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나도 기생충?

영화 "기생충을 보고"

by Jenny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소식에 모두들 궁금해 극장을 찾아가 감독 말 데로 많은 생각들 하고 오셨나요? 저도 궁금한 건 못 참는 일인이라 보고 왔습니다만 아무 생각 없이 웃고 돌아서 잊어버리는 영화가 아니다 보니 자다가 잠을 다 설쳤네요. 갑자기 떠오르는 영화의 장면들이 너무 강렬해서 말입니다. 영화의 해석을 위해 이런저런 글들이 많았지만 전 그냥 순수하게 관객의 입장에서 감상평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먼저 백수 가족이 사는 기택(송강호)의 반지하집과 대조되는 박사장의 저택.


반지하집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집이죠. 박사장 정도의 집은 부촌 동네를 찾아가면 널린 집이고요. 얼마 전 북촌에 산책을 갔다가 꼭대기 전망 좋은 카페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저택을 보며 도대체 저 집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살까 궁금해하며 내려오는데 웬 사람들이 시위 중이었습니다. 한화 김승연 회장 자택 앞에서 한화 에어로스페이스 노동자들이 노사관계 정상화를 외치며 김 회장의 경영복귀에 맞춰 시위 중인걸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제 궁금증은 풀렸죠. " 아하, 한화그룹 회장 정도 되는 사람이 저런 대저택에 사는구나.." 하고요.


소위 금수저니 은수저니 하는 부의 대물림을 통해 태어날 때부터 부자인 사람과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의 출발선이 다른 나라는 물론 우리나라뿐이 아닐 겁니다. 우리나라 상위 10%가 인구 전체 부 점유율이 62.8%에 육박한다지만 지난해 미국 상위 1% 소득점유율이 22%, 상위 10% 소득점유율이 50.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보면 씁쓸합니다.


저 또한 신혼집을 서초구 빌라 반지하에서 시작했지만 빛이 들지 않는 반지하집의 삶은 우울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돈 많은 부모가 집 사주는 친구들과 출발선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왕이면 돈 많은 집에 시집가려는 이유도 알게 되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도 결혼 7년 만에 서울에 3층 집을 샀고 빌린 돈을 갚는데 5년이 걸렸으니 성공한 건가요? 사람이 위를 바라보면 한이 없다고 잘 사는 사람들의 번듯한 집이 꼭 행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영화 속 두 가정의 삶은 정말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기택의 아내 충숙이 하는 말은 정말 공감이 가는 부분입니다. " 돈이 다리미라고. 돈이 주름살을 쫘악 펴줘..." " 부자니까 착하지. 나도 부자면 더 착할 수 있어 " 결국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것도 돈이고 착하게 만드는 것도 돈이다 뭐 이런 거죠. 실제로 사업이 망하고 돈이 쪼들리면 모든 불행이 시작됩니다. 돈만 있으면 마음도 여유롭고 착하게 살 수 있겠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현실이 사람을 망가뜨리는 거죠. 영화속에 등장한 대만 카스텔라를 비롯해 많은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말아먹은 사람들에게 엄청 공감이 갈만한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졸업장 위조 및 신분 속이기.


기택의 큰아들 기우는 명문대 졸업장을 위조해서 박 사장 집 과외교사로 들어갑니다. 그러면서 말하죠 " 아버지, 전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내년에 꼭 이 학교를 갈 거니까요.." 기우의 동생 기정 또한 미국 일리노이대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고 속이고 미술과외를 맡게 되지요. 아버지 기택, 어머니 충숙 또한 모두 신분을 속이고 박 사장 집에 기생을 하게 됩니다. 결국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건 숙주가 너무 단순한 속물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박사장의 아내 연교야말로 흔하디 흔한 속물의 대표 아줌마입니다. 소위 말하는 사모님들의 교양 있는척하는 언행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제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고 교육에 목숨을 걸고 사교육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사모님들이 넘쳐납니다. 결국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아줌마에게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남편들은 그저 돈이나 벌고 집안일은 모르쇠 바깥일만 잘하면 되는 세상이니깐요. 숙주가 이렇게 허술하니 기생이 쉬웠을 겁니다. 결국 사기와 속임수가 만연하고 제발등을 찍는 도끼를 스스로 갈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세 번째 기생하는 인간끼리의 싸움.


