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외로움의 이유가 그거였던가

by 포근한 바람

2.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무렵부터, 내 부모가 나에게 해줄 수 없었던 것을 해주려고 의식적으로 했던 일들이 있었다. 공연보기, 강의듣기, 대화를 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히기.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은 내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한 회에 몇 만 원에서 십 몇 만원씩 하는 공연을 보러 다니는 것, 그를 위해 예매를 하는 일은 그때마다 심리적인 거부감을 이겨내야 하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돈이 많이 드는 일’을 일찌감치 포기해온 시간을 너무 오래 살아서, 아무리 좋아보이는 일도 한 번에 수 만 원 이상을 훌쩍 쓰는 일은 일단 안 하고 싶어지곤 했으니까.


그래서 주로 보는 게 영화, 그 다음은 연극, 이따금 뮤지컬, 아주 이따금 콘서트, 몇몇 강연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곤 했다. 딸이 충분히 경험하도록 하는 데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내 심리적 한계를 뜻대로 넘어서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딸이 고등학생이 되고, 엄마의 추천을 받아 그리고 ‘스스로 선택해서’ 대안학교 들어간 후에 나는 딸에게 좋은 본이 될 만한 여성들을 찾아서 연결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딸과 사이가 좋았고, 어느 정도는 딸의 본이 되어줄 수 있지만, 엄마에게서 떨어져 나갔을 때에도 세상에 엄마만큼, 엄마보다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해주는 게 엄마가 할 일 중 하나가 아닐까.


그래서 찾아낸 사람이, SNS를 통해서 알게 된 P샘과 L샘이다. P샘과는 단지 6개월 동안의 만남으로 끝났지만 L샘은 지금도 함께 공부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꽤 오래 지켜본 P샘은,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다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독서토론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는데, 매우 진지하게 책을 대하고 글을 쓰며, 시간과 약속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라 아직 청소년기인 딸이 자연스럽게 저런 태도의 일부라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저 이의 수업을 딸에게 추천했더랬다. 그의 진지함과 엄격함이, 딸의 진지함과 엄격함과 만나서 딸이 너무 힘들어지는 바람에 생각보다 관계를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L샘 역시 SNS를 통해서 안 사람이지만, 그의 작업실을 내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 장소로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만났다가, 내가 딸에게 추천했던 학교의 졸업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딸에게 급추천한, 딸 입장에서는 처음에는 입시 준비를 함께 해줄 선생님으로 만난 사이다. 치열하게 2, 30대를 살아 지금은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여유로워져서, P샘에게서 혼쭐이 난 딸에게는 마음을 많이 놓을 수 있는 교사이자, 지금은 함께 공부하는 동료로서 딸을 대해주어 많이 고마운 여성이다.


딸에게 이런 이들을 소개해준 이유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그 자리에는 역시나 나의 오랜 외로움이 오롯이 있다. 중학교 무렵부터, 집에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디에서고 말이 많은 아이가 아니었다. 맘 속에서는 늘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었지만 그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이가 거의 없었다. 아예 없지는 않았지. 아주아주 감성적이어서 서로의 책상에 매일 편지를 넣어주며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나누었던 중학교 1학년 때 짝꿍 A도 있었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해진, 내 오랜 친구이자 어느 순간부터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갈래가 다른 길을 가는 B도 있다. 초중고를 함께 다녀 지금까지도 만나는 친구들도 있고 C와는 고2 때부터 급격히 친해져 고3의 한때를 아주 많은 시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도 늘 혼자라는 느낌에 시달리곤 했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 좋았지만 내게 필요한 사람, 나보다 몇 발짝 앞에서 내가 갈 길을 안내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늘 갖고 있었고 그 바람은 한 번도 채워지지 않았다. 내게 없었던 그들이 딸 부근에는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그것이 내가 그들을 찾아 딸과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준 이유다. 고리를 더 연결해갈 것인지는 딸의 몫일 테지만.


딸이 아직 10대일 때 함께 참여한 강연 중 하나였다. 북토크란 형식으로 ‘더 나은 논쟁을 할 권리’에 대해 8명의 필자들이 이야기를 나눈 시간의 끝 무렵, 딸이 그 필자들의 ‘선생님’에게 꽂혔다.

“반할 것 같아.”

딸과 함께 다닌 공연, 강연, 콘서트에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던 말.


여성 제자들이 한 몫을 제대로 하는 지식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며 때로는 엄격하게 때로는 여지를 주며, 때로는 ‘돈까지 대주며’ 제자들을 이끌고 밀어준 사람. 그래서, 관객들에게 “혼자서 나아가기 어려울 때 필요한 것이 동료이고 커뮤니티”란 말을 자신있게 할 수 있는 사람. 아직까지는 친구와 동료, 함께 하는 누군가가 절실하다 느낀 일이 별로 없는 딸에게 “함께 생각을 나누고, 말귀를 알아들으며 공부하는 이들”의 소중함을 확 느끼게 해준 사람이 된 그가, 내 오랜 외로움의 진짜 이유가 그것이었구나 화들짝 알게 된 말까지 해주었다.

“생각하기 시작한 사람이 가장 처음 느끼는 게 뭔지 알아요?”


“외로움이예요. 두려움과 분노보다 먼저 오는 게 외로움이지요.”


인간은 누구나 혼자다, 혼자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은 당연하다고 오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 당연한 외로움의 이유가 내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니. 외로움의 색깔이 화악 달라지면서, 마음 깊은 데서부터, 시워언한 바람 한 줄기가 부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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