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키를 반죽하고 싶게 만드는 영화

달콤함 앞에 녹아들어 버린 사람들

by 일랑일랑

* 브런치 무비패스로 미리 본 영화이며 스포일러를 일정 부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세 살 때쯤인가, 기억도 존재하지 않는 시절에 출근하신 어머니를 대신해 나를 돌보아주시던 아주머니가 딱 그 속담 같은 사람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저녁 시간 딸을 데리러 온 엄마는 동그랗게 벌린 딸의 작은 입에서 단내가 풀풀 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밝은 데로 데려가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옥수수알만 한 유치마다 옅은 갈색빛의 충치가 콤콤하게 올라와 있었다고 한다. 이에 깜짝 놀란 엄마가 먼둥먼둥 서 있는 아주머니에게 캐물으니 아주머니 왈, 내가 하도 울어대는 바람에 울거나 칭얼거릴 때마다 고 우는 입에 사탕을 톡 넣어서 울음을 그치게 했다고 한다. 몇 시간이고 울 것 같다가도 사탕만 물리면 입이 앙다물어지며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나. 하루 종일 사탕을 물고 있으니 양치는 할 의미도 없었다고. 아주머니의 뻔뻔함에 화가 난 엄마는 그 김에 해고를 고하고 다시는 그 집에 발걸음을 하지 않았다. 그 뒤로 몇몇 다른 아주머니 댁을 전전했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아이 이가 약하니 단것은 절대 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고 한다.


옥구슬같이 아름다울 유치가 병든 옥수수알 모양이 되었으니 그 아주머니는 내가 평생을 두고 미워해야 할 사람임이 마땅하다. 그러나 그 뻔뻔한 아주머니가 내게 남긴 것은 지금도 속을 썩이는 충치들만은 아니었다. 내게 남은 것 중 충치만큼이나 강렬한 유산이 하나 더 있으니, 그것은 바로 입 안에서 단맛이 느껴질 때마다 감각기관을 타고서 종이 울리듯 온몸에 울려 퍼지는 평온함이다. 어린 시절 울음을 멎게 만들었던 그 달콤한 평화는 나의 대뇌에 강력한 자극 수용의 고리를 만들었고 나는 끊임없이 단맛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두렵고 버거운 일을 앞두고서 자연히 초콜릿이나 사탕에 손이 가는 일이 잦은데, 이 무심한 아주머니가 남긴 기억의 갈고리가 꽤나 단단하게 매여 있나 보다.


영화 "케이크 메이커(2017)"에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자꾸만 달콤함에 기대려 하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반죽을 따뜻한 손으로 어루만지며 소중히 대하는 주인공 '토마스'는 실력 있는 파티셰이다. 그는 자신이 만든 케이크와 쿠키를 타인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에서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과자를 사랑한다. 그가 꾸려나가는 베를린의 조그만 카페에 이스라엘인인 '오렌'이 들어온다. 독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오렌은 회사일 때문에 독일에 장기 체류 중이다. 예루살렘에 사는 부인을 위한 생강쿠키를 주문하고 나서 오렌은 새빨간 체리를 올려 먹음직스러운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를 주문한다. 포크를 들어 조심스럽게 케이크를 한입씩 음미하는 오렌. 그 달콤함 때문인가, 오렌이 토마스에게 말을 걸고 그렇게 토마스와 오렌은 연인이 된다.



토마스와 오렌의 아슬아슬한 연애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예루살렘에 가겠다고 집을 나선 오렌이 연락 한번 없이 돌아오지 않게 된 것이다. 오렌의 부재에 충격을 받은 토마스가 향한 곳은 오렌이 마지막으로 존재했던 장소인 예루살렘이다. 그는 낯선 이스라엘의 거리에서 피리 소리에 빠져든 동화 속의 아이처럼 오렌의 자취를 따라 정처 없이 걷는다. 그러던 그의 발걸음이 어느 카페에 닿는다. 카페의 주인인 아나트는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아들을 혼자 돌보느라 마음의 상처를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연히 토마스가 만든 쿠키를 맛본 이후, 그녀는 코셔(유대인의 식생활에 관한 엄격한 규율)를 외치며 외국인을 멀리하라는 주변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토마스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달콤한 것들에 마음을 열게 되고 만다.



단맛은 마음의 빗장을 녹이고 아이와 같이 무방비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단 음식을 먹으면 자꾸 이가 썩듯이 달콤함 앞에 허물어진 마음의 담장 곁에도 위험의 부스러기가 조금씩 쌓여가기 마련이다. "케이크 메이커"의 등장인물들은 바로 그러한 달콤함의 위험함을 재현한다. 유부남인 오렌은 아내와 아들이 있음에도 실력 있는 파티셰인 토마스와의 불안한 관계를 이어나가며, 예루살렘의 아나트는 코셔 인증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인 토마스에게 자꾸만 기대게 된다. 오렌을 잃은 충격에 죽은 연인의 발자취를 따라 예루살렘으로 온 토마스 또한 마찬가지. 자신이 만든 쿠키와 케이크를 순수한 찬탄을 표하며 서서히 다가오는 아나트를 거부하지 못한 게 된다.


이성적인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아나트의 삶 속에 자꾸만 깊이 발을 들이는 토마스. 그의 모습은 마치 마음속에 울리는 경고를 무시하고 과자집을 떼어먹는 일을 멈추지 못하는 동화 속의 철없는 아이와도 같다. 그의 여린 마음을 대변하듯이, 화면에 비치는 그의 모습 또한 부드럽기 짝이 없다. 본래 보다 날렵한 체격의 배우인 '팀 칼코프(Tim Kalkhof)'는 파티셰라는 직업을 반영하기 위한 설정인지 원래 체격보다 살을 찌운 상태에서 촬영에 임했다. 그런 그의 뒷모습이 유독 자주 화면에 등장한다. 보드랍고 연약하며 한없이 무방비한 그의 뽀얀 등판은 마치 토마스가 소중히 다루던 수많은 밀가루 반죽과 닮은 모양새이다.



많은 영화 포스터가 그러하듯 "케이크 메이커"의 포스터 또한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의 가장 깊은 곳을 다루지는 않는다. 토마스가 만든 살구 파이 위에 살포시 놓인 "홀로 남은 당신을 위한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라는 구절 정도가 디저트와 이별이라는 이 영화의 주제를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영화의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는 '말해주기'보다는 '보여주기'의 방식을 철저히 따르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자신이 왜 어떠한 행동을 하고 왜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설명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들이 보는 것, 먹는 것, 손이 움직이는 방식 등으로 그들의 속내를 추측해 볼 따름이다. 영화의 말미에 등장한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깊은 슬픔을 맛본 아나트가 자신의 차 안에 앉아 아파트 창문을 올려다보며 쿠키 한 점을 씹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달콤함의 위험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녀.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쿠키를 향해 손을 뻗어 달콤함에 지친 마음을 기대어 버린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무엇인가. 그녀가 좋아하던 시나몬 쿠키 한 점을 베어 물면 그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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