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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May 14. 2020

두 나라의 새콤 짭짤한 만남, 베트남의 반미 시우마이

피시소스와 고수, 토마토와 바게트의 조합

최근 베트남 요리에 대한 인기가 높아졌다. 베트남 요리를 다루는 식당도 많아지고 그 메뉴 또한 다양해졌다. 쌀국수와 월남쌈 따위의 단조로운 메뉴 구성에서 벗어나 분짜, 분보싸오, 반세오 등 좀 더 다양한 메뉴를 소개하는 식당이 늘었다. '반미(바인미, bánh mì)'를 전문으로 하는 체인점이 생겨난 것도 눈에 띈다. 반미는 베트남식 바게트 샌드위치로, 쌀로 만든 바게트에 고기 및 새콤하게 절인 무와 당근, 각종 채소를 넣어 만든다. 베트남은 동남아시아 국가 중 바게트를 위시한 빵을 먹는 문화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다.


이러한 서구적 식문화는 19-20세기에 걸친 프랑스 점령기에 집중적으로 유입되었다. 괴뢰정부를 통한 직접적인 지배가 무려 70년이나 이어진 기나긴 기간이었다. 일찍이 1800년대 중반부터 베트남에서의 영향력을 과시하던 프랑스는 마침내 1884년을 전후해서는 베트남을 프랑스의 보호령으로 하는 조약을 완성시키기에 이르렀다. 곧 이은 청불 전쟁으로 베트남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청나라를 밀어낼 수 있었고, 1940년대 일본에게 지배권을 빼앗기기 전까지 약 70여 년에 걸친 식민지배가 이어졌다. 우리나라로 치면 갑신정변부터 광복까지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슬프게도 베트남의 프랑스와의 악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1945년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프랑스가 다시금 베트남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8년에 걸친 독립전쟁(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벌어졌고 그 이후로 2차(베트남 전쟁), 3차에 걸친 전쟁(중국-베트남 전쟁)이 이어졌으니, 베트남의 근현대사는 그야말로 전쟁에 대한 서술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렇듯 연도별, 월별로 정리된 역사가 놓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식문화에 대한 역사가 대표적이다. 정확한 시점과 인과관계를 가늠하기도 어렵고, 그 중요도에서 후순위로 밀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요리 관한 역사는 교과서에 잘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러한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세의 침략이 빈번했던 파란만장한 정치사만큼, 베트남의 식문화사도 변곡점이 많았다. 베트남의 식문화를 크게 변화시킨 핵심적인 변곡점 중 하나가 프랑스의 식민지배였다.


그 영향은 막대하다. 프랑스인들이 베트남에 들어온 이후, 누군가가 프랑스인들이 만드는 방식을 차용해 쌀가루로 바게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양파, 감자, 아스파라거스 같은 새로운 식재료에 '서양 샬럿', '서양 얌',  '서양 죽순'과 같은 이름이 붙었다. 프랑스식 수프와 스튜 제조법이 베트남 사람들 사이에 알려졌고,  베트남식 스튜인 '코(kho)'가 탄생했다. 소고기나 생선 등에 감자와 당근을 넣고 끓여 만드는 형태가 꼭 서양식 스튜를 닮았다. '반 플란(bánh flan)이라는 디저트는 프랑스식 크렘 캐러멜(커스터드푸딩)과 꼭 닮아 있다. 프랑스인들이 그러했듯 베트남 사람들도 커피를 일상적으로 마시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현지의 기후와 베트남 사람들의 식문화를 반영한 변화가 일어나기도 했다. 바게트는 쌀가루로 만들어지고, 스튜에는 소금 대신 피시소스가 들어가고, 더운 기후를 이겨내기 위해 커피는 점점 달콤해졌다.


