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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애 Nov 26. 2020

말없는 사진과 말하는 사진: 바르트와 벤야민


해군복장의 두 명의 흑인 소년들이 드 브라차라는 프랑스 탐험가를 둘러싸고 서 있는 사진이 있다. 1882년에 나다르가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보는 관찰자는 보통 둘 중 한 소년이 탐험가의 허벅지에 손을 대고 있는 부분에 시선이 간다. 그 자세가  눈에 띄는 이유는 그것이 "정도에서 벗어난 자세"이기 때문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우리의 문화에서 배운 관습이 작동하면서 그러한 자세를 어색한 자세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 부분 말고  다른 세부가 강력하게 시선을 끈다. 또 다른 흑인 소년의 팔짱 낀 자세다. 팔짱 낀 자세가 관찰자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들이는 이유는 설명할 수 없다. 그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설명할 수도 없고, 뭐라고 명명할 수도 없다. 또 다른 사진이 있다. 제임스 반 데르 제가 1926년에 찍은 어느 미국인 흑인 가족사진이다.  

정장을 차려 입고 한데 나란히 모인 흑인 가족 세명의 모습에서 우리는 가족 간 유대, 사회적인 신분 상승의 노력, 상호 책임감 등의 주제를 떠올릴 수 있다. 다만 이렇게 해석된 차원에서 본 사진은 관찰자에게 별다른 자극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진에도 강렬한 끌림을 일으키는 세부가 있다. 그것은 오른쪽에 서 있는 여동생(혹은 딸)의 차림새이다. 그녀가 맨 큰 허리띠, 여햑생처럼 뒷짐을 지고 있는 팔, 그녀가 신고 있는 끈 매는 신발이다. 이 부분이 관찰자의 시선을 강하게 끌고 관찰자로 하여금 연민에 가까운 감동을 느끼게 한다.


이 두 사진에 대한 해설은 롤랑 바르트가 『밝은 방 』에서 제시한 것이다. 바르트는  흑인 소년의 팔짱 낀 모습, 흑인 가족 중 여동생 혹은 딸의 차림새를 가리켜 “사진으로부터 화살처럼 날아와 나를 관통하는 것”,  “사진 안에서 나를 찌르는(또한 나에게 상처를 주고 나를 움켜쥐는)” '푼크툼'(punctum)이라고 부른다.  바르트는 왜 사진의 특정 세부가 자신에게 그러한 효과를 일으키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아니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떠한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그 효과는 분명하나 그것을 가리키는 어떠한 기호도 붙일 수 없는 강력한 시선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반면 바르트는 문화적으로 해석 가능한 의미의 차원은 스투디움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사진을 보자. 영국의 초상 사진작가 데이비드 옥타비우스 힐이 찍은 시인 다우덴다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약혼식 사진이다.

"시인 다우덴다이의 아버지인 사진사 다우덴다이가 그의 약혼 시절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나중에 그는 어느 날 아내가 여섯째 아이가 태어난 직후 그의 모스크바 저택의 침실에서 동맥을 끊고 자살한 것을 발견했다. 아내는 이 사진에서 그의 곁에 서 있고, 그는 아내를 붙들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를 비껴가고 있고, 마치 뭔가 빨아들일 듯이 불길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을 보는 사람은... 오래전에 흘러가 버린 과거의 어느 한순간 속에 숨어있던 미래가 현재의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러한 미미한 부분,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발견한다. 인용문은 벤야민이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제시한 해설이다. 사진의 세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훗날에 대한 예언은 당시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시인 다우덴다이의 어머니인 당시의 약혼녀는 이 사진에서 약혼자의 곁에 앉아 있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녀를 한 팔로 붙잡고 있는 약혼자의 곁을 스쳐 지나가 어느 먼 곳으로 빨려 들어가듯이 불길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러한 응시가 지닌 의미는 그녀가 여섯째 아이를 출산하자마자 자살 한 먼 훗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읽힌다.


바르트의 해설과 벤야민의 해설을 비교해보면 같은 점과 다른 점이 있다. 두 사람 모두 사진의 세부에 주목한다. 흔히  사진은 시각적이고 비언어적 매체이지만 사진을 제대로 '보기'에 앞서 문화적 코드에 의해 구성된 의미를 떠올리기 쉽다. 흑인 가족사진에서 "가족주의, 사회적 상승 노력..." 등에 대한 의미로 사진을 읽고, 다우덴다이 부모님의 약혼 시절 사진에서 "아름다운 신부, 행복한 결합, 상호 신뢰.." 등을 연상하는 것이 그렇다. 원래 비언어적 매체인 '말없는 사진'을 '말하는 사진'처럼 읽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바르트와 벤야민은 일견 유사한 제안을 한다. 바르트는 스투디움(문화적 코드에 의해 구성된 의미) 저편에서 푼크툼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벤야민도  사진 "관찰자의 연상 메커니즘을 정지시킬 수 있는 이미지들"을 붙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는 것은 단지 상투화된 메시지뿐이기 때문이다.  빈민가를 찍은 사진이 처음에는 이미지 자체만으로 충격과 자극을 던져준다면, 그런 사진도 익숙해지면서 충격 효과는 사라지고 상투화된다. 전쟁의 참상을 담은 르포 사진에서 '전쟁은 비극적이다.'라는 메시지만 남는 것이 그 예이다.


