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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랑일랑 May 15. 2020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꼬치구이

발리의 레몬그라스 미트볼, 사테 릴릿 아얌

아직 가보지 못한 여행지 중 지금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발리를 꼽을 것이다. 푸른 야자수 가득한 마을에서 쿠킹클래스를 들으며 현지의 식재료로 경험해보지 못한 요리를 만들고 싶다. 클래스가 끝난 후 그늘에 앉아 시원한 열대과일 주스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소화가 다 될 쯤이면 새소리가 들리는 요가 센터에서 선선한 바람을 즐기며 요가 수행을 할 테다. 이미 발리에 여러 번 다녀온 친구는 그래 봤자 사람 사는 곳 거기서 거기, 오토바이 매연이나 흙먼지에 실망하지나 말라고 조언을 한다. 하지만 발리에 대한 내 환상은 그곳에 직접 가서 몸을 부대껴보기 전까지는 깨지지 않을 것처럼 견고하다. 올해 여름이나 겨울쯤 발리를 꼭 방문해보려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여행을 기약할 수 없게 된 것이 안타깝다.


내 머릿속 발리의 이미지


아쉬운 마음에 다녀온 이들에게 발리에서 무엇이 맛있었는가를 물어본다. 하나 같이 '나시'로 시작하는 요리나 '고렝'으로 끝나는 요리를 맛있게 먹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나시(nasi)'는 인도네시아어로 밥을 뜻하고 '고렝(goreng)'은 '볶아 만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한국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에서 즐겨먹는 나시고렝과 미고렝은 각각 '볶음밥'과 '볶음면'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중 나시고렝은 몇 년도인가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맛있는 음식 1위에 뽑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두 요리가 맛있다는 말에 샘이 나서 발리에 가는 대신 직접 만들어 먹어본 적도 있다. 나시고렝은 케찹마니스(달콤한 간장소스)와 삼발(인도네시아식 고추 소스)을 구입해서 제대로 만들어보았고, 미고렝은 마트에서 인스턴트면 하나를 사서 짜파게티처럼 볶아 먹었다. 두 요리 모두 맛있었지만 아쉬움은 있었다. 미세먼지 가득한 서울에서 잡동사니로 가득한 집에 앉아 먹자니 '발리 기분'이라는 것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 앞에 펼쳐진 빌딩과 흐린 하늘을 지워버리고 푸르른 야자수 그늘과 해먹을 그려 넣고 싶었다. 


미고렝(인스턴트 제품), 나시고렝과 케찹마니스, 삼발


이번에 만든 '사테 릴릿 아얌(sate lilit ayam, '다진 닭고기 꼬치구이'라는 뜻)'은 발리를 다녀온 친구가 아닌 유튜브를 통해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푸드레인저(Food Ranger)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유명한 세계 요리 기행 유튜버의 비디오를 통해서였다. 내가 기억하기로 이런 장면이 있었다. 트레버(Trevor)라는 이름의 유튜버는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한 가지 요리를 집착하다시피 찾아다닌다. 그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요리는 나무 막대 대신 레몬그래스 한 줄기를 꼬챙이 삼아 구워낸 고기 꼬치 요리이다. 그는 길거리 한쪽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곳이면 코를 킁킁 대며 다가간다. 꼬치를 굽고 있는 상인의 손에 연둣빛 레몬그래스 대신 그을린 나무 꼬챙이가 들려있을 때마다, 그는 아이 같이 울상을 짓는다. 


"레몬그래스는 없어요? 레몬그래스 꼬치 안 파시나요?"


사테 릴릿 아얌(꼬치에 구운 다진 닭고기 미트볼). 현지에서도 편의를 위해 레몬그래스 대신 나무꼬치에 굽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 서러운 표정에 상인들은 하나 같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내 기억상 아마도 그는 끝까지 레몬그래스 꼬치구이를 찾지 못하고 에피소드를 끝냈던 것 같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침울했던 그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레몬그래스 꼬치 구이가 도대체 어떻길래. 못다 이룬 트레버의 꿈과 함께, 나 또한 이 레몬그래스 꼬치구이에 대한 작은 환상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이 사테릴릿을 만들기까지는 두어 개의 장벽을 넘어야 한다. 첫째는 장비의 장벽이다. 이 꼬치구이에 들어가는 재료를 페이스트(paste) 형태로 손질하기 위해서는 푸드 프로세서가 필요하다. 물론 아직도 발리 현지에서는 돌절구나 방망이 같은 것으로 고기와 양념재료를 오랫동안 두드려서 반죽하는 이들이 있으리라 믿는다. 하지만 닭고기를 잘게 갈고, 마늘과 양파, 고추로 이루어진 양념을 가는 데에는 푸드프로세서가 제격이다. 둘째는 재료의 장벽이다. 동네 마트나 시장에서는 이 요리에 필요한 재료를 절대 구할 수 없다. 이름만 해도 생소하다. 신선한 레몬그래스 줄기, 삼발, 타마린드, 카피르 라임 잎... 다행히 요즘 집콕 생활로 인해 익숙해진 쿠팡을 통해 대부분의 재료를 구할 수 있었다. 


