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어느새 하교한 아들이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었다.엄마가 온지도 모르고 혼자 떠드는 게 누군가와 통화를 하며플레이를 하는 것 같다.
아들의 헤드셋 한쪽을 조용히 들어올려 속삭였다.
"학교 잘 다녀왔어?"
"어? 어."
바쁜 아들을 뒤로하고 된장국 재료를 찾아보러 주방으로 향했다.
'저 녀석 이제는 허락도 안받고 컴퓨터 켜네.. 혼낼껄 그랬나..'
커가는 아들의 단도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며 김치냉장고에서 감자 두 개를 꺼내놓았다.
고장난 김치냉장고는 더이상 냉장기능을 할 수 없지만 감자싹을 늦춰줄 수는 있다. 식구가 많아 어디든 포화상태라 고장이 났거나말거나 소중한 수납공간이 돼준다. 덕분에 감자를 며칠째 먹고 있다.
근데 또 감자라,
싫어하면 어쩌지..
어쩌지,는 아이가 싫어했을 때를 대비하는 물음이 아니다. 아이가 싫어하는 걸 내가 못참을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쟤가 싫어해서 내가 화나면 어쩌지.
아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표현의 미숙함.
아들은 싫은 순간을 감추지 못한다. 싫은 음식은 짜증과 신경질을 버무려 집어든다. 정말이지, 화가 많이 난다. 많이, 아주 많이.
아들은 '나 이거 싫어해. 안 먹을래.'라고 할 줄을 모른다. 오만상을 하고, 아, 하, 후, 추임새를 첨가해 짜증을 내며 꾸역꾸역 입에 넣는다. 먹는 게 아니라 넣는다.
상냥하게 권유도 해보고, 안 먹어도 된다고 아량도 베풀어보고, 먹든지 말든지 무시도 해봤지만, 아들의 싫은 내색은 도무지 감춰지지가 않는다. 그냥 싫다고 거절하면 되잖아!
편식뿐만이 아니다.
일상의 대부분에서 나타나는 '싫어하는 문제를 대하는 자세'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싫은게 많을 수도 있지. 나도 싫은게 많다. 하지만 학교는 싫어도 가야 하고, 살기 위해서는 먹어야 하지 않은가. 바늘구멍같은 범위를 매번 맞춰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갈등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아무리 싫더라도 상대 눈치를 좀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당당히 거절을 할 수는 없는지 답답할 때가 많았다.
아무튼, 상을 차렸다.
즐거운 게임얘기로 감자를 녹여보고자 대화를 시작했다.
"아까 지혁이야? 게임 같이 하는거 같던데?"
"아니."
"어, 그럼 누구야? 너랑 할 정도면 잘하나부네~"
"그... "
감자는 잘 녹았다. 이어져간 대화가 문제였다. 말하기 싫은 걸 물어본 것이다. 출처가 확인되지 않은 온라인친구는 만들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 규칙을 어겼나보다. 약속을 안지킨 대가가 있어야 했지만 가볍게 넘어가고 싶었다. 엄마는 이런저런 나쁜일이 걱정이 돼서 그런거야,라고 말해줬다. 아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나쁜 일 없도록 조심하겠다는 말대꾸를 기대한 나는 얼른 선수를 쳤다. 아들의 죄책감이 짜증으로 발화하지 않도록.
"그런 일 없도록 할 거지?"
아들이 갑자기 고개를 숙이고 운다. 하.. 올 것이 왔구나. 밥상머리에서, 이번엔 도대체 어떤 포인트였니. 나는 배수의 진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모진 언사로 아이를 할퀴기 직전이었다. 좀 있으면 5학년이나 되는 놈이 별것도 아닌 걸로 이렇게 울고 짜증내니까 친구들이 싫어하지, 학교에서도 이러니, 히키코모리처럼 찌질해. 나는 뚜껑 밖으로 뛰쳐나온 비정제 문장들을 초인적 힘으로 다시 잡아가뒀다.
