혼자 견뎌온 시간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이어온 문장들이 조용히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본격적인 시상식의 막이 올랐다.

먼저 지난해 문학도시 작품상 시상이 끝났고, 이어 신인문학상 시상식이 이어졌다. 사회자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수필 부문에서 처음으로 내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했다. 수많은 문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짧았지만, 그 사이에 담긴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부산광역시문인협회’ 이사장과 마주 서서 상장과 꽃다발을 받는 순간, 그리고 객석을 향해 사진 촬영을 하는 그 몇 초의 시간이 내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충만함으로 다가왔다. 오래도록 가슴속에만 품어왔던 바람이, 비로소 빛을 받아 세상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었다.

상장을 받은 뒤 별도의 소감을 묻지는 않았다. 전날 밤, 잠을 설쳐가며 준비했던 말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들은 마음속에만 남겨두어야 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쉽다는 생각보다는,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진 것 같다는 잔잔한 평온이 먼저 찾아왔다. 오늘의 감정은 굳이 말로 드러내기보다,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담아 두고 오래도록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것이었다.

어머니와 여동생들도 자리를 함께해 주며 따뜻한 축하를 건넸고, 그 온기는 말보다 먼저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우리는 나란히 서서 기념사진을 남기며 이 하루를 조심스레 붙잡았다. 그렇게 이날은 박수보다도 조용한 미소로, 오래도록 기억될 소중한 추억 한 장으로 마음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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