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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혼자야. 외로운 게 당연하지.”
고등학교 땐가 중학교 땐가, 세 살 어린 동생이 요즘 사는 게 너무 외롭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약간은 으쓱대며, 아직도 외로움에 시달리다니 너 아직 어리구나 하는 생각을 한껏 담아 답했던 적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외로움이라는 것, 혼자라는 것, 세상에 누구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며 삶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던 게.
초등학교 몇 학년 때던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엄마와 아빠가 모두 없었다. 다섯 개짜리 방이 있는 집을 지어 살기 시작한 지 3, 4년 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다섯 칸 중에 세 칸은 세를 놓고 두 칸을 주인집인 우리 가족이 썼는데, 작은 방은 그야말로 작기만한 방이어서 아직은 온 식구가 한 방을 쓸 때였다. 분명 어젯밤에 다 같이 잠이 들었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헝크러진 이부자리 외에 엄마 아빠의 흔적이 없었다. 당황스럽고, 어째야 할지 알 수 없어서 혼란스러운데, 아랫방에 세 들어 살던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한밤에 갑자기 아빠가 아파서 급하게 병원에 가셨다고. 급성 맹장염이었고,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는 그 날이 지나고서 들었던 것 같다. 아빠가 다 나을 때까지 엄마는 아빠를 간호해야 해서 엄마 아빠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며칠을 보내야 했던 그 시기부터 아마도, 나는 조금씩, 아주 많이 삶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빠가 맹장염이어서 수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겁이 덜컥 났다. 아직은 80년 대. 수술하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래서 아빠를 잃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서 하게 된 생각은, 아, 이부자리가 그렇게 흐트러질 정도로 아빠가 아팠는데도, 나는 전혀 몰랐구나. 같은 시간에 한 공간에 있었는데도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구나. 수술대에 올라 수술을 하고 나아지는 과정도 힘들고 아플 텐데, 나는 이렇게나 아무렇지도 않구나. 나는 아빠의 딸인데, 그의 고통은 나의 고통이 아니구나. 그때부터였다. 가족도, 부모 자식도, 고통을 함께 겪을 수는 없고, 아픔을 공유하지 못하는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사람은 모두 혼자야, 아픔은, 혼자서 앓고 견딜 수밖에 없어.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그 아픔을 나눠가질 수도, 똑같이 아파할 수도 없어. 생각이 생각을 이어갈수록, 진한 외로움이 계속해서 마음에 차올랐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나는 7살 무렵의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성장하는 데 몇 번 생각의 단계를 넘어선 시기가 있었다. 7살 무렵의 내가 기억하는 나는 갑자기 온몸으로 화악 다가온 자의식 때문에,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내 존재의 버거움으로 한없이 작아져서 온몸에 두꺼운 갑옷을 칭칭 두르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된 아이였다. 무엇이 차곡차곡 쌓여서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인사도 잘 하고 활기차고 심지어 싸움마저도 엄청나게 잘 하던 여자 아이가, 작게 작게 웅크리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쓰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다만 기억하는 것은, 내가 나라는 사실, 나라는 존재가 타인의 눈에도 비친다는 사실을 그냥 문득 알게 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택시 회사의 스페어 기사부터 온갖 일을 시도하던 아버지가 그래도 한 회사에 안정되게 다니기 시작한 것이 내가 다섯 살이 되던 무렵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이후 직장을 한 번 더 옮겼는데, 그게 IMF 때문에 일종의 명퇴를 할 때까지 다니던 기아자동차였다. 노조 가입도 안 되는 통근버스 기사였지만, 지금처럼 비정규직이 아니었던데다 주말에 통근버스 이용을 신청해서 결혼식이나 야유회를 가는 직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면 특근 수당 같은 것도 받곤 해서 살림살이가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어느 날 우연히 큰 길가에서 아버지가 짙은 선글라스를 쓰고 커다란 버스를 운전하는 것을 우연히 본 적이 있다. 검은 색 선글라스를 쓴 젊은 아빠는 꽤 근사해보였고, 어린 내게는 아주아주 큰 차였던 버스를 유유히 몰고 가는 근엄한 표정의 아빠가 꽤 멋져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 아빠가, 그냥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란 것을 그냥 알아버린 때가 그 기억으로부터 멀지 않다. 어떤 일이 계기였을까? 그냥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이유나 계기는 가물가물하다.
아이가 태어나서 한동안은 굉장한 전능감을 갖고 살아간다고 한다. 특히 신생아 시기부터 한동안. 배고프면 입에 젖이 들어오고, 뒤가 축축하면 기저귀가 갈아질 때, 아기는 그 전능감이 채워지는 데 만족하게 되지만, 곧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대로 세상이 움직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엄마가 아이의 울음에 뒤늦게 반응할 때마다 알게 된다나. 그게 모두 3세 전에 일어나는 일이라고는 하지만 아이들의 성향과 환경에 따라 자기 중심적이고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서 제멋대로 보일 수 있는 시기가 성인기까지 가기도, 나처럼 어린 시절에 끝장나 버리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한다.
아버지가 아플 때 나는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는 사실로 문득 아, 아버지도 나도 우리 모두 다, 혼자구나 생각하게 되었을 때부터, 아마도 나는 나만의 사고방식을 키워나갔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엄마가 마음먹고 사준 50권짜리 전집을 하나하나 읽으며, 도대체 신이라는 게 왜 인간을 만들어놓고 인간 마음대로 산다고 벌주고 죽이고, 화내고, 편애하고 그러는가. 저렇게 변덕스러운 게 신이면 인간과 다른 것이 무엇인가, 인간과 다르지 않은 신의 존재에 왜 사람이 매달려야 하는가 질문하며 결국은 이 세상 모든 종교와 신은 인간이 만든 것일 뿐, 최소한 성서라는 데 기록된 저런 신은 그냥 인간의 상상의 산물이라고 결론 내렸던 때부터였을 수도 있다.
아니면, 엄마와 아빠의 말에 반박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아버지는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강력하게 자신의 생각을 밀고 나가는 유형도 아니어서, 자신의 의견을 얘기하고 그게 자식이라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니들 알아서 해라”라며 내팽개치듯 물러서는 방식으로 우리를 대했다. 아마도,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들은 말이었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말에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내게 아빠가 “공부 하게 해주니까, 아빠 말에 일일이 대드느냐.”며 비난하기 시작한 것이. 저 말을 하거나말거나 나는 내 주장을 이야기하면서도, 아버지가 왜 저런 식으로 말하는지 의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 엄마와 아빠 모두 초등학교를 나온 것이 전부구나, 내가 중학생이 된 순간 알게 모르게 나에 대해 주눅이 들었을 수 있겠구나, 란 생각은 아주 긴 시간이 지난 후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중학교 시험에 붙었지만, 아무도 학비를 대주지 않아 초등학교 졸업으로 학력을 마치고 물지게를 지기 시작한 아버지나, 초등학교도 농번기에는 교사에게 혼이 날 정도로 결석을 하며 겨우 마친 엄마에게 중학교 이상의 학교란 전혀 알 수 없는 세계였으리라. 그 세계에 진입한 첫딸이, 엄마 아빠와 의견이 다를 때 요리조리 하는 이야기를 곱게 들어주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 아빠와 다른 세계를 조금씩 알게 된 딸은, 어느 순간 깨닫게 된 ‘외로운 인간’ 안에 또다른 외로움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시간을 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