"울 게 아니라, 안그러겠다고 다짐해주면 끝나는 거야."
그래도 아들은 눈물을 거두지 못한다. 또다시 뚜껑이 열리며 흑화된 마음이 비집고 나온다. 억울함만 가득 차서 엄마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는구나, 요점이 뭔지조차 못알아듣네, 내가 가르쳐준 것들은 어디 싸질러놓고 넌 이모양이니. 다시 한번, 날카로운 비난의 화살촉이 나가지 않게 부들부들 꽉 잡았다. 심호흡은 필수다.
"약속 안지킨 것도 물론 잘못이지만, 엄마가 화나는 건 이렇게 울거나 짜증내는 태도 때문이야.. 게임 가지고 혼낼 생각은 애초에 없었어."
아들의 짜증섞인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태권도 갈 시간 다 됐는데, 이런 기분으로는 갈 수가 없을 것 같아. 맞아?"
가서도 질질 짜고 있을 테니,라는 뜻이었다.
대답이 없는 아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태권도를 째는 대신, 만보기를 들고 밖에 나가 목표만큼 채우고 오면 용돈을 주겠다고 했다. 모든 걸 수치화해보라는 아들육아선배의 가르침이 떠올라서였다.
"목표를 정해야 해. 지금 3천보로 정하면 5천보 뛰고 와도 3천원이야. 5천보로 정했는데 4999보 뛰고 오면 용돈은 실패~"
드디어 아들의 젖은 눈이 반짝거렸다. 쿠킹호일처럼 구겨졌던 얼굴이 고민을 시작한다.
그가 정한 목표는 5천보. 시무룩했지만 만보기앱을 점검하는 걸 잊지 않았다.
그래, 숨차도록 뛰고 와보렴. 아파서 조퇴까지 한 누나는 그래도 운동은 해야 한다며 이미 태권도로 갔는데, 그깟 잔소리 한마디가 싫다고 울고짠 너는 얄미워서라도 내보내야겠다,라는 의도가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렇게 아들을 내보낸지 20분 정도가 지나 전화가 왔다.
"엄마! 헉헉, 만보로 바꾸면 안 돼?! 헉헉, 만보 뛰고 만원 받고 싶어!"
5천보로 계약했으니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반가웠다. 차갑고 상쾌한 저녁공기를 만끽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귀찮다며 나가놓고는 막상 뛰니까 좋아?"
"응! 나 여기 지금 oo까지 왔는데 와~저 아파트에 착시현상이 있어! 헉헉, 엄마! 알아요? 여기가 그..."
아들은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전화를 걸어왔다. 붕어빵을 사 먹어도 되냐는 것과, 제발 만보로 바꿔주면 안되냐는 것. 그렇게 기분전환을 하고 돌아온 아들의 손에는 붕어빵봉지가 들려있었다.
"아니 아들아.. 다른 식구들것도 이렇게 사 온 거야? 너한테 이런 센스가 있었어? 너무 감동인데??"
"한개는 안판다고 해서 산건데요."
...
에라이.
하여튼 아들은 정말 어렵다.
아들의 통장에 5천원을 이체하며 송금인란에 '5천보달성기념'이라고 적었다.
5203보라고 따지는 아들을 보니 몇 해 전 아동상담소에 다니던 때가 생각났다. 워낙에 섬세해서 감정을 처리하려면 표현할 어휘를 따로 공부해야 한다고 했었다. 남자애한테 어휘공부를 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3년째 깨닫는 중이다. 남편을 보며 이 깨달음이 30년 이어지는 건 아닐까 덜컥 겁도 나지만, 때로는 단순한 표현이 가장 적합해 보였던 남자들의 세상이니 그럭저럭 중간만 하면 되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내려놓아본다.
그래도 전보단 나아졌으니까, 느려보이지만 크고는 있으니까,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테니까. 언젠가는, 햄이랑 같이 볶으면 내가 감자를 더 잘 먹을 수 있을 거 같아요,라고 똑부러지게 말 걸어오는 아들이 되...되..되어주.. 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