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출신 지인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하는 요리가 있다. 기왕이면 나이가 지긋하신 분이면 좋겠다. 미수전에 관해 여쭙고 싶은 것이 많아서다. 정말 잔칫날이면 이 귀여운 미수전을 만들어 드셨나요? 이 맛있는 게 왜 이렇게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따위의 질문들.
제주도 토속 요리인 미수전은 앙증맞게 생겼다. 검지 손가락 정도 길이의 노란 달걀지단이 소를 감싸고 있는데, 소가 든 가운데 부분만 통통하고 양 끝은 납작하게 눌려 있어서 꼭 베개나 혹은 포장지에 든 알사탕 같다.
만드는 방법도 여타 전들과는 다르다. 가령 동그랑땡이나 산적 같은 것들은 부치기 직전 달걀 물에 퐁 담갔다 빼는 방식으로 옷을 입히기 때문에 달걀옷이 껍질처럼 얇아서 달걀 맛이 날 듯 말 듯하다. 반면 미수전은 달걀 물을 한 숟가락 떠서 작은 타원형으로 지단을 먼저 부친 후, 그 위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 크기로 동그랗게 뭉친 고기소를 얹어 데구루루 굴려 만든다. 다른 전들이 얇디얇은 시스루 달걀옷을 입고 있다면, 미수전은 포근한 달걀 담요를 두르고 있는 셈이다.
예쁜 미수전을 만들기 위해서는 달걀을 부칠 때 잘 봐야 한다. 달걀이 뻣뻣하게 익기 전에 김밥 말듯 고기소를 얼른 넣고 굴리는 것이 핵심이다. 달걀이 너무 익으면 중간에 달걀 담요가 터져버린다. 양 귀퉁이를 눌러 사탕 봉지 모양을 만드는 것도 달걀이 살짝 덜 익었을 때가 좋다. 덜 익은 달걀은 꾹 눌러주기만 하면 접착제를 바른 듯 딱 달라붙는다.
이 폭신한 달걀 담요 속에 든 돼지고기 소 역시 독특한 점이 있다. 생고기가 아니라 한번 삶은 고기를 다져서 만든다. 제주 고유의 식문화가 드러나는 부분이다. 자고로 제주에서는 잔치나 제사 때 돼지고기를 많이 먹었다. 보통 큰 솥에 수육을 삶아 먹었는데, 제주식 수육으로 잘 알려진 돔베고기다. 돼지 한 마리를 삶아 수육을 만들면 남는 자투리도 분명히 생길 터, 미수전은 남은 ‘퍽퍽 살’을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개발된 요리다. 퍽퍽한 살코기를 모아서 잘게 다지고 대파와 마늘, 두부, 간장 등을 더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퍽퍽했던 육질이 혀로 누르면 부서질 정도로 연해진다. 또 은은하게 풍기는 대파와 마늘 향, 폭신한 지단과도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삶은 고기와 대파 등을 다지고 반죽해 굴리고, 계란옷을 한 숟가락씩 퍼서 지단을 부치고, 얇은 지단을 적당한 크기로 한 장 한 장 자른 뒤 소를 얹어 김밥 말듯 말기.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다. 먹는 사람 입장에서야 편하지만, 이렇게 조그맣고 앙증맞은 음식을 제사상이나 손님상에 넉넉히 내놓으려면 얼마나 많은 미수전을 굴리고, 또 굴려야 했을까. 제주의 아낙들은 어떤 마음으로 미수전을 만들었을까? 이처럼 손이 가는 요리에 붙은 ‘미수전’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포장한 사탕처럼 가운데가 통통하고 양 끝이 납작한 대칭 모양이어서 어디가 머리(首)고, 어디가 꼬리(尾)인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작명 센스에서 따뜻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옛 제주 사람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연노랑 빛 미수전을 들여다보며 적당한 이름을 떠올리는 모습을 그려본다. 꽤 귀여웠나 보다.
<재료> - 아래 재료 양의 두 배, 세 배를 사용해 배부르게 먹자!
삶아서 다진 돼지고기(살코기) - 100g
으깨서 물기를 짠 두부 - 1/2모
다진 마늘 - 2 작은술
다진 파 -1~2 작은술
참기름 - 1 작은술
간장 - 2 작은술
소금을 약간 넣어 푼 달걀 - 6 개
식용유 약간
소금, 후추 약간
1. 삶아서 다진 돼지고기, 으깬 두부, 다진 마늘, 다진 파, 소금, 후추, 간장, 참기름을 한데 섞어 반죽한다
(돔베고기나 보쌈 등의 삶은 고기가 있다면 이를 살코기 위주로 잘게 다져 준비한다.
다진 돼지고기를 삶아서 익힌 뒤 물기를 제거해 써도 된다).
2. 고기 반죽을 가로 1cm, 세로 3cm 크기로 뭉친다.
3. 숟가락으로 달걀 물을 떠서 기름을 살짝 두른 팬에 얇게 편 뒤 작은 타원형 지단을 만든다.
4. 지단에 고기 반죽을 올린다.
5. 지단을 말아서 고기 반죽을 감싼다. 달걀이 완전히 익기 전 지단의 양끝을 눌러 사탕 모양이 되도록 한다.
6. 잘게 썬 고추 등을 올려 장식한다.
* 미수전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좀처럼 맛보기 어려운 요리다. 같은 토속요리라도 돔베고기라든지 빙떡 같은 것은 그래도 파는 곳이 꽤 많은데, 왜 이 미수전은 이토록 식당에서 보기 힘든 것인가(사실 얼마 전 제주 출신 20대 지인에게 물어봤는데, 그녀 또한 본 듯 만 듯 잘 모르는 요리라고 했다. 알쏭달쏭...)! 집에서 미수전을 해 드시는 제주 분들이 계시다면, 미수전을 어떻게 만들고 즐기시는지 정말 궁금한 마음이다. 미수전을 파는 곳이 혹시 있다면, 제주 본토의 맛을 맛보고 싶은 글쓴이를 위해 꼭 알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