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이해하는 딸의 부엌과 두 가지 양배추 요리
- 영화를 만나기 전에
영화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멀리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영화의 원작이 되는 동명의 일본 만화 "리틀 포레스트(이가라시 다이스케 작, 2002년~2005년 간 연재)"가 내 책장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된 이상 새하얀 무지의 상태로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접하기는 어렵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원작이 되는 작품을 미리 접했다고 해도 이를 토대로 한 영화를 즐기기가 아예 어려워지는 것은 아니다. 원작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흥미진진해지는 부분도 있다. 이를 테면 어떤 부분이 내가 아는 것과 다를지 색다름에 대한 기대를 안고 가는 것이다. 내가 임순례 감독의 "리틀 포레스트"를 마주하며 품은 궁금증은 '산수유마을로 유명한 경상북도 의성을 배경으로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배우 김태리를 담아낸 이 "리틀 포레스트"는 원작을 어떤 식으로 반영하고 변주해 냈을까' 내지는 '어떤 요리와 어떤 풍경이 내 눈을 즐겁게 할까' 따위의 질문이었다. 만약 만화책이든 동명의 일본영화이든 원작의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면 영화를 대하는 자세는 더욱 간결해진다. 김태리, 시골, 요리. 딱 요 정도만 알고 영화를 만나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 영화가 시작되며
숲이 우거진 구불한 산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혜원(김태리 분)을 비추며 영화가 시작된다. 장을 보러 가는 길. 읍내까지는 적어도 사십 분은 가야 한다는 전하는 혜원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생동감이 있다. 화장기 없이 맑은 그녀의 얼굴이 시골마을에 어울리는 듯도 하다. 하지만 그녀는 왜 여기에 있는 걸까? 관객과 함께 그녀가 시골집에 자리 잡은 연유를 파고듦에 있어, 카메라의 시선에서 서두름은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을 앞으로 감아 화면은 흰 눈이 가득한 겨울 속의 혜원을 담는다. 그녀가 서울을 떠나 배낭 하나를 등에 매고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는 장면. 반기는 이가 없을 뿐 아니라 싸늘하기까지 한 집에서는 오랫동안 비어있었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혜원은 태연히 빈집의 이곳저곳을 야무지게 뒤져 밀가루 봉지와 쌀 한 움큼을 찾아낸다. 텃밭에서는 얼어붙은 배춧단을 언 손으로 뽑아왔다. 밀가루와 물을 섞어 수제비를 야무지게 반죽한 그녀는 마당의 눈을 치우며 반죽이 자리를 잡을 두 시간을 기다린다. 눈을 치우며 잔뜩 곯은 배를 수제비와 배추전을 만들어 배를 채운 혜원. 이 집에 머무는 것은 단 며칠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내지만 야무진 혜원의 끼니를 목격한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다. 그녀는 아마 이 집에 오래 머물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요리 속에 스며있는 편지 너머의 누군가를, 어떤 이유를.