박사장의 저택에 기생하던 원조는 가정부와 그녀의 남편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생충 가족이 결국 그들의 안식처를 빼앗으면서 칼부림이 나고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가정부가 죽고 다시 기정이 죽고 결국 숙주인 박사장이 죽으면서 마무리가 되죠. 가정부(이정은)의 대사 "불우이웃끼리 이러지 말자"는 말처럼 서로 살기 위해 더 힘없는 인간을 밀어내고 싸우고 죽이는 모습이 9시 뉴스에서 흔히 보는 강력범죄의 모양새입니다. 우울하지만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먹이사슬 같은 동물의 세계인 거죠.


네 번째 냄새.


보는 영화가 아니라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영화였다면 어땠을까 싶을 만큼 후각을 자극하는 영화였습니다. 박사장의 표현대로 선을 넘는 냄새는 과연 어떤 것이었을까요? 상상을 한다면 반지하 곰팡이 냄새가 퀴퀴하게 빨래에 눌어붙어 어둡고 습한 회색의 냄새가 뭉글뭉글 피어오르지 않았을까요? 아무리 고상한 척 아닌척해도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냄새들이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해외를 갔을 때 인도 거리를 걷다가 풍겨오던 궤궤한 냄새, 미국 지저분한 거리에서 풍겨오던 대마초 냄새, 고등학교 하교시간에 마을버스를 탔을 때 풍겨오는 청년들의 땀냄새, 노인들에게서 나는 기름진 노인 냄새, 서울역 노숙자 근처를 지날 때 나는 역겨운 냄새.. 나도 모르게 미간에 주름이 잡히는 냄새들이 선을 넘어옵니다. 물론 입 밖으로 아무 말도 안 하고 숨을 참고 걸어가도 특유의 향이 오래오래 기억되지요.


하지만 반대 입장이 되어 누군가 내게 냄새가 난다고 얼굴을 찡그리면 기분이 어떨까요? 김치 냄새가 난나고 한국인을 무시하는 외국사람을 만나다면? 열심히 고된 일을 하다 지하철을 탔는데 내게 나는 땀냄새에 누군가 고개를 돌린다면? 엄청 마음이 아프겠죠. 상처를 입을 겁니다. 얼마 전 키우던 개에게 냄새가 나서 나도 모르게 " 아유 개 냄새" 하고 한마디 했다가 아이에게 혼이 났습니다. "엄마, 듣는 개 기분 나빠요.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라고.. 하긴 개 목욕 안 시킨 주인 잘못이지 개가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아무튼 개도 상처 받을 말을 사람에게 한다는 건 정말 큰 무례죠. 영화 속 기택이 느꼈을 복잡 오묘한 감정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결국 박사장을 죽이게 되는 것도 냄새에 반응한 그의 태도를 보며 순간적인 분노를 참지 못해 생긴 우발적 범행이었고요.


마지막으로 무계획.


지하에 사는 사람들과 한바탕 난리를 하고 쏟아진 폭우에 체육관 바닥에서 잠을 자려할 때 아들 기우는 기택(송강호)에게 계획이 뭔지 묻는다.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가장 완벽한 계획은 무계획이야" 그의 말데로 계획이 없으면 문제가 아닌 것을 꼭 계획을 세우니 계획데로 되지 않아 문제인 게다. 살면서 수도 없이 계획을 세우고 수정하고 재수정했지만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임을 깨닫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좌절과 방황을 거듭한 끝에 얻을 수 있는 달관의 경지가 바로 무계획일지도 모르겠다. 기택 또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업을 하고 망하고 결국 반지하세를 살며 남에게 기생하는 삶을 살게 되었겠는가? 아들 기우가 세운 계획데로 돈을 많이 벌어 저택을 사서 아버지를 밝은 세상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 현실에선 불가능하기에 꿈이라도 꿔보는 걸까? 꿈꾸는 데는 돈이 안 드니까?


영화를 보며 많은 생각을 하고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되는 건 감독이 의도한 모든 장치에 그대로 걸려들었다는 말이겠죠.. 역시 상 받을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기분이 좋지 않기는 하지만 "치킨인가? 바비큐인가" 대사밖에 생각 안 나는 유쾌한 영화보다는 분명 깊이가 다른 영화였습니다. 혹시 나는 누군가에게 기생중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분명히 살짝 기생을 시도한 적이 있었던 것 같고요. 하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든 살고 있다는 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