베트남식 스튜(코), 커스터드 푸딩(반 프란), 연유를 넣은 커피


이 글의 주제인 베트남의 미트볼 시우마이(Xiu mai)는 겉으로 보기에는 유럽식 미트볼 요리와 닮은 모양새이다. 토마토소스에 곁들여 바게트를 찍어먹는 형태가 프랑스 요리라고 해도 납득할 만큼 서양적이다. 바게트를 뜯어 토마토소스에 찍어먹는 대신 길게 자른 빵 사이에 미트볼을 끼워 넣으면 서브웨이의 주력 메뉴이기도 한 샌드위치 섭(sandwich sub)과 닮았다. 그러나 한 입이라도 맛을 보고 나면, 이 요리가 베트남의 요리임을 알려주는 단서를 만날 수 있다. 평범해 보이는 토마토소스는 피시소스로 간을 하여 짭짤한 감칠맛으로 가득하다. 넉넉하게 들어간 설탕은 단짠의 완벽한 조화를 완성한다. 프랑스 식사요리에 설탕이 들어가지 않는 것이 원칙인 것과 대비가 된다. 언뜻 보면 파슬리처럼 보이는 초록 잎은 베트남 사람들이 즐겨 먹는 고수이다. 특유의 향긋한 향으로 이 요리가 베트남인들의 것임을 확연히 알려주고 있다.


지배와 피지배, 전쟁의 역사를 다룰 때는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입장을 취하려 노력하게 된다. 요리의 역사를 서술할 때도 그렇다. "한 나라의 요리가 다른 나라로 전파되었다"는 단순한 서술 이면에 무수한 수탈과 폭력이 있었음을 간과하게 되지 않는가 마음이 무거워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루기는 조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식민지배 시기의 식문화는 의미 있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맛있는 요리를 즐겼던 이름 없는 민중의 미소 한 조각, 그것이 있다면 그 요리는 소중한 역사의 조각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베트남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반미'는 이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요리가 되었고, 이 감칠맛 넘치는 샌드위치를 즐기는 사람들은 시원한 고수 향과 짭짤한 피시소스 향에서 베트남을 추억하게 되었다.



<베트남식 미트볼 샌드위치, 반미 시우마이 레시피>

* 재료

<미트볼 재료>

다진 워터 체스넛(물밤) 또는 배추 흰 부분 데쳐서 다진 것 200 g

다진 돼지고기 400~500 g

소금, 후추, 치킨 스톡(액상 또는 가루), 설탕 각 1/2 tsp (취향껏 조절)

달걀 1 개

전분(타피오카 또는 감자 전분) 1 tbsp


<소스 재료>

다진 마늘 1 tsp

다진 샬럿 또는 대파 흰 부분 1 tsp

다진 토마토 3 개

피시소스 3 tbsp

케첩 3 tbsp

식용유 1 tbsp

소금, 후추, 치킨 스톡(액상 또는 가루), 설탕 각 1 tsp (취향껏 조절)


<곁들임 재료>

바게트

채 썬 당근, 무(또는 오이)를 식초, 설탕, 피시소스에 절인 것


*조리 과정

(1) 미트볼 재료를 볼에 섞어서 호두알 크기로 뭉친다.

(2) 식초, 설탕, 피시소스를 섞은 담금액에 채 썬 당근과 무(또는 오이)를 절인다.


(3) 미트볼을 찜기에 10분간 찐다.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소스에 넣어도 되지만 그 경우 미트볼이 부서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4) 식용유를 두른 팬에 마늘과 샬럿(또는 양파) 다진 것을 볶다가 다진 토마토를 넣고 볶는다.

(5) 피시소스, 케첩, 치킨스톡, 소금, 설탕으로 간한다.

(6) 원하는 소스의 농도에 맞추어 물을 추가한다(예: 약 1/2컵). 10분간 약한 불에서 끓인다.


(7) 미트볼을 소스에 넣고 5~10분간 끓인다.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약한 불을 유지한다.

(8) 소스에 바게트를 찍어먹거나 바게트에 토마토 소스를 바른 후 미트볼을 넣고 채소와 고수를 올려서 먹는다.

샌드위치로 조립해서 먹어도 맛있고

우아하게 빵을 뜯어 소스에 찍어먹도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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