-영화의 재미(스포일러 있습니다)
그렇게 영화는 시골집에서 하루하루 무언가를 키우고, 만들고, 먹는 혜원의 모습을 따뜻하게 담아낸다. 그리하여 마침 요즘 유행하는 예능 프로그램인 '효리네 민박'이나 '삼시 세끼' 따위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영화 곳곳에 펼쳐진다. 실패와 차가움으로 자꾸만 젊은이를 밀어내는 도시로부터 일탈하여 매일이 새로운 자연을 접하고 제철 재료를 직접 키우고 다듬어 요리하는 일상. 식사를 하지 않고 '리틀 포레스트'를 보러 온 관객이라면 짐짓 당황할 정도로 화면에는 혜원의 사랑스러운 먹방이 연이어 이어진다. 겨울에는 팥을 삶아 삼색 시루떡을 찌고, 찬 바람을 쐬며 담가놓은 막걸리를 마시고 고추장떡을 곁들인다. 봄에는 봄나물과 벚꽃을 얹은 오일 파스타를 만들고, 봄 양배추가 무르익으면 달걀 양배추 샐러드를 채워 넣은 샌드위치를 만든다. 아카시아꽃과 쑥갓을 먹음직스럽게 튀겨서 와사삭 베어 문 후, 여름이 오면 시냇가에 호박잎 쌈이 든 도시락을 챙겨간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화면을 바라보며, 아마 대부분의 관객은 혜원과 더불어 일상을 잠시 등지고 휴식을 취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결코 단순한 귀촌 요리 예능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요리를 만들던 혜원이 무심코 떠올리는 장면들과 그 기억을 좇는 혜원의 끈질긴 발걸음으로 인해, 관객은 요리를 하는 혜원의 행동 이면에 무언가 의미가 있음을 눈치채게 된다. 혜원이 부엌에 서서 요리를 차릴 때마다 그림자처럼 불쑥 나타나는 이는 어떤 이유인지 혜원을 오래 전에 떠난 혜원의 엄마(문소리 분)이다. 재미있게도, 혜원의 엄마와 혜원 사이의 물리적인 접점은 영화의 말미까지 등장하지 않는다. 결국 혜원의 엄마가 화면에 등장하는 순간은 오롯이 혜원에 의해 발생하게 된다. 요리를 하는 혜원의 등 뒤로 조용히 다가와 잔소리 같은 훈수를 두고 사라지는 엄마, 토마토를 함께 베어 무는 회상 중에 등장하는 엄마, 어린날의 혜원에게 직접 만든 옷을 입혀주는 엄마. 혜원의 엄마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혜원이 수능을 치던 날 정든 집을 떠나버리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엄마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위로 겸 질책 겸 한 마디를 던지면 혜원은 이미 포기했다는 듯 겸연쩍은 미소를 짓곤 한다. 그러나 떠나버린 엄마는 혜원이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고 재료를 손질하는 거의 모든 순간에 혜원의 기억에 등장하여 그녀의 머릿속을 휘젓고 간다. 결국 혜원은 엄마를 잊기는커녕, 이곳에서 엄마를 더욱 적극적으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부엌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요리를 할 때마다, 혜원은 엄마가 섰던 그 자리에서 엄마가 향했던 방향을 바라보며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가 예전에 만들었던 요리를 만들며 엄마를 의식하고, 이미 존재하는 요리를 짐짓 자신이 개발해낸 요리인 양 허풍을 쳤던 엄마의 능청스러움을 떠올리며 헛웃음을 짓기도 한다. 비슷한 재료를 두고도 엄마에 대한 약한 반항처럼 자신만의 킥(kick)을 집어넣기도 한다. 이 부엌이라는 공간이 있기에, 혜원은 엄마의 눈높이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영화에도 대사로 등장하기도 하지만("엄마랑 딸 사인데도 그래?" "그러니까 더 그렇지" 정도의 대사였던 듯하다), 엄마와 딸 사이에는 약한 라이벌 관계가 존재한다. 이를 테면 사소한 일로 다투게 되었을 때 누가 먼저 사과의 손을 내밀어야 하는지 또는 젊은 시절의 엄마가 더 인기가 많은지 지금의 딸이 더 매력적인지 하는 것들을 따지고 드는 것이다. 