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이 힘들 땐 베이컨으로!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로 미리 본 영화 "로건 럭키(Logan Lucky, 2017)"에 대한 리뷰입니다.
1.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로건 럭키"는 작년 극장가를 뭉클하게 한 영화 "로건(Logan, 2017)"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지만 이 영화는 유명한 엑스맨 시리즈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 "로건 럭키"와 관계가 있는 영화 시리즈는 따로 있는데, 조지 클루니, 브래드 피트, 맷 데이먼 등의 초호화 캐스팅과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를 배경으로 한 화려한 액션으로 인기를 끈 "오션스 시리즈(11, 12, 13)"가 바로 그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둘 다 같은 감독(스티븐 소더버그)의 지휘 아래 탄생한 영화라는 점, 두 번째는 모두 훔치는 행위(heist)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헤이스트 영화라는 점이다.
그러나 수트를 빼입고 각을 잡은 유명 배우들이 늘어선 화려 하디 오션스 시리즈의 포스터와는 달리, "로건 럭키" 포스터 속의 배우들은 후줄근하고 펑퍼짐한 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아있다. 채닝 테이텀, 아담 드라이버, 다니엘 크레이그 등 나름 끗발 날리는 배우들인데,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어수룩하기가 그지없다. 이들은 누구이며 과연 무엇을 어떻게 훔치려고 하는 걸까?
2. 영화의 분류
헤이스트 영화(heist film)는 범죄 영화의 한 가지로서, 도둑질을 계획하고 실행하며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는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이나 상황의 코믹함이 두드러지는 경우 "케이퍼 영화(caper movie)"로 속칭되기도 한다. 헤이스트 영화로 분류될 수 있는 친숙한 영화에는 "오션스 시리즈(Oceans 11, 12, 13)", "인셉션(Inception, 2010)", "나우 유씨 미(Now You See Me, 2013)", "저수지의 개들(Reservoir Dogs, 1992)" 및 한국의 "도둑들(2012)" 등이 있다. 헤이스트 영화라 하면 흔히 떠올리는 풍경들이 있다. 세련된 슈트를 차려입은 매력적인 범죄자들과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조력자들, 비정한 마피아와 갱들, 총격전과 추격전, 천문학 적인 돈이 오고 가는 카지노와 첨단 시스템으로 무장한 금고들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3. 등장인물의 배경
그런데, "로건 럭키"의 주동자들과 그들이 처한 현실은 감독의 전작인 "오션스 시리즈"와는 화려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인 '지미 로건(Jimmy Logan)'은 화려한 카지노는커녕 제대로 된 번화가도 찾기 힘든 미국 남부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다. 그가 쓰는 걸쭉하고 리드미컬한 '남부 사투리'가 그 정체성을 잘 반영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들의 귀에 껌딱지처럼 짝짝 달라붙는 이 사투리는 남북 전쟁 당시 기준 남부(지리적으로도 남부에 해당하는 루이지애나나 텍사스 지역보다는 좀 더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인 애팔래치아 산맥 인근 지역의 것이다. 버지니아, 캔터키, 테네시 등의 지역에 거주하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이 억양을 사용하고 있다. 최근 큰 관심을 끌었던 책 "힐빌리의 노래(Hillbilly Elegy)"가 다루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정장을 갖춰 입고 온갖 지식과 기술을 뽐내기는커녕 육체노동으로 지친 몸을 술 한 잔으로 녹이고 컨트리 음악을 들으며 낡은 자동차를 정비하는 일을 취미로 삼는, 딱 책에서 뽑아낸 것 같은 '힐빌리'의 전형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들이다.
게다가, "힐빌리의 노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본인의 탓으로든 사회의 탓으로든 숱한 불행을 거쳐왔던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에 등장하는 '로건 가족'의 운명 또한 기구하기 그지없다. 주인공 '지미 로건(Jimmy Logan, 채닝 테이텀 분)'은 한때 유망한 미식축구 선수였으나 스타로 떠오르기 일보 직전에 입은 다리 부상으로 인해 선수생활을 그만두고 막노동자가 되어야 했다. 고등학교 시절의 연인 '바비 조(Bobbie Jo, 케이티 홈즈 분)'는 지미의 잇단 불운에 지쳐 어린 딸(새이디 로건, 패라 맥킨지 분)을 데리고 지미를 떠나 부유한 자동차 딜러와 결혼을 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가 인부로 일하던 '샬럿 모터 스피드웨이(Charlotte Motor Speedway)'가 다리 부상을 사전에 고지하지 않았다는 점을 트집을 잡아 지미를 해고하자마자, 그는 사랑하는 딸의 가족이 버지니아의 린츠버그로 이사를 갈 예정이라는 점을 알게 된다.