벤야민은 사진이  고정된 메시지를 연상시키는 메커니즘(바르트 식으로 말하자면, 스투디움)을 작동시키기 쉽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저지하는 기능을  표제에 둔다. 사진에 붙인 표제는 사진에 일정한 의미를 정박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정박을 못하도록 하는 기능을 한다. (회화이긴 하지만  파이프를 그린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에 붙은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표제는 이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표제를 다는 이유는 사진으로 하여금 제대로 '말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지시 대상을 재현하는데 그치는 사진은 복잡한 현실을 재현하는 데 있어 한계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의미의 조작을 통해 종종 왜곡된다.  벤야민이 사진론을 펼치던 1930년대는 화보 신문에서 보듯이 기록 사진이 얼마나 진실에 반한 무기가 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시대였다. 벤야민은 기록 사진의 사회적 기능과 유용성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던 시기에 어떻게 하면 진실을 '말하는' 사진이 될 수 있게 하느냐에 관심을 두었다. 그래서 사진 시리즈 구성이나 사진 몽타주 등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사진 표제도 그러한 대안 중 하나다.


반면 바르트는 다른 시대적 맥락에서 말없는 사진을 옹호한다. 바르트가 말한 사진의 푼크툼은 말없는 사진에 속하는 차원이다. 그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차원, 의미가 면제된 차원을 강조한 이유는 관습적인 의미 작용에 갇히기를 거부하기 위해서이고, 그러한 의미 작용에 의해 은폐되는 구체적인 실재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 (사실 바르트에 대해 제대로 읽은 책은 『밝은 방 』 정도라서  이러한 주장은 사실 조심스럽다.) 기호 분석을 시도한 이후 바르트는 의미 작용이 어떻게 문화적으로 생성된 것을 당연한 사실, 보편적인 자연으로 둔갑시키는 신화화를 촉진해왔는가를 주된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다.  조주연의 연구논문(「의미를 촉진하는 가면? 의미에 저항하는 실재!」)에 따르면, 이러한 신화화를 일관되게 비판하는 과정에서 바르트는 기호 분석을 넘어 기호 분해, 기호 제거를 추진한다. 다시 말해 의미 작용에 저항하면서 의미-이후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의미가 폐기된 유토피아"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의미가 면제된 영역에 형성되는 푼크툼은 그 예가 된다. 푼크툼은 비언어적 체험이고 우발적이고 일시적이며 무엇보다 주관적이다. 따라서 푼크툼에 대한 상호 이해 및 공유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이 제기된다.『밝은 방 』에서 바르트는 이 문제는 다루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제3의 의미」라는 사진론을 담은 글( 이 글은 직접 읽어보지는 못해서 아래 인용문은 조주연의 논문에서 재인용함)에서 한 말을 푼크툼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푼크툼의 효과를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도 대화 상대자에게  사진에서 푼크툼이 일어나는 장소(사진의 세부)를 가리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흑인 가족사진에서 푼크툼을 발견한 관찰자는 대화 상대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도 있다.


"당신은 내가 말하는 이미지를 바라볼 경우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언어의 ‘어깨너머로’ 혹은 ‘등 뒤에서’ 그 의미의 주제에 서로 동의할 수 있다. 이미지 덕분에 우리는 말을 하지 않고도 서로를 중단 없이 이해할 수 있다."


언어철학자 벤야민은 바르트처럼 언어 이후, 언어 너머를 지향하지 않는다. 그는 반대로 사진과 같은 비언어적 매체에 대해서도 궁극적으로 보기가 아니라 읽기와 언어화를 지향한다. 그가  당시 높이 평가한 하트필드 같은 사진작가는 시각적 영감과 현실인식, 새로운 보기와 새로운 읽기를 결합시켰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새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보고 구성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를 새롭게 인식된 내용과 결합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적 동기에서 사진의 길로 들어선 화가들이 그렇듯이 시각적 영감은 사회적 경험과 반성에 뒤따르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


이러한 발언은 사진의 정치적 기능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나온 것이고 이러한 입장에 서 있던 당시 벤야민은 '말하는' 사진에 사활을 건다. 그것은 말없는 사진을 역설하는 바르트와 다른 입장인데 이러한 차이는 철학자 개인 간의 차이를 넘어 시대적, 역사적 맥락의 차이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PS: 위 글에서 필자는 바르트에 대한 식견 부족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면제된 차원을 강조한 이유는 관습적인 의미 작용에 갇히기를 거부하기 위해서이고, 그러한 의미 작용에 의해 은폐되는 구체적인 실재를 구원하기 위해서이다"라는 과감한 테제를 제시했는데 (비록 괄호 안에 유보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역시나 바르트에 대한 오해로 드러났다. 이 글을 읽으신 조주연 선생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내오셨다.


" 바르트가 의미 면제를 강조한 이유는 의미 작용에 의해 은폐되는 구체적인 실재를 구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구체적인 실재의 힘을 빌려 관습적인 의미 작용을 깨뜨리고 푼크툼의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형성하는 것이 의미 면제, 의미 이후다. 따라서 언어에 대한 바르트의 입장은 애증관계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바르트는 언어의 관습성을 파시즘으로 치부하고 대항하면서 언어의 무한한 의미화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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