요리를 하는 혜원의 머릿속에도 이러한 구도가 반복하여 그려진다. 엄마의 요리보다 자신의 요리가 더 낫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엄마의 요리가 더 맛있다고 내심 인정하는 때도 있다. 요리를 두고 벌어진 엄마의 허풍을 기억하며 피식 웃기도 한다. 그러면서 혜원은 싫다 싫다 하면서도 결코 싫어할 수 없는, 결국에는 닮아가게 되는 엄마와 딸의 관계를 점차 직시하게 된다. 무의식 중 혜원이 그토록 매달렸던 행위, 요리하고 먹는 일은 엄마가 딸에게 온전히 물려준 무형의 자산이자 엄마를 만날 수 있는 창구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계절이 변화하는 아름다움, 도시에서 상처받은 청춘의 회복 등 영화에 드러나는 이야깃거리는 다양하지만, 내게 가장 깊게 와 닿은 주제는 결국 엄마와 딸의 관계였다. 혜원은 엄마의 부엌에 서서 엄마의 눈높이를 이해하며 사계절을 보냈다. 엄마를 이해하며 딸은 어른이 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 양배추 빈대떡 대 양배추 샐러드 샌드위치
영화에 비친 요리가 하도 많아, 어떤 요리를 만들어보아야 할 지에 대한 긴 고민이 필요했다. 결국 내가 만들기로 한 요리는 두 가지, 오코노미야키와 양배추 샐러드 샌드위치이다. 양배추를 사이에 두고 엄마와 딸이 대결하는 듯한 구도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혜원의 회상에서, 엄마는 어린 혜원에게 "우리, 양배추 빈대떡을 만들어 먹을까?"라고 물으며 오코노미야키를 부쳐낸다. 양배추를 듬뿍 넣은 밀가루 반죽을 팬에 올려 동그랗게 부치는 모습이 빈대떡을 만드는 모양새와 비슷하기는 하다. 가쓰오부시 덩어리를 대패에 밀며 나무 덩어리를 가루 내어 올리는 양 혜원을 놀리기도 했다. 이 양배추 빈대떡을 엄마가 개발한 특선요리인줄로만 알았던 혜원. 서울의 일본식 포장마차에서 간식거리를 사다가 오코노미야키를 보고나서야 그녀는 엄마의 능청스러운 사기극을 깨닫고 헛웃음을 짓는다. 그래서 엄마가 없는 시골 빈 집에 돌아온 혜원이 만드는 양배추 요리는 오코노미야키가 아니라 양배추 샐러드 샌드위치이다.
- 엄마의 양배추 빈대떡(오코노미야키) 레시피
[재료] 오코노미야키 작은 것 기준 4 장
-밀가루 100g (약 1 컵)
-가다랑어 육수 140ml(약 0.6 컵) 또는 140ml의 물에 해물 다시다 1 tbsp(고형 또는 액체)을 푼 것
-베이킹파우더 1/4 tsp
-산마 간 것 1 tbsp(전분 3 tbsp을 동량의 물에 푼 것으로 대체 가능)
-소금 한 꼬집
-달걀 4개(반죽용) + 달걀 4개(부침용)
-양배추 1/4~1/2 통, 대파 썬 것 약간
-베이컨과 새우살 등 적당히
1.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볼에 넣어 잘 섞는다.
2. 해물다시를 푼 물을 밀가루에 조금씩 넣어가며 덩어리 지지 않도록 잘 섞는다(전분을 사용한다면 해물다시를 조금 남겨둔다).
3. 산마 간 것을 넣는다. or 전분을 해물 다시 남긴 것에 잘 섞어 밀가루 반죽과 다시 섞는다.
4. 반죽에 양배추, 대파, 달걀, 베이컨, 새우 등을 넣고 잘 섞는다.
5. 프라이팬에 기름을 살짝 두르고 반죽의 양면을 고루 익힌다.
6. 양면이 고루 익으면 반죽을 잠시 치운 팬 바닥에 달걀을 얹고 위에 반죽을 덮어 익힌다.
7. 달걀이 고루 익었으면 접시에 담아 오코노미야끼 소스와 마요네즈를 바른다.
8.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를 얹어 마무리한다.
2. 혜원의 양배추 샐러드 샌드위치
[재료]
-양배추 1/4 통
-삶은 달걀 4~5개
-마요네즈, 소금, 후추 약간
1. 양배추를 채 썰어 준비한다.
2. 삶은 달걀을 강판에 갈아 양배추 위에 올린다.
3. 마요네즈와 소금, 후추를 올려 잘 섞는다.
4. 샌드위치 빵 두 개 사이에 양배추 속을 넣고 반으로 자른다.
오코노미야키와 양배추샐러드 샌드위치. 어느 쪽이 더 맛있냐 묻는 것은 엄마와 딸 중 누가 더 사랑스럽냐고 묻는 것 만큼이나 쓸모가 없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