그의 동생은 또 어떠한가. 로건 형제들은 운이 없기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지미의 동생' 클라이드 로건(Clyde Logan, 아담 드라이버 분)'은 이라크 파병을 갔다가 부상 없이 잘 돌아오는가 했더니 돌아오는 그 길에 사고가 터져 왼쪽 팔을 잃고 말았다. 이를 두고 주민들은 '로건 가의 저주(Logan curse)'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혀를 차곤 한다. 그나마 막내인 '멜리 로건(Mellie Logan, 라일리 코프 분)'은 미용실에서 근무하며 별 탈 없이 지내고 있기는 한데, 걸핏하면 과속을 일삼는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4. 영화가 시작되며(초반부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청소년기에 저지른 방황과 잇단 불운을 뒤로하고 노동을 통해 떳떳하게 돈을 버는 일에 전념하고자 했던 이들. 그러나 일터에서는 자꾸만 일이 터지고, 그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사건에 대처하는 형제들의 방식은 의리와 명예 없이는 살지 못하는 힐빌리의 방식 날것 그대로이다. 직장에서 해고된 아픔을 달래고자 동생이 바텐더로 일하는 술집을 찾은 지미 로건. NASCAR팀 오너이자 사업가인 맥스가 동생의 의수를 두고 빈정거리듯 박장대소를 터뜨리자 이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려버린다. 클라이드는 이에 한술 더 떠서 형을 때리던 맥스의 자동차에 불을 질러버리는데, 이 될 대로 돼라 식의 막장 속에서 지미가 클라이드에게 이상한 말을 던진다. "콜리플라워(Cauliflower)!" 불타는 차와 패닉 하는 차주를 뒤돌아보지도 않던 클라이드,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형의 말을 되받는다. "뭐? 방금 나한테 콜리 플라워라고 했어?!"
5. 영화 속의 요리: 설득이 필요할 땐 베이컨으로!
대체 "콜리플라워"가 무엇이기에 동생의 신경을 이토록 긁어놓는가? 브로콜리의 형제뻘 되는, 힙스터들이 몸에 좋다고 여기저기 넣어 먹는 채소가 아니던가? 알 수 없는 형제들 간의 비밀코드를 관객에게 설명함과 동시에 영화는 인물의 배경에 대한 묘사를 마치고 스리슬쩍 '훔치는 영화(heist film)'의 구도를 갖추기 시작한다. '훔치는 영화' 또는 '헤이스트 영화'는 보통 3막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1) 훔치기 준비 (2) 실행 (3) 플롯 풀어내기'가 바로 그것이다.
(1) 훔치기 준비: 공모자 모집, 범죄 장소 탐색, 범죄 기술 탐색
(2) 훔치기(와 약간의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의 발생)
(3) 플롯 풀어내기: 훔치기의 성공 또는 실패, 그 결과, 구성 인물들의 종말
불타는 차를 뒤로하고 지미 로건이 동생에게 비장하게 외친 말, "콜리플라워!"는 그들이 방황하던 청소년기에 사용하곤 했던 비밀 코드였다. 무언가를 훔치든, 어딘가에 침입하든 무엇이든 법이나 규율을 저촉하는 행위를 일으키기 전, 서로의 동의를 확인하는 마법의 코드가 바로 "콜리플라워"였던 것이다. "여태껏 잘 참고 성실히 살아와놓고 이제 와서 또 범죄를 저지르자고?" 클라이드가 로건의 제안에 역정을 낸 것에는 바로 이런 의미가 숨어있었다. 어쨌거나 우리의 주인공, 지미 로건은 이렇게 첫 번째 공모자에게 제안을 던졌다.