이 두 장벽을 넘고 나자, 이제 나에게는 신나는 조리과정만이 남게 되었다. 햇살이 좋은 주말 오전을 골라 정성을 들여 사테 릴릿 아얌을 만들어보았다. 푸드 프로세서에 닭고기와 양념재료를 윙윙 갈고, 고추와 양파, 마늘을 갈아 만든 양념소스에 라임 잎을 넣어 팬에 볶았다. 이 양념소스와 고기를 뭉쳐 레몬그래스 끝에 자그맣게 뭉쳤고, 혹시라도 조각이 떨어질세라 조심스럽게 그릴팬에 구웠다. 


완성된 요리를 맛보기 전부터 나는 반쯤 홀려있었다. 온 집안에 이미 레몬그래스 향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한 입 베어 먹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눌러가며 사진을 찍었다. 마침내 먹음직스럽게 그을린 사테를 입에 넣었을 때, 나는 입으로, 코로, 밀려드는 시트러스 향에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레몬그래스를 둘러싼 고기 전체가 마치 주머니처럼 레몬그래스 향을 가득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이 요리를 알려준 트레버는 이 맛을 느껴보았을까. 아직도 레몬그래스 꼬치구이를 찾아 거리를 헤매는 동영상 속의 트레버에게 코가 뻥 뚫릴 정도로 상쾌한 향의 꼬치구이 하나를 건네주고 싶다. 




<사테 릴릿 아얌 레시피>

*사테(sate)는 꼬치구이, 릴릿(lilit)은 다진 것(minced), 아얌(ayam)은 닭고기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다짐육을 사용하는 일종의 미트볼 꼬치로, 닭고기를 사용하면 아얌(ayam), 생선을 사용하면 이칸(ikan)이 붙는다. 인도네시아 다른 지역보다도 발리에서 주로 즐기는 요리이다. 릴릿이 붙지 않은 그냥 사테는 고기 조각을 작게 잘라 꼬치에 끼운 것이다.



*사테 릴릿 아얌 재료

<고기 반죽 재료>

닭고기 다진 것 250 그램 

건조 코코넛 50 그램

소금, 후추, 설탕 각 1/2 tsp  

레몬그래스 10대


<양념 재료>

고추 5 개(홍고추가 선호됨)

마늘 5 알 

샬럿 5 알 또는 양파 1 개

생강편 썬 것 3~4 편

강황 1 cm 또는 강황 가루 2 tsp

쉬림프 페이스트 1/2 Tbsp (피시소스 1/2 Tbsp으로 대체)

마카다미아 5알 (땅콩 등의 견과류로 대체, 팬에 기름을 두르지 않고 토스트 하는 것을 추천)

카놀라유 50ml


<양념 볶을 때 넣는 재료>

월계수 잎 1 장

라임 잎 : 신선한 것 3장, 건조한 것 10장

레몬그래스 1 대 잘게 자른 것(흰 부분만 사용)

타마린드 1/2 tsp (설탕(코코넛 슈가)과 레몬즙 섞은 것 1 tsp로 대체)


<그 외(선택)>

삼발 소스

바왕(샬럿 튀긴 것)



*조리 과정

(1) <양념재료>를 모두 푸드 프로세서에 넣고 간다.


(2) <양념재료>를 <양념 볶을 때 넣는 재료>와 섞어 프라이팬에서 5분 정도 볶아 향을 낸다.


(3) <고기 반죽 재료>를 푸드 프로세서에서 블렌드 한다.

(4) <고기 반죽 재료>와 (2)에서 양념 볶은 것을 식힌 것을 섞는다.


(5) 레몬그래스를 깨끗하게 손질한다. 고기 반죽을 탁구공 크기로 움켜쥐고 레몬그래스 흰 부분을 감싸서 반죽한다.

(6) 반죽에 기름을 살짝 코팅한 후 기름을 두른 팬에 굽는다. 180도로 예열한 오분에 10~15분 간 구워도 좋다.

(7) 삼발 소스와 바왕(샬럿 튀긴 것)을 곁들인다.



푸드 프로세서 덕에 그리 힘들지 않게 꼬치구이를 만들 수 있었다. 발리에 가서 이 향기를 즐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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