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미바이유어네임을 보고
퀴어 영화? 무얼 말하는 걸까? 본래 “이상한, 색다른”등을 나타내는 단어였지만 현재는 성소수자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를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솔직히 나는 퀴어 영화가 뭔지 영화 스토리가 뭔지 미리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 않아서 얼덜껼에 퀴어영화를 몇 편 본 적이 있었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은 아름다운 배경에 혹해서 봤다가 엉뚱한 브로맨스에 황당했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세계, 내가 모르는 환경에서 일어나는 남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보며 새로운 관점에서 성소수자를 이해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나와 다른 세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관찰자적 시점에서 봤다. 정확히 말하면 이럴 수도 있구나 또 저럴 수도 있구나 정도의 이해 수준으로 보았지 감동이나 공감은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열일곱 살 주인공 청년이 갖는 성에 대한 욕구, 호기심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곧 스무 살이 되는 아들을 둔 엄마 입장에서 좀 더 관대하게 영화를 본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lio가 아버지의 보조 연구원으로 오게 된 Oliver에게 끌리는 과정을 보면 정확히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같은 또래의 예쁜 여자 애들과의 관계는 오히려 자연스럽게 보이고 동성인 올리버에게 끌려들어 가는 감정은 뭐랄까 영화 같은 얘기였다.
물론 실제로 많은 성소수자가 존재하고 있고 그들의 감정이 자연스러운 사랑의 감정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내게 특별했던 건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 그 자체보다는 엘리오와 올리버의 사랑을 지켜보는 부모의 관점이었다.
그들의 특별한 감정을 눈치채고 그들의 밀회를 알면서도 섣불리 충고하거나 말리지 않고 지켜 봐주는 그 부모가 내겐 정말 남달라 보였다. 올리버가 떠나기로 한날, 엘리오를 함께 보내 둘만의 시간을 갖게 해 주고 올리버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엘리오를 데리러 가서 아무 말 없이 데리고 오는 엄마 그리고 엘리오에게 그 사랑이 정말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을 해주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내 부모님이라면 어떠셨을까? 분명히 미쳤다고 하지 않았을까? 둘의 사랑을 사랑으로 존중해 줄 수 있었을까? 그냥 믿고 기다려 줄 수 있었을까? 불장난은 곧 끝날 거라고 모른척하진 않았을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 모른 척 부인하지 않았을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TV를 보다 요즘 애들은 초등생 때 야동을 때고 중학생 때 자위를 때고 고등학생 때 섹스를 땐다는 말을 듣고 열아홉 살 된 아들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 정말 그러니?” 아들 말로는 초등생 중등생까지는 맞는데 고등학생 때는 애들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하고 물으니 한 반에 반 정도는 해본 것 같고 반 정도는 안 한 것 같다고 대답한다.
물론 아무도 정확히 통계를 낼 수 없는 사적인 얘기지만 아들이 단순 호기심 때문에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는 말에 안도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정말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충분히 관계를 할 나이라는 걸 안다. 그리고 그걸 꼭 했는지 안 했는지 물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엄마로서 어쩔 수 없이 신경이 쓰인다. 누구랑 어떤 관계를 하는지가 중요하니 말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들을 이해하고 믿고 기다려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말할 수 있을지는 닥쳐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부디 내가 콜미 바이 유어 네임 아빠처럼 아들의 진정한 마음과 사랑을 이해하고 힘을 줄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퀴어 영화라고 모두 다 이상하지 않다. 모두 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내가 이상하고 당신이 이상하다는 걸 깨우치게 하는 이 영화 정말 한 번쯤은 볼만하다. 나의 고정관념이 오늘 하나 더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