불타는 차를 뒤로하고 "콜리플라워"를 외친 다음 날 아침, 지미는 부엌에서 무언가를 요리하느라 분주하다. 요리가 끝나고, 카메라는 불그스름한 갈색빛으로 바삭하게 튀겨낸 베이컨 한 덩이를 부루퉁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클라이드 로건을 비춘다. 입에 시럽을 잔뜩 머금고 말하는 듯 리드미컬하게 우물거리는 남부 억양의 대사가 일품인 장면이다. 그 대사를 감상해보자.
[영상] Logan Lucky Movie Clip - Charlotte Motor Speedway (2017) | Movieclips Coming Soon
https://www.youtube.com/watch?v=b5lOTiYdqf4
-클라이드: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어제 술집을 떠나면서 형은 분명히 "콜리플라워"라고 말했어. (Unless I'm mistaken, yesterday, as you were leavin' the bar, you said the word "cauliflower.")
-지미: 맞아, 그랬지. (That's right. I did.)
-클라이드: 마지막으로 형이 그 말을 했을 때, 나는 결국 육 개월이나 갇혀 살게 됐어. (The last time you said that word to me, I ended up gettin' sent down for six months.)
-지미: 소년원이었잖아. (It was juvie.)
-클라이드: 난 열세 살이었고 말야. 그리고 아마 형이 망을 보기로 했었지, 안 그래? 네 똘마니 짓을 하면서 나는 네가 그 미친 콜리플라워 계획을 갖고 온갖 사건사고를 향해 나를 이끌도록 내뒀지. 범죄로 얼룩진 삶은 내게 이제 끝났어. (I was 13. And you were supposed to be the lookout, now, weren't you? Bein' that I was your kid brother, I let you lead me into trouble with all your crazy cauliflower plans. My life of crime is over.)
그런데 오늘 아침 형은 내게 아침을 차려줬고, 심지어 베이컨을 구웠는데 그게 딱 내가 좋아하고 형은 싫어하는 그 방식대로야. 거기다 형이 강도짓 체크 리스트까지 만들어놓은 것을 봤지. 그러니 이제, 내 생각에 이번 계획은 잘 정비되어있고 형한테 의미가 크겠지. 그니까, 한 번 해보자. (But you did make breakfast this morning. Even burned the bacon like I like and you hate. I also saw you have some sort of robbery "to-do" list. Now, I know this attempt to be organized is a big step for you. So go.)
(대사 출처: https://www.springfieldspringfield.co.uk)
베이컨과 달걀이라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식사를 두고 웅얼거리기에는 그 일장연설의 흐름이 상당하다. "형이 내가 좋아하는 식으로 베이컨을 구워줬으니 나도 형을 도와주겠어"라는 이상한 논리도 독특한 매력의 배우, 아담 드라이브가 흐물흐물하게 뱉어내는 남부 억양을 통해 들으니 교묘하게 납득이 간다. 그러면서도 베이컨을 경애하다시피 하는 미국의 문화에 익숙지 않은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도대체, 베이컨이면 같은 베이컨이지 네가 좋아하는 베이컨과 내가 좋아하는 베이컨이 따로 있다는 건 뭐람?
한국에 같은 배달 탕수육을 두고 부먹과 찍먹 논란이 있고 그 중간의 회색지대는 없다시피 한 것과 마찬가지로, 미국에는 베이컨을 굽는 방식에 대한 팽팽한 견해 차이가 존재한다. 그 스펙트럼의 한 쪽에는 마치 두꺼운 감자칩처럼 바삭바삭하게 바짝 구워낸 베이컨(crispy and crunch)이 있고, 그 반대쪽에는 부드럽고 쫀득쫀득하게 적당히 구워낸 베이컨(crispy but tender and moist)이 있다. 물론 점이 모여 직선을 이루듯이, 베이컨에 대한 선호의 스펙트럼에는 수천수만의 개인적인 선호 지점이 존재할 것이다.
