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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기억 속을 뒤지다가 생각이 난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가난을 겪은 이는 내가 아니라 엄마였고, 나는 그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전쟁 때 아버지를 잃었던 엄마는 세 살이었고 스물 일곱이었던 외할머니의 뱃속에는 이모가 있었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영영 돌아오시지 않았다. 엄마 위로 딸이 하나 더 있었으니, 올망졸망한 자식 셋을 키우면서 서른도 안 된 홀어머니가 농촌에서 살아내기는 당연히 녹록치 않았을 거다. 외할아버지가 전쟁에 끌려가기 전까지는 그래도 마을에서 똑똑하단 말을 들었던 분이고 마을 일을 돌보기도 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큰집이었고, 바로 옆집에 작은집이 있었으니 두 형제 집안이 서로 돕고 살아왔을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 계실 때 마련했던 땅을 조금씩 처분하면서 딸 셋을 겨우겨우 키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소작농은 아니었어서인지, 엄마는 쌀밥만 먹고 살지는 않았지만 굶은 적은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엄마가 굶기를 밥먹듯이 하게 된 것은 택시 다섯 대를 굴리는 집 여섯 형제 중 다섯 째라는 말에 속아, 결혼식도 못 올리고 시집을 온 직후부터다. 형제가 많다는 얘기는 사실이었는데, 그 형제 중에 밥벌이를 제대로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고, 남편이라는 사람은 성실하려고 애쓰지만 성실할 직장이 없는 사람이었다. 중매쟁이가 택시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버지가 당시에 택시회사에서 갑자기 택시 기사가 필요하면 불러서 쓰는 이른바 ‘스페어 기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다섯 대의 택시는 아빠가 이따금 일할 수 있었던 택시 회사가 보유한 택시들이었겠지.
베트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 때문인지 엄마의 낯선 남편은 이따금 자다가 벌떡 일어나 번쩍번쩍한 눈으로 엄마를 노려보며 죽일 듯이 달려들거나 술에 취하면 폭력적인 사람으로 돌변하기도 하는 등 엄마에게는 아주 무서운 사람이기도 했다.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것은 그렇다 치고, 살림살이도 이렇다할 게 없어서 여인숙에서 곤로 하나 놓고 병든 시아버지와 함께 신혼살림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엄마의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나는 눈치도 없이 재빠르게 엄마의 뱃속에 자리잡았던 거다.
엄마는 원래부터 겁이 많은 아이였다고 했다. 해가 지면 집 밖을 나가지 못해서 친구들이 놀자고 부르러 와도 장지문을 잡고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다음 날 놀자고 소리쳐 말했다는 얘기, 산 속에 있던 엄마네 밭에서 김을 매다 새라도 푸두득 나는 소리가 들리면 엄마야, 소리를 지르며 호미를 내던지고 울었다는 얘기, 한밤에, 그야말로 초가삼간인 엄마네 집에서 대여섯 걸음이면 가는 화장실에 가지 못해서 다 커서도 요강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엄마의 많은 겁은 나중에까지도 사라지지 않아서, 내가 다 자란 후까지도 엄마는 자신이 자란 집 화장실을 밤에는 혼자 가지 못했다. 수세식 화장실로 바꾸기 전에 안방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우리집 화장실을 한 밤에 혼자 가지 못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겁이 많았던 스물 네 살 여자가 낯모르는, 때로는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사람과 함께 사는 과정에서 두려움은 얼마나 컸을 것이며, 돈이고 쌀이고 아무 것도 없어서 멀건 물에 국수 한 줌이라도 얻으면 끓이고 또 끓여서 시아버지, 시동생, 시아주버니 부부까지 먹여야 했으니 굶주림은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그 가난은 5년여 동안 지속되었고, 그 사이 아이 둘을 낳은 엄마는 어금니 몇 개를 잃었다고 했다.
갓 시집온 엄마의 뱃속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내가 엄마가 겪는 낯선 두려움과 해결되지 않는 굶주림을 함께 겪었을 가능성에 대해 생각이 미치자, 가난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내가 막연히 극단의 가난을 두려워하곤 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이런 두려움을 인식하던 때는 10대 이후 2, 30대까지였다. 얼마 안 되는 돈을 사용해야 할 때 그 돈으로 바꾸게 되는 물건 혹은 기회가 정말 필요한가, 돈을 갖고 있는 것이 더 나은 것 아닐까, 만약 돈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로 시작하여 끝도 없는 빈곤의 나락으로 추락하는 어떤 시점까지 자연스레 상상이 이어지고, 그 상상은 신체적으로도 느껴질 만큼 겪고 싶지 않은 불안에 휩싸이는 것으로 이어지곤 했다. 돈 쓰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면서, 일단 손에 들어온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하는 습성은 이런 상상이 반복되면서 내 일상의 습관으로 남은 것 같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하는 데에도 언제나 돈이 든다. 시작을 위한 준비에도 돈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나에게 얼마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것을 손에 쥔 채 이걸로 저것을 맞바꾸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자동으로 순식간에 재곤 한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는 듯이 나 자신에게 시치미를 떼고 아무 시도도 하지 않곤 했다. 그런 시기 동안 내가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기회를 포기했는지에 대해서, 내 욕망과 소망을 얼마나 많이 돌아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내가 나의 아이를 낳고, 그 아이에게 더 밝고 환한 웃음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무렵부터인 것 같다.