영화 화면을 미루어보건대 동생인 클라이드가 좋아하는 베이컨은 갈색빛이 돌 때까지 바삭하게 구워낸 베이컨이다. 동생을 범법행위에 가담시키기 위해, 지미는 자신의 취향을 마다하고 베이컨을 바짝 구워냈다. 이는 찍먹파가 부먹파를 배려하기 위해 바삭한 튀김 위에 소스를 모조리 부어버리는 것과 비견될 만한 엄청난 양보이다. 클라이드는 형이 자신을 위해 바짝 튀긴 베이컨을 마주했다. 이와 동시에 형이 진심으로 자신을 끌어들이고 싶어 한다는 점을,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는 점을 눈치챘다. 감동보다는 유머에 가까운 장면. 그러나 클라이드의 태세 전환을 나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리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목적이 있다 한들 감히 내 손으로 튀긴 고기 조각 위에 소스를 부어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그 어려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6.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동생을 베이컨으로 꼬아낸 것은 지미의 전체적인 계획 중 십 분의 일에 이르지도 못한다. 그는 앞으로 감옥에 갇혀 있는 전문 금고 털이범(Joe Bang, 다니엘 크레이그 분) 또한 공범으로 끌어들여야 하며, 여타의 공범자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이해시키고 확실한 날과 시간을 골라 계획을 수행해야 한다. 금고 털이에 성공했다면 그다음은 또 어찌한단 말인가? 그 돈은 과연 어떻게 나눌 것이며 그들을 뒤쫓는 수사기관은 어떻게 따돌릴 것인가?
영화는 걸쭉한 남부 사투리가 난무하는 청각적 경험을 이용하여, 능청스럽게 관객의 몰입도를 높인다. 짜릿한 총격전과 첨단기술이 번쩍이는 여타 영화가 주는 몰입도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하나 같이 나사가 풀린 캐릭터들의 실수과 말다툼은 시시때때로 관객들을 피식거리게 만든다. 119분. 두 시간에 딱 1 분 모자란 짧지 않은 러닝타임이지만 관객들은 그다지 지겨울 틈이 없다. 주인공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분명히 범죄인데, 어느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과격하면서도 어설프고 짠한 그들에게 행운이 손길을 내밀기를 바랄 뿐이다.
7. 영화 속의 요리 레시피: 동생이 좋아하는 베이컨과 형이 좋아하는 베이컨
"그런데 오늘 아침 형은 내게 아침을 차려줬고, 심지어 베이컨을 구웠는데 그게 딱 내가 좋아하고 형은 싫어하는 그 방식대로야."
방황을 청산하고 바른 길을 걷기로 결심했던 클라이드가 지미의 범죄 계획에 동참하게 된 계기. 바로 그 베이컨을 기억하며, 동생이 좋아하는 바삭바삭한 베이컨과 형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베이컨을 요리해 보자.
7.1. 동생(클라이드)이 좋아하는 바삭한 베이컨
1) 중약불로 예열한 팬에 베이컨을 나란히 올린다. 베이컨 자체에 기름이 충분하므로 기름을 두를 필요는 없다. (코팅 팬이 아닌 스테인리스 팬을 사용한다면 시즈닝을 위해 약간의 기름을 발라둘 필요는 있다)
2) 강한 불에 빠르게 익히면 베이컨이 급격하게 수축할 수 있으므로 중약불을 유지하며 굽는다. 베이컨에서 빠져나온 기름에 베이컨을 다시 튀기는 느낌으로 굽는다.
3) 베이컨 기름이 남아있는 팬에 스크램블드 에그를 만든다.
바삭바삭한 베이컨 완성!
7.2. 형(지미)이 좋아하는 부드러운 베이컨
1) 팬에 베이컨을 나란히 두고 베이컨이 완전히 잠길 때까지 물을 붓는다.
2) 물이 대부분 졸아들 때까지(약 15~20분 정도가 걸린다) 물을 끓인다. 물이 거의 다 졸아들면 팬 바닥에는 베이컨 기름만 남는데, 이때 베이컨을 뒤집어가며 고루 익힌다. 너무 타기 전에 팬에서 꺼낸다.
지미가 좋아하는 부드러운 베이컨이 완성되었다.
로건 형제가 거주하는 웨스트 버지니아를 포함하여, 애팔래치아 산맥을 둘러싼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는 식문화가 발달하였다. 시장까지 도달하기에 먼 거리에 사는 농부들은 닭과 돼지를 스스로 도축하여 그 고기로 햄과 베이컨, 소시지를 만들었다. 사냥과 낚시 또한 식량을 얻기 위한 중요한 행위였으며 토끼와 사슴고기 등을 이용한 레시피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지미가 동생을 위해 차려주었던 아침 식사에는 긍지 높은 자존심마저 꺾을 정도로 강한